6.
아, 대체 얼마 만에 돌아오는 고향이란 말인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처음이구나. 오랜만에 와서인지 감회가 새롭다. 동네를 한 번 둘러보자. 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그대로구나. 읍내에만 나가도 많이 변했건만, 마을 주변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마치 시간이 이곳만 비켜서 흐르는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봉실산은 여전하구나. 반대편에 흐르는 만경강도 여전하구나. 논과 밭은 농작물로 가득하고, 마을 곳곳에는 오래전부터 서 있던 감나무들도 그대로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일하는 농부들의 땀방울과 지하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 밭을 가는 트랙터 소리도 여전하구나. 시골의 풍경은 도시와 달리 아늑하고 깨끗하다. 답답했던 마음이 살랑이는 시골 바람에 스르륵 풀려간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깐,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일까? 어디선가 갑자기 플라스틱 태우는 냄새가 난다.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누가 태우는 걸까? 아, 저기 검은 연기가 올라온다. 그렇구나. 동네 사람이 쓰레기를 태우고 있구나. 하하하. 한심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었건만, 깜빡 잊고 있었다. 어느 누가 감히 시골 공기가 좋다고 말하는가? 잊을 만하면 이웃집에서는 쓰레기를 태우고, 가까운 공단에서 배출되는 화학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겨울밤마다 가정집 난로 연통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연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웃음이 나온다. 이곳은 정말이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마을도 그대로, 사람도 그대로, 국가 기관의 무능함도 그대로구나. 어서 집 안으로 도망치자.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걸어 잠그자. 그러면 조금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시골 마을의 공해에 비하면 미세먼지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무더위에 에어컨이 없는 집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 부숴버리고 싶다. 시골 노인들의 무식한 이기심과 그 자녀들의 편협한 이기심에 화가 난다. 공장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이기심에 분노가 치민다. 법과 행정을 앞세워 손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지자체의 뻔뻔한 무책임에 치가 떨린다. 아니다. 그만하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가? 지금은 어차피 잠시 들른 것뿐이다. 이딴 곳 쯤이야, 서울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만 화를 삭이자. 분노는 자신마저 파괴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계절의 영향 탓인지 동풍이 불어와 이 더러운 모든 것들을 안고서 서쪽으로 사라진다. 좋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보자. 고개를 들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마셔보자. 폐 속 깊숙이 깨끗한 공기를 채워 보자.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나를 반긴다. 시골은, 도시보다 더 더럽고, 위험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서울로 돌아가고 싶건만, 나는 이곳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나의 미궁을 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우선 집을 둘러보자. 변함없이 예전과 똑같구나. 창고로 쓰는 검은색 비닐하우스도 여전하고, 본채와 사랑방도 여전하다. 예전에 아버지는 사랑방에 앉아 온종일 화투를 치셨는데, 지금은 어떠할지 모르겠구나. 어디 한 번 들어가 보자. 아, 성인 남자 대여섯 명은 들어갈 수 있었던 방이 지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아졌구나.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모두 여기에 갖다 둔 것 같다. 이게 뭘까? 오래된 책일까? 아니다. 가족 사진첩이구나. 최근에 누가 만졌던 걸까? 이 위에만 보자기가 덮여있지 않구나. 사진첩을 열어보자. 아, 이 사진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다. 날짜를 보아하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찍었던 사진이구나. 누가 찍었던 사진일까?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이제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잠깐, 이게 무슨 소리일까? 모깃소리일까? 모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혹시 내가 미쳐버린 걸까? 대낮에 환청까지 들리는 걸까? 아아, 소름이 끼친다. 얼굴 없는 여인이 생각난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기서도 도망쳐야 하는 걸까?
야, 태영아! 야―!
아니다. 모깃소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다. 누구일까? 아, 아버지다. 아버지의 목소리구나. 어릴 적의 기억이 트라우마라도 된 걸까?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긴장한다. 나는 이제 건장한 장정이건만, 아버지는 왜소한 노인이건만, 여전히 나는 아버지가 무섭다.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내 몸이 아버지를 두려워한다. 이런 내가 싫다. 겁먹지 말자. 나는 자유인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자신의 명의로 된 거주지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버지를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버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전혀 없다. 하지만 어서 빨리 아버지에게 가보자.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니까. 아버지, 어디 계세요? 아버지? 아, 텃밭에 계시는구나.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 왜 부르셨어요?
야―! 사람이 부르면 빨리빨리 와야지! 에라―!
