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10.

by 최신글

어때, 여기? 조명도 적당히 어둡고, 자리도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어서 대화하기에는 좋아. 텔레비전 때문에 다른 사람들 소리도 잘 안 들리고. 괜찮지? 그럼 우리 저쪽 구석진 데로 가서 앉을까?

그래. 오, 여기 의자도 좋은데? 쿠션도 푹신하고. 아, 그런데 말이야. 아까 네가 말하던 거, 중학교 때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게 무슨 말……

여기요~. 주문이요. 응? 뭐라고? 아 잠깐만, 주문 좀 먼저 하고. 어디 보자. 여기 맥주 두 잔이랑, 소주 두 병 주세요. 치킨은 뭐 먹을래? 양념? 후라이? 아니면, 어니언? 새로운 거 먹어보고 싶다고? 그럼 어니언 치킨 한 마리 주세요. 네, 빨리 빨리 천천히~,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하하. 아 참, 방금 뭐라고 그랬지?

음? 아냐, 아무것도. 생각해보니까 별거 아닌 것 같더라고.

…… 아 참, 내가 동창회 했었다고 말했지? 그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보여줄까? 동창회도 여기에서 했었거든. 야, 아주 말도 못 했어. 다들 술을 얼마나 잘 마시던지. 중학생 때는 술만 마셔도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녀석들도 지금은 술고래가 되어있더라니까? 하하하. 다들 회사일 때문에 엄청나게 마신다고 하더라. 그 쪼그맣던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다 커가지고 말이야. 그치?

하하. 그러게. 다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오, 이게 그 사진이야? 생각보다 많이 모였는데? 음, 그래도 옛날 얼굴이 많이 남아있긴 하다. 몇몇 애들만 빼면 거의 다 알아보겠는걸? 근데 얘는 누구지? 전혀 모르겠는데?

아 걔, 지선이. 황지선. 중학생 때 엄청 뚱뚱했던 여자애 있었잖아. 자기 말로는 독하게 다이어트 했다고는 하는데, 진실이야 아무도 모르지. 의느님의 도움을 받았을지.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 이렇게 예뻐졌는데. 노력이든, 의느님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지금은 모델 쪽 일을 하는 거 같더라고. 확실히 이쁘긴 이쁘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남자 놈들이 어찌나 눈치를 보던지. 하하하. 확실히 모델 일을 하는 사람이라, 남자들에게 딱 선을 넘지 않을 정도로만 친절하게 잘 대하더라고. 남자 놈들 여럿 애태웠을 거야. 그중 몇 놈은 얘랑만 따로 2차를 가려고 얼마나 눈치를 보던지. 동창회가 끝나자마자 자기 남자친구 자동차를 타고 사라지는 걸 보고는 바로 포기를 하더라. 하하하. 자동차가 으리으리했었거든. 사람 인생 참 모르지?

하하하. 그런 일도 있었어? 확실히 이쁘긴 이쁘네. 아, 그래! 이제야 생각난다. 황지선이. 뿔테 안경 끼고 맨날 혼자 있었잖아. 와, 정말 많이 변했구나.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 이 정도면 연예인을 해도 될 것 같은데? 하하. 정말이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구나.

하하. 그렇지…… 야, 그러면 여기 있는 남자애는 누구인지 기억나냐? 황지선이 앞에 감색 정장 입은 남자 말이야.

야, 당연히 기억하지. 준수잖아. 이준수. 우리 셋이서 맨날 같이 어울려 다녔었는데 기억 못 할 리가 있냐? 하하하. 갑자기 옛날 생각도 떠오르네. 우리가 좀 철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 왜, 매점에서 빵 사 먹을 돈이 없어서 몰래 훔쳐먹었었잖아. 그러다 매점 아줌마한테 걸려가지고 죽을 뻔했었지. 그때 교장도 와가지고는 경찰을 부르네 마네 하다가, 준수네 아버지가 오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었잖아. 하하하. 그때는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벌벌 떨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것도 다 추억이네. 그나저나 준수는 지금 뭐 해? 잘 지낸 데?

……응. 잘 지내. 그렇지 않아도 너 동창회 때 안 왔다고 서운해하더라.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처를 알아야 말이지. 하하. 뭐, 지금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지만.

그래. 이제는 서로의 연락처도 알았으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또 만나자. 앞으로도 기회가 많겠지.

그래……

야,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으, 응. 태영아, 사실은 말이야…… 사실은, 이런 말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는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사실 준수는,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거야. 동창회가 끝나고 며칠 뒤에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준수가 죽었다더라.

뭐?

믿기 힘들지? 아니, 어이가 없지? 잘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는 거 말이야.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준수가 말이야. 이런 일을 겪고 보니까, 세상일은 정말이지 모르겠더라. 아니, 나는 정말 준수가 그렇게 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죽어버릴 수가 있는 거지? 응? 며칠 전만 해도 동창회에 다 같이 모여서 술도 마시고 얼마나 즐겁게 웃고 떠들었는데.

어떻게 죽은 거야, 준수는?

