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12.

by 최신글

자, 잠깐. 잠깐만, 상철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준수가 수아를 죽였고, 내가 그걸 자살로 꾸미자고 말했었다고?

크흐윽! 싯팔, 그래! 네가 그랬단 말이야. 귀신같이 눈깔이 뒤집혀서는, 나한테 그렇게 하자고 똑똑히 말했단 말이야. 흑흑, 너 이 시팔,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냐? 응?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너는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는 거지? 크흑, 아니다. 너는 옛날부터 그랬었어. 옛날부터 나는, 네가 정말 사람 새끼가 맞나 의심스러웠어. 그때 우린 겨우 중학생이었잖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질 수가 있었던 거지? 이준수도 나한테 말했었어. 가끔 네가 무섭다고. 죽은 한수아보다, 네가 더 귀신 같았다고! 흐어엉―.

너 대체 무슨 말을…… 야야, 일단 눈물 좀 먼저 닦고 이야기하자. 코도 좀 풀고.

엉― 엉. 태영아, 나 정말 무섭다.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다고. 누구한테 원한을 산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줄은 정말 몰랐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이렇게 무서운 줄 정말 몰랐다. 나 말이야, 준수가 죽고 난 뒤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나. 솔직히, 지금 하는 일도 때려치웠어. 겉만 화려하면 뭐해? 말이 영업 사원이지, 사실상 부자들 상대로 사기나 치는 일이거든. 나 말이야, 앞으로는 정말이지 착하게 살 거야. 남들한테 피해 안 주고 착하게 살 거라고. 엉― 엉. 태영아, 나 좀 살려주라. 나 정말 죽고 싶지 않아. 살 수만 있다면, 나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손발이 닳도록 빌 수도 있단 말이야.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하냐? 응? 싯팔, 너한테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기는 하냐? 어? 네가 진짜 사람 새끼이긴 하냐? 너 혹시 그거 아니냐? 사이코패스? 크흐윽, 아아악! 차라리 그때 자수를 했었다면, 그렇게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네 말을 듣지 않고 경찰에 자수를 했었더라면, 최소한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응? 준수가 죽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안 그래, 김태영?

아이참,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응? 대체 누가 널 죽인다고 그래? 너도, 나도, 아무도 죽지 않아. 알겠어? 준수도 누가 죽인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까 죽은 걸 거야. 네가 말했잖아,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그러니까 준수도 그런 걸 거야. 슬프긴 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준수도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일 때문에 좌절을 했던 거고. 그래서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 거야. 알았어?

시끄러―! 넌 몰라. 너 같은 새끼는 모른다고. 준수는 절대 그럴 놈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고! 분명 준수는 누군가한테 살해당한 거야. 누군가 원한을 품고 준수를 죽인 거라고!

아니,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너 스스로가 직접 범인을 찾으려고 나서보지 그러냐? 응? 하다못해 경찰서에 찾아가서 민원을 제기해보던가,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적극적으로 제보를 해보던가.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노력을 해봤어야지!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싯팔, 그것도 말이라고. 누구는 그런 생각도 안 해봤겠냐? 응? 당연히 그런 것도 다 해봤지. 방송국에 제보도 해봤고, 경찰서에 민원도 제기해봤단 말이야. 아무리 그렇게 해봐도 증거가 없다는 말만 돌아온단 말이야. 나만 이상한 놈이 된다고!

그럼 된 거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네 생각이 틀린 거네! 본인이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응? 넌 뭐, 신이야? 네가 하는 말은 다 옳아야 해? 지금까지 넌 잘못된 판단을 내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한 번도 네가 망상에 빠진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 괜히 수아 사건이 찔리니까 너 혼자만 피해망상에 사로잡혀있는 거 아니야?

만약 범인이 경찰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

뭐?

준수를 죽인 범인 말이야. 그 범인이 바로 준수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다른 사람들이 자살이라 말한다고 너도 그렇게 믿고 따를 거냐?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을지도 모르는데? 응? 그런데도 망상으로만 치부할 거냐고!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범인이 경찰이라니? 경찰이 준수한테 원한이라도 품었다는 거야? 그래서 증거를 조작했던 거고? 그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야?