왜 그러시는 데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화를 내세요?
뭐―라? 시끄러! 가서 소쿠리나 가져와!
(속으로 생각하기를) 정말이지 아버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노쇠한 몸으로도 저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생긴 건 순한 노인처럼 보이건만, 하는 행동은 사나운 야수와 같구나. 아니다. 짐승도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조용히 지내건만, 아버지는 늘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자신의 발톱을 숨기지 않는다. 혹시 아버지에게는 지금이 사냥철인 걸까? 내가 사냥감으로 보이는 걸까? 하지만 나와 싸워서 얻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서로의 감정만 상하는 것 외에 또 달리 뭐가 있을까? 하나뿐인 자식에게라도 자신의 강인함을 증명하고 싶은 걸까? 늙은 야수가 본인의 위치를 무리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하는 폭력적인 행동과 같은 걸까? 아니다. 이 사람은 그저 자신의 성질을 부리고 싶은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거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하하. 어이가 없구나. 이게 이 사람의 팔자란 말인가? 인생이란 말인가? 운명이란 말인가? 미궁이란 말인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걸까? 본성은 변하지 않더라도 인격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이는 팔순이 다 되었건만,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구나. 사람은 노인이 되면 어린 아기처럼 변한다고 하던데, 아버지도 그런 걸까?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예전보다는 지금이 낫다. 최소한 지금은 자신의 손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를 볼 때면 늘 의문이 든다. 대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나이만 퍼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걸까? 아버지를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대체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되는 걸까?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나이로만 보면 나 또한 어른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행동이 옳은 행동일까? 어린 시절처럼 집을 나가버리는 것만이 해답일까? 모르겠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자.
소쿠리는 어디에 있을까? 비닐 창고를 한 번 살펴보자. 세월이 흐른 탓일까? 창고 이곳저곳 비닐이 찢어져 있구나. 문은 또 어떠한가? 경첩이 휘어져 문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내부를 들여다보자. 으으, 소름 끼친다. 여기저기 거미집이 늘어섰구나. 빼곡히 지어진 거미집 위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 마치 오래된 미라 같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공기 중에 먼지가 정말 많구나. 숨을 쉴 때마다 목에 가래가 낀다. 이건 무슨 냄새일까? 창고에 갇혀있던 꿉꿉한 여름 공기와 함께 곰팡내가 내 얼굴을 향해 몰아친다. 괜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자. 아아, 창고를 가득 메운 어둠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잠깐, 방금 저기서 무언가 움직였는데? 아아, 꼽등이구나. 꼽등이들이 밝은 빛을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구나. 꼽등이들의 통통한 몸뚱아리에 갈색빛이 반짝인다. 으으, 보기만 해도 징그럽다. 저 안에 연가시 같은 기생충들이 꿈틀거린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여기 나무 팔레트 위에 있는 검은색은 무엇일까? 검은색 얼룩 위에 흰색 곰팡이가 얼룩덜룩 피어있구나. 양파를 놓았던 자국일까? 마치 생물 재해 현장 같구나. 저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나무 팔레트 사이로 검은 구멍이 보인다. 블랙홀 같은 구멍이 마치 악인들을 빨아들이는 무저갱 같구나. 크기를 보아하니 성인 한 명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입구다. 아, 그렇구나! 생강 굴이구나. 생강 굴 입구 위를 나무 팔레트로 막아 놓았구나. 그래, 기억이 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팠다고 들었었다. 이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정말로 생강이 들어있기는 한 걸까? 아아,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하다. 구멍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역한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난다. 생강 굴이 아니라 지옥으로 내려가는 입구 같다. 밝은 빛이 닿지 않는 창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구나. 더럽다. 징그럽다. 소름 돋는다. 어둡고 음침하다. 아버지가 대신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 대체 소쿠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 저기에 있구나. 창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구나. 좋다. 이제 밖으로 나가자. 지옥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벗어나자. 여기는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된다.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더러움에 먹혀버릴 것만 같다. 어둠에 물들어버릴 것만 같다. 어서 빨리 밝고 따스한 양지로 나아가자. 악인은 빛을 피해 숨지만, 구도자는 빛을 갈망한다. 나는 부단히, 그리고 묵묵히,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저 빛은 진짜일까?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만일 거짓이라면, 인생이 나를 타락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내가 더 큰 실수를 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추락한 그곳에서,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멀리 돌아갈지언정, 언제든 다시 올바른 길을 되찾아 돌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나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니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자.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