자살이래. 경찰이 그러더라고. 딱히 CCTV에 찍힌 것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그래서 자살로 결론지은 것 같아. 그런데 난 말이야, 이건 좀 어딘가 이상하다고 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진짜 말이 안 돼. 너는 동창회에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준수는 말이야, 최근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었어. 그것 때문에 얼마나 들떠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살이라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냐? 응?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모르긴 뭘 몰라. 야, 그리고 말이야. 경찰은 원래 그런 거냐? 응? 텔레비전 같은데 보면, 사람이 죽으면 막 대대적으로 수사도 하고, 방송에도 내보내고 하던데. 현실은 왜 아무것도 없냐? 사람이 죽었는데, 신문에도 안 나와. 허 참, 정말이지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만 돌아가더라. 세상에 어쩜 이럴 수가 있는 거냐? 응?

대체 어떻게 죽었길래, 경찰은 자살이라고 결론지은 거야?

자기 집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데. 아파트에 살았거든.

그런…… 그럼, 너는 뭐야? 너는 준수가 죽은 게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걸 확실히 모르니까 답답한 거지. 태영아, 나도 진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탐정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내냐? 응? 아니, 현실에 그런 탐정이 있기는 하냐? 진실은 하나다! 라고 외치면서 범인을 잡는 사람 말이야. 그런 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잖아. 아니냐? 현실은 그냥 흥신소다 이거야. 아무리 흥신소라 해봤자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인데, 걔들도 별수 있겠냐? 응? 아예 증거 자체가 없는데. 그리고 아무리 준수가 친구라지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고.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이 돈이 어디 있다고 흥신소를 찾냐? 당장 내 밥벌이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안 그러냐? 그렇잖아. 아무리 친구라도 가족처럼 발 벗고 나설 수는 없는 거잖아.

뭐, 그렇지. 현실은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래서, 준수네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데?

별말씀 안 하시는 것 같아. 비통하시겠지만, 자살 외에 달리 증명할 단서가 없으니까.

그렇구나. 그래, 그러니까 경찰도 자살로 결론지었던 거겠지. 확실한 의심의 사유가 없다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경찰도 우리랑 같은 사람인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게다가 CCTV에 찍힌 것도 없고, 증인도 없다면, 딱히 경찰의 판단에도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은데?

뭐야? 야, 김태영이!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응? 뭐, 이상한 점이 없어?

아이씨, 깜짝이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왜 갑자기 큰소리야?

하하―! 이 자식이, 너 지금 나 웃기냐? 응? 맞지? 너 지금 나 웃기려는 거지? 하하. 뭐? 이상한 점이 없어? 없기는 왜 없어, 이 자식아! 너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야?

야야, 너 취했냐? 좀 조용히 말해.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시끄러! 내가 시끄럽긴 얼마나 시끄럽다고. 우리 고객님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이야! 알아들어? 하하. 태영아~, 우리 귀여운 김태영이! 이 형은 다― 이해하니까, 형한테만 솔직하게 말해봐. 응? 너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우리는 그렇잖아. 그렇지? 우리는 친구잖아!

너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닌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그런가 기분이 들떴나봐요. 술이 좀 과하게 들어갔네요. 네, 네. 죄송합니다. 야야,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여기서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알았어. 다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자.

알긴 뭘 알아, 인마. 너 이 자식, 가만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구만. 야, 이것 놔봐. 놓고 이야기해. 안 놔? 그래. 준수는 말이야, 경찰 말대로 자살이다, 이거야.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으니까, 당연히 자살이겠지. 물론! 다른 사람이라면 그 말을 딱~ 믿겠지. 응?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누구냐? 응? 우린 친구다 이거야! 하하―! 너 김태영이, 나 곽상철이, 그리고 우리 불쌍한 이준수. 우리 셋은 친구잖아. 안 그러냐? 그렇잖아! 그러니까 너랑 나랑은 알 거 아니야. 아니야? 응? 야 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봐. 너 정말 준수가 죽은 게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그러지 말고, 탁 다 까놓고 솔직히 말을 해보란 말이야.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딨어, 이 자식아. 응? 그렇잖아. 우린 친구잖아. 죽을 때까지 친구잖아!

아이참, 너 정말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왜 또 그렇게 쳐다보는데? 야이씨, 정말 모른다니까? 그래! 정말 모르니까 너한테 물어보지! 너 설마 지금 내가 친구 죽은 거 가지고 농담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응? 그런 거야? 그래~! 정말 그렇다니까? 내가 알고 있으면 너하고 이렇게 입씨름이나 하고 있겠냐? 그래, 당연히 우린 친구지. 너랑 나랑 이준수랑 중학교 때 자주 어울려 다녔잖아. 그런데 그게 뭐?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하하―. 이 자―식이, 자식이, 자식이. 떽! 이놈. 아, 이놈이 나를 뭐로 보고,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하네? 하하―. 좋다! 좋다 이거야. 그렇다면 말이야, 내가 먼저 너한테 고백을 할게. 알겠지? 그래! 고백 말이야. 나 곽상철이, 너 김태영이한테 딱, 다 터놓고 전부 다 말한다 이거야. 좋지? 음, 그래…… 태영아, 너한테는 미안한데 말이야, 난 솔직히 네가 우리 준수를 죽인 줄 알았다?