나도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너도 봤으니까 알 거 아냐? 동창회 때 찍은 사진. 거기에 박영희도 있었잖아. 왜, 너랑 같은 마을에 살던 여자애. 걔가 준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었다. 뭔가 냄새 안 나냐? 응? 걔가 분명 뭔가 일을 저질렀던 거야. 엉―엉. 태영아.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응? 아니다. 네가 지금 남 걱정할 때냐? 너도 나처럼 목 내놓고 사는 처지인데. 그래 이 자식아! 그년이 이준수를 죽인 게 틀림없다니까? 뭐, 증거? 증거는, 아직 없어. 그치만, 그년이 범인이야. 범인이 확실하다고! 크흐윽.

하아, 너 정말 술이 많이 들어갔구나. 아주 그냥 이랬다저랬다 횡설수설을 하네. 야, 언제는 나 같은 놈은 절대 사람을 못 죽인다며? 호구 중에 상호구라며? 그래놓고는 뭐? 내가 준수를 죽였다고? 하하. 듣자 듣자 하니까 아주 그냥 소설을 써요. 야 임마, 네가 소설가야? 응? 아주 그냥 입만 열었다 하면 작품이 줄줄 써지지? 써져. 야! 솔직히 말 해봐. 수아 사건도 네가 지어낸 이야기지? 응? 왜 박영희만 범인이냐? 대식이, 창수, 지혜, 지선이, 기쁨이, 등등 동창들 이름 싹 다 부르지 않고? 야야야, 취했다, 취했어. 알았으니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고. 야! 그만 마시라니까? 그만하고 컵 내려놔.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늦었으니까, 그만 마시고 제발 좀 가자고.

놔, 이거 안 놔? 야 이 싯팔. 너 지금 내가 예전의 곽상철로 보이냐? 어? 너 이 자식. 네가 지금 남처지 걱정할 때야? 응? 너 인마, 말이 작가지 그냥 백수 아니야, 백수. 어? 야, 나도 네가 쓴 책 다 읽어 봤어 인마. 뭘 그렇게 놀래? ‘미궁’ 말이야, ‘미궁’. 그래, 그거. 그거 네가 쓴 책이잖아, 안 그래? 하하―. 야 이 자식아, 어디서 이 형님을 속이려고. 네가 가명을 쓰면, 어?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어? 응? 그 책 내용, 완전히 우리 이야기잖아. 안 그래? 아주 그냥 우리 비밀을 싹 다 빼다 박아 넣어놨더만. 응? 야 이 씨발놈아. 야 이 천하에 빌어먹을 썅놈의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응? 니 새끼가 친구냐고! 크흐윽. 이 싯팔놈아, 니 새끼가 그 책만 안 썼어도! 준수는 안 죽었어. 알아? 이 싯팔 살인마 새끼야. 네가 준수를 죽인 거라고! 알아? 네놈이 우리 비밀만 잘 지켰어도! 준수는 안 죽었다고, 이 더러운 사이코패스 새끼야. 흑흑흑.

너, 너 이 자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미궁’은 말이야, ‘미궁’은! 그건, 그건 내가 직접 만든 순수 창작물이거든? 응? 네놈이 방금 지어낸 삼류 소설이랑은 전혀 상관없다고, 알아? 야, 곽상철이. 이 싯팔새끼야. 뭐가 어째?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응? 네깟 놈이 뭘 안다고! 남들 등골이나 빨아먹는 더러운 사기꾼 새끼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응? 네놈 따위가 예술이 뭔지나 알기나 해? 응? 창작의 고통이 뭔지나 알기나 해? 사기꾼 새끼가 뭘 안다고 감히 내 앞에서 예술가의 창작을 논해? 야, 곽상철이, 일어나봐. 너 이 자식, 안 일어나? 야! 곽상철!

으―, 음냐. 음냐. 시끄러워, 이 자식아…… 조용히 말 안 해? 나 귀 안 먹었거든?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들으니까, 좀 조용히 말해. 정신 사나워. 남들이 다 쳐다보잖아. 음냐, 음냐……

이 자식이, 내가 한 말을……


나는 곯아떨어진 상철을 집까지 데려다준 뒤 밖으로 나왔다.


