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5.

by 최신글

이십여 년 전, 사랑방.


마누라야! 이 여편네야! 내가 술 가져오라는 말을 언제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네년이 손님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다 깨뜨리는구나. 이놈의 여편네는 잠시라도 틈을 주면 딴짓을 하러 다니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마누라야! 어디 갔느냐? 서방이 곧 하늘이거늘, 대체 서방이 시킨 일은 하지를 않고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거냐? 마음같아서는 이년의 다리 몽둥이를 똑하고 부러뜨려 놓으면 좋으련만, 그랬다가는 밥을 짓지 못하겠다고 난리를 피워댈까 두렵구나. 마누라야! 하늘 같은 남편이 부르는데 대체 어디에 있느냐? 셋 셀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네년의 다리 몽둥이를 정말로 부러뜨려 놓겠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시길래 그렇게 고함을 지르세요? 어머니는 왜 찾으시는데요? 어머니는 지금 밭에서 일하고 계세요.

뭐―라? 야―! 그놈의 밭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밭일이야! 그딴 일이 서방의 말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냐? 응? 이년이 제 서방을 아주 호구로 보는구나. 지아비의 말은 내쏟아 버리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거냐? 안 되겠다. 이년을 당장에 후둘겨 패야겠구나. 어이쿠야, 그렇지. 내가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구나. 이년은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년이었지. 이년이 요즘 매를 맞지 않아서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당장 그년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저년이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맞아봐야 제 서방 무서운 줄 알겠구나. 야, 태영아, 내 몽둥이는 어디에 있느냐? 가서, 내 몽둥이 좀 찾아오니라.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지 마세요! 어머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때리려고 하세요.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밭에 나가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가락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고된 일에 뼈마디는 굵어졌고, 손톱 밑에는 검은 흙이 씻기는 날이 없어요. 고운 얼굴은 뙤약볕에 새까맣게 그을렸고, 허리는 새우처럼 굽어졌어요. 아버지는 무더운 여름철에 홀로 밭에 나가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몸이 땀에 절어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신 적이 있으시냐구요! 밤늦게 들어와 기절하듯 주무시는 어머니는 다음 날 또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러 나가세요. 저는 어머니가 과로로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에요.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훈김에 쓰러지실까 봐 걱정이에요. 남들은 그런 어머니를 얼마나 칭찬하는 데요. 어머니를 흉보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에요. 제발 어머니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를 때리지 말아 주세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 말했어요. 어머니는 밭에 계시지 않아요. 아버지가 원하시는 술을 사러 읍내에 나가셨어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분명 맛있는 술을 한 상 차려오실 거예요. 여기 잠시만 계셔보세요. 제가 얼른 나가서 어머니를 모셔올게요. 지금 당장 달려갈게요. 저는 달리기가 빨라요.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화를 내지 말아 주세요. 때리지 말아 주세요.

시끄러! 저리 비켜!

아버지! 아버지!

너 이 자식, 저리 안 비켜? 에라―!

아아악!


손이 닳도록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높이 치들었다. 밝은 빛이 번쩍이더니 온 세상이 순식간에 컴컴해졌다.

어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오셨다.


아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죽이는구나! 동네 사람들, 우리 좀 살려주시오! 우리 좀 살려주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 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아버지가 저런단 말이냐? 금수도 자기 자식은 목숨보다 아끼거늘, 대체 이 사람은 무엇이란 말이냐! 태영아, 눈 좀 떠봐라! 정신 좀 차려봐라! 아아, 당신은 대체 왜 이러십니까? 당신이 이러고도 사람입니까? 제정신입니까? 아니다. 미쳤구나. 저 사람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답니까?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아비로서 좋게 타일러야지, 이렇게 때려죽인단 말입니까? 아이고야, 태영아, 눈 좀 떠봐라! 제발 정신 좀 차려봐라! 아아, 이를 어쩐단 말이냐? 아무리 불러봐도 눈을 뜨지 못하는구나. 큰일이다. 이게 무엇이냐? 우리 아기 머리에 흐르는 이 붉은색은 무엇이냔 말이다! 피다. 우리 아기 피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른다. 아이고―! 이를 어쩐단 말이냐. 울분이 터진다! 기어코 애비가 제 자식을 때려죽였구나. 살인이다! 살인이야! 저놈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 아아악, 하늘도 무심하다.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시련을 준다는 말인가. 하나님, 우리 태영이 좀 살려주세요! 우리 태영이만 살려주신다면 어떠한 일도 마다치 않겠습니다. 아아, 다행이다. 심장이 뛴다.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 태영이가 아직 살아있어.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야―! 이년이 미쳤나. 혼자서 지랄 발광을 다 하는구나. 그놈은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그놈은 그 정도로 죽을 놈이 아니야!