뭐? 하하하. 야, 곽상철이.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다 터놓고 말한다는 게 겨우 그거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웃기지? 어이없지? 나도 믿기지 않는데, 믿고 싶지가 않은데! 사실이다. 존나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사실이야. 나는 정말로, 네가 이준수를 죽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런데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 내가, 이 곽상철이가, 오늘 너를 만나 보니까 알겠더라. 넌 준수를 죽이지 않았어. 왜냐? 왜냐하면 너는 그럴 수 있는 놈이 못되거든. 너 같은 놈은,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 주고 살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이거야. 좋게 말하면 아주 올바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중에 상호구다 이거지. 하하―. 뭐?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하하. 네가 그렇게 쑥 하고 물어보면, 내가 쏙 하고 알려줘야 하냐? 응? 그럼 나 같은 사람은 뭐 해 먹고 살라고? 하하. 농담이야, 농담.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그냥 감이다. 감. 땡감 말고 직감. 하하―. 웃기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 그런데 말이야. 이쪽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게 생기더라. 여러 고객을 만나다 보면, 그런 내공이 생긴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지금 내 이 직감이 말이야, 이 머릿속에서 너는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이해되냐?

아하하. 알았어, 알았어.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해했어. 나도 나름 작가라고, 사람을 연구하다 보니까 네가 말하는 그 감이라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그런데 상철아, 네 말을 다 듣고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는데, 너는 왜 내가 준수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거야? 난 준수한테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데?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야. 대부분 혼자 지냈었으니까. 더군다나 준수와 만난 건 중학생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어. 문자나 SNS를 주고받은 적도 없었고. 만일 내가 준수를 죽이려 했다면, 왜 지금까지 참았을까? 굳이 지금 죽여야 했을까?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내가 고향에 돌아온다는 걸 사람들이 알 텐데? 그럼 알리바이 형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혹시 일부러? 이동을 하다 보면 어차피 CCTV에 찍힐 테니까? 아니야. 나는 준수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나는 준수네 아파트의 CCTV에도 찍히지 않았어.

그래. 미안하다, 태영아. 네 말이 맞아. 너를 만나고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그전에는 몰랐으니까,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으니까, 너한테 연락을 했던 거야.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았더라면 다르게 생각했었겠지. 어쨌든, 너를 의심했던 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하지만 그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셋뿐이잖아. 그러니까, 누군가 준수를 죽였다면 범인은 나 아니면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분명히 아니니까, 너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 안 그러냐? 응? 그런데 이렇게 오늘 만나고 나니까, 너는 아닌 거 같다 이거야.

잠깐만 상철아. 잠깐만 멈춰봐. 내가 설렁탕집에 있을 때부터 뭔가 놓치는 게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아까부터 어딘가 대화가 어긋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좀 명확해지는 것 같다. 상철아, 네가 말한 그때의 비밀이란 게 대체 뭐야? 우리 셋만 아는 비밀이라니? 매점에서 빵을 훔쳤던 거? 그건 이미 매점 아줌마한테 걸려서 비밀이 아니잖아. 그것 말고 또 비밀이라고 부를만한 게 있나? 같은 반 아이들을 놀렸던 거? 그거라면,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었잖아. 원한을 갖고 막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죽일 정도는 아니었잖아. 안 그러냐? 응? 설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가해자의 착각인 거냐? 설령 그렇다 쳐도, 이것 역시 우리 셋만의 비밀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놀림을 당했던 친구들도 이미 사건 자체는 알고 있을 거 아니야?

하아…… 태영아, 네가 자꾸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답답한 거야. 너는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할 수가 있는 거냐? 응? 아니, 정말로 잊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하하.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 김태영이. 야, 너 혹시 중학생 이후로 언제 사고라도 크게 났었냐?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던 거야? 그래서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응? 대체 네가 어떻게 한수아 사건을 잊어버릴 수가 있냐?

뭐?

한수아 말이야. 우리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 얼굴은 이뻤는데, 성격이 내성적이라 같은 반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었잖아.

어어, 그래. 한수아. 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그 애 이름이 왜 갑자기 나오는거냐? 걔는…… 그 애는, 체육 시간에 혼자 교실에 남아있다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서 죽었었잖아. 자살을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설마 너 지금 준수의 죽음이랑 그 사건이랑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상철아, 방금 네 입으로 말했잖아. 한수아는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그래서 우리 셋이랑은 어울린 적도 없었어. 무엇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수아랑 대화를 나눴던 기억조차 없는데?

……너 진짜 내가 아는 김태영이 맞냐? 응?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냐? 아니, 대체 어떻게 잊어버린 거야?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한테도 좀 가르쳐주라.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후, 됐다. 이 이야기는…… 태영아, 우리 자리 좀 옮길까? 여기서는 남들 시선 때문에 도저히 말을 못 하겠다.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더 많아지네.


나와 상철은 가게를 나왔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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