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이고, 여보야. 뭐가 이렇게 시끄럽다냐~? 응? 옆집 형님댁에 또 뭔 일 난 거 아니여? 오늘은 또 무슨 일이길래 잠도 안 주무시고 저렇게 싸우신대?
왐~마, 저 집 시끄러운 거 하루 이틀이간디? 오늘도 별일 아니것지. 넘들 신경이랑은 쓰지나 마시고 우리는 잠이나 잡시다. 하루 죙~일 땡볕 밑에서 일만 하니께 죽겄다. 아고고고고.
여보야,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한 번 가보소. 응? 나 지금 이렇게 임신을 혔는디, 저놈의 싸움 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잔단 말이여. 임산부가 스트레스 받으면 아가도 스트레스받는다는 말도 못 들어봤간데? 티비에서 맨날 그라드만, 임산부는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헌다고. 혹시라도 나가 스트레스 받아가꼬 우리 아가라도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텨?
아~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뭔 놈의 스트레스랴? 잉? 평소랑 똑같구만. 옛날 우리 어머니 때는 막 밭 갈다가 아도 낳고 그랬는디, 그까짓 스트레스 좀 받는다고 뭐 이리 난리다냐?
아, 어머니 때는 어머니 때고, 지금은 지금 이제! 그때하고 지금하고 같간디? 시끄러운 소리랑은 허지말고 빨리 가보기나 혀요. 당신이라도 가봐야 내 마음이 좀 놓이것어! 그렇게 누워있지만 말고, 잠깐이라도 가서 얼굴이라도 좀 비춰놓고 와요. 아, 그라믄 좀 조용해지지 않것어요? 오밤중에 넘들 잠도 못 자게 저게 시방 뭐허는 짓이여.
아따, 알았어, 알았응께. 발로 차지 좀 하지 마소. 나 갔다 올랑께.
여보쇼, 형님! 형수님! 저예요. 옆집 박 씨여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길래 이토록 소란이데요? 예? 사람이 밤에 잠을 자야지, 어디 논이라도 매려고 하시나. 하하. 어르신! 저 왔습니다. 안에 계세요? 저 옆집 사는 박 씨여요. 아이구야! 이게 무슨 일이다냐? 잉? 아이고, 형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여요? 어, 어째서 형님 밑에 어르신이 누워계신단 말이요? 혀, 형수님! 왜 거기서 덜덜 떨고 계셔요? 네? 아이고야, 답답들혀라. 다들 입에 꿀을 발라 놓으셨나. 제발 누가 내 말에 대답 좀 해봐요. 아니다. 이럴 게 아니다. 형님, 저리 좀 비켜봐요. 내가 좀 봅시다. 어르신! 정신 좀 차려보세요. 제 말이 들리셔요? 예? 아이고야, 큰일 났다! 숨을 안 쉬는구나. 맥박이 뛰지를 않는구나. 형님, 큰일 났어요! 어르신이 숨을 안 쉽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니 쫌! 이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저리 좀 비켜보시오. 내가 인공호흡을 해보려니까.
동생! 그만두지 못혀?
아니, 형님! 왜 나헌티 성질을 부리시오? 네? 나는 그냥 형님을 도와주려고 그런단 말이요. 형님이 가만히 있으니께, 나라도 어르신을 살려보려는 것 아닙니까? 예? 아이고, 지희야! 거기 쓰러져서 울고 있지만 말고, 여기 네 아버지 좀 잡아봐라. 네 아버지 좀 말려봐! 어르신을 살리려면 어서 빨리 인공호흡을 혀야 헌다. 아니 그란디, 인공호흡이란 거는 어떻게 하는 거였드라? 잉? 심장을 몇 번 눌러야 하는 거였드라? 입으로 공기를 넣는 거였나? 아니면 빼는 거였나? 아이고, 내 머리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방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야―! 박 씨, 이 자식아! 귓구녕이 막혀있냐? 응? 나가 그 손 놓으라고 말혔지!