뭐라구요? 그게 어디 아버지로서 할 말입니까? 아들을 때려서 기절시킨 사람이 할 말입니까? 당신은 인간이길 포기한 겁니까?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두렵지도 않습니까?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재앙이 걱정되지도 않습니까? 신이 있다면 당신에게 벌을 내릴 겁니다. 당신은……

닥쳐―!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어디 하늘 같은 남편에게 못 할 말이 없어! 그리고 이놈은, 이놈은……

이놈은 뭐요?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하세요!

시끄러―! 그, 그래, 맞다. 이게 다 네년 때문이다. 모든 게 다 네년 탓이야! 네년이 술만 사 왔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년이 남편 말을 개 좆으로 알고 무시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야! 어디 한 번 봐라. 네년이 술을 사 왔느냐? 내가 사 오라는 술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 응? 그거 봐라. 없지 않으냐? 이게 다 자업자득이란 거다. 자업자득이 무슨 말인지는 알기나 하느냐? 흥, 무식한 네년이 그 말뜻을 알 리가 없지. 네년이 그처럼 무식하니, 남편 알기를 개 좆으로 아는 거다. 응? 이리 와라. 오늘 내가 단단히 가르쳐주마. 네가 맞다 보면, 남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자연히 깨닫게 될 거다. 여자와 북어는 팰수록 맛이 난다고, 옛말 하나 틀린 거 없다. 너 같은 년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이리 와!

아아, 이놈이 정녕 미쳐버린 게 로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는 왜 이런 집안에 시집을 오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뜻대로 시집을 왔건만, 너무나도 괴롭다. 하나뿐인 남편이란 놈은 허구한 날 도박과 술에 빠져 사는구나. 백날 밭에 나가서 일하면 무엇하랴? 도박으로 날린 빚은 봉실산을 사고도 남고, 술값으로 쏟아부은 땀방울은 만경강을 채우고도 남을 건 만. 그래도 남편이라고, 남들 보는 앞에서 기 좀 세워준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술을 사다 줬건만, 그새 그걸 잊어버리고 또다시 술타령을 하는구나. 네 이놈아! 네놈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응? 그게 네놈이 직접 사다 마신 술이란 말이냐? 그럴 재주라도 있으면, 내 속이 이렇게 타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앉아 도박만 하는 네놈이 사람 새끼냐? 응? 네놈도 사람이라면 죽도록 고생하는 마누라를 위해 따듯한 말 한마디를 못 할망정, 최소한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 오냐, 이제 보니 너는 사람 새끼가 아니로구나. 너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로구나. 동네 사람들, 여기 악마가 나를 패 죽이려 합니다. 아아악! 네놈이 정녕 나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구나! 너무나 괴롭다. 저런 것도 남편이라고 모시고 있는 내 팔자가 너무도 비참하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너무도 괴롭다. 어느 누가 이 고통을 알 수 있으랴? 어느 누가 이 찢어지는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으랴?

닥치지 못해―! 네년이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응? 서방 말이 아직도 우습단 말이냐? 가만 보자. 네년이 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오냐, 오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누가 먼저 죽나 한 번 해보자―!

아아악, 사람 살려!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아, 몽둥이에 맞은 곳이 부어오른다. 뼈가 부러지듯 아프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처럼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아니다. 대역죄인도 이렇게 맞지는 않을 것이다. 저놈이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남편이란 말인가? 가족이란 말인가? 저놈은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무조건 화부터 내는구나. 자기 마음이 풀릴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는 놈이구나. 아아,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는 편안할 것 같다. 저놈과 같이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아아, 아니다. 내가 죽으면 우리 태영이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안 된다. 우리 불쌍한 새끼는 내가 없으면 죽는다. 저놈 손에 맞아 죽는다. 우선 빌자. 우리 태영이를 위해 살려달라고 빌자.

서방님, 잘못했습니다! 서방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아아,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몽둥이로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에 감각이 하나도 없구나. 말은 하고 싶은데,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말을 해야 한다. 더 크게 말해보자. 살려달라고 죽을힘을 다해 외쳐보자. 서방님―! 살려주시오. 내가 다 잘못했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오―! 엉― 엉. 얼굴이 부어올라 눈이 떠지지 않는다. 부어터진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터져 나온다. 아아악, 서럽다! 내 인생이여. 원통하다! 이 마음이여.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괴롭다. 죽고 싶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봐도 나를 불쌍히 돌아보는 이는 어디에도 없구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발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우리 태영이가 죽기 전에 나는 죽을 수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오…… 아아, 정신이 몽롱하다…… 지금 이게 꿈일까? 아니면 생시일까? 내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이도 모르겠다. 꿈이라면 어서 깨어어나야 할 텐데…… 바테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나아 있는데…… 부지인히 일해애야 우리 태영이 하교도 보내고, 옷도 사히입고, 마나는 것도 사 먹이 텐데…… 이 부싸한 것. 내가 엄스면 어찌아꼬…… 어찌아꼬…… 세바 사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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