아아, 혼란스럽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다. 상철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 세상에 진실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을 붙잡아 두는 걸까? 나는 왜 수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걸까? 내가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내가 친구의 죽음을 자살로 꾸몄다는 게 진실일까? 나는 대체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아아, 두렵다. 무섭다. 하지만 태곳적부터 간직해 온 불가사의가 풀리는 것 같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육신이 지친다. 힘이 빠진다. 어서 빨리 서울로 올라가서 쉬고 싶다. 마침 저기 시내버스가 온다. 일단 의자에 앉아서 좀 쉬자. 술을 너무 마신 걸까? 잠이 온다. 조금만 눈을 붙여도 될까? 아니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눈꺼풀이 말을 듣지 않는다. 천하장사도 자신의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변명을 해본다. 아아, 나의 연약한 육신이여.

너는 죽어야 한다.

하하하. 이건 꿈이냐? 아니면 생시냐? 잠에 빠지기도 전에 얼굴 없는 여자가 보이는구나. 아니다. 나는 이미 잠에 빠져있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토록 기이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 나는 부지불식간에 잠에 빠졌던 거구나. 아니다. 정말 그런 걸까? 모르겠다. 내가 잠이 든 걸까? 아니면 잠이 내게 깃든 걸까? 내가 이 여인을 부른 걸까? 아니면 이 여인이 나에게 찾아 온걸까?

너는 죽어야 한다.

아아, 공포란 무엇일까? 얼굴 없는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는 공포가 내 몸을 옭아매었건만,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없구나. 본질을 알고 나면 공포는 사라진다는 말인가? 그렇구나! 공포여, 너의 이름은 미지이구나! 너 얼굴 없는 여자여, 네 정체를 밝혀라! 나는 더이상 네가 두렵지 않다. 아니다. 나는 이미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너는 수아다. 한수아. 나의 중학교 동창이자,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다. 아아, 이제야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기억이 돌아온다. 단절되었던 기억의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결되어 나에게 가르쳐준다. 그래. 나는 얼굴을 가린 너의 머리카락이 기억난다. 너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기억난다. 음침한 분위기도,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도,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도, 모두 기억이 난다. 아하하. 그래, 그랬었느니라. 그때도 너는 그렇게 나를 쳐다보았었느니라.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눈빛으로 나에게 도움을 갈구했었느니라. 그래서 그런 것이냐? 그래서 내게 다시 온 것이냐? 죽어서도 잊지를 못해서? 귀신이 되어서도 복수를 하기 위해서? 준수를 죽인 것도 네가 한 짓이냐? 네 이놈! 망령 따위가 감히 어디 인간 세상에 관여를 한다는 말이냐? 아니다. 너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너는 단지 나의 무의식의 발현일 뿐이다. 두려움이 불러낸 신기루일 뿐이다. 욕구의 순례길을 현혹하는 환영일 뿐이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내 눈앞에서 물러가라! 너는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나의 두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 너는 진실의 문 앞에서 방황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라!


나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잠에서 깨어났다.


하하하. 이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가져봤던가? 진실은 허상을 이기고, 진리는 인생을 밝혀주는구나.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비구나.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구나. 빗물이 내 얼굴을 적신다. 아니다. 이건 빗물이 아니다. 여름밤에 내리는 장맛비가 아니다. 눈물이다. 내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이다. 왜일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밀려온다. 꿈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아아, 나의 허물이여! 나의 잘못이여! 나의 부족함이여! 과거에 저지른 내 모든 업들이 후회로 변해 밀려온다. 눈물로 변해 흘러내린다. 할 수만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고 싶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박박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한 번 흘러간 과거는 돌이킬 수가 없다. 아아, 이제 나는 어찌해야 좋다는 말인가? 상철이 떠오른다. 어서 빨리 전화를 걸어보자. 큰일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니다. 당연하다. 술에 취해있으니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당연하다. 아니다. 당연하지가 않다. 상철에게 돌아가 보자. 친구가 위험하다. 아니다. 내가 위험하다. 어서 빨리 달려가 보자.


나는 버스에서 내려 상철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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