아니, 형님, 뭣 땀시 자꾸 나헌티 소리를 지르신다요? 네? 그 눈빛은 또 뭐요? 시방 나를 죽이기라도 하것다는 말이요? 형님이야말로 귀가 먹었소? 나는 형님을 도와주려 한다는 말이오. 네? 형수님, 지희야, 왜 다들 가만히 있기만 혀요? 어서 빨리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아이고―! 그만 하세요. 박 씨 양반. 부탁이니까 제발 가만히 좀 있으세요. 그 짐승 같은 놈은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시라고요!
아니, 형수님!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랍니까? 죽도록 내버려 두라니요? 짐승 같은 놈이라뇨? 형님, 시방 이게 대체 무슨 일이요? 네? 지희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 울지만 말고 누가 속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시오.
내가 죽였다―! 됐냐? 응? 내가 이 개만도 못한 새끼를 죽였다고―!
아이고, 형님! 시방 농담 헐 때가 아닙니다. 예? 헛소리랑은 그만 혀고 자전거라도 퍼뜩 가져 오시요. 영감님을 모시고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갑시다. 아니다. 읍내가 아니라 전주로 나가야겠구나. 지희야, 구급차는 대체 언제 온다느냐? 어디서 출발하는디 여태 소리도 안 들리냐? 잉? 아직 안 불렀다고? 왜? 왜 아직도 안 불렀어? 아이고 답답혀라. 대체 다들 왜 그런데요? 예? 멍청하게 앉아 있지만 말고 어서 구급차를 부르랑께!
야 이, 박 씨! 이 자식아―! 너야말로 정신 좀 차려라, 이 똥멍청이 같은 새끼야! 시방 상황 파악이 안 되는겨? 응? 그라믄 잘 들어봐라잉. 내가 이 두 손으로 이놈의 목을 이렇게 목 졸라 죽였다. 이제 이해가 좀 되었느냐? 응? 내가 이 개만도 못한 새끼를 이렇게, 이렇게, 목 졸라 죽였다고. 이 짐승만도 못한 개새끼를―!
아이고야, 형님! 미쳤습니까? 어르신헌티 대체 왜 그러시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시요? 예? 말 좀 해보세요! 대체 왜 형님이 어르신을 죽였다는 겁니까? 왜요?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릴렀다는 말이요?
그만 하세요, 박 씨 아저씨!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거세요? 네? 아저씨가 모든 사실을 다 안다고 해서 저 죽은 짐승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제 배에 깃든 저 더러운 놈의 아기가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제발 부탁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 저놈은 죽어야 합니다. 죽어 마땅하다구요!
아이고, 지희야. 얘, 그게 무슨 말이냐? 잉? 네 배에 아기가 깃들었다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형님, 정말입니까? 영감님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릴렀다는 겁니까? 그래서 형님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영감님을 죽였다는 겁니까? 예? 형님, 그런 겁니까?
크흐윽. 그려, 내가 그랬다. 이놈이, 이 더러운 짐승 놈이! 내 딸을, 우리 지희를! 그래서 죽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이놈을 죽여버렸었네. 그렇다해도 후회는 없다네. 정신이 있었어도, 나는 이놈을 죽였을 테니까.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놈을 죽였을게야. 인자 알긋나?
아이고야. 형님, 그거시 참말입니까? 네? 아아아!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비극이!
박 씨 동상, 인자 자네는 어찌 할 생각인가? 의도한 건 아니었을 테지만, 자네는 모든 진실을 다 알게 되지 않았나. 나는 자네가 경찰에 신고한다 혀도 원망허지는 않것네.
아이고, 형님.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예? 경찰에 신고를 한다니요? 솔직히 모르것습니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해야 맞는 거겠지요. 허지만 신고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넘도 아니고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인디, 어찌 신고를 한다요? 혀, 형님은 어찌할 생각입니까? 예? 제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수라도 할 생각입니까?
나도 모르것네. 나는 이 두 손으로 내 친아버지를 죽였네. 아버지라 믿었던 짐승을 목 졸라 죽였어. 그러니 자수를 헌다 혀도 상관이 없지는 않을까? 법의 처분을 받아도 불만이 없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어도 전혀 상관이 없건만, 솔직히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이 걱정된다네. 법의 심판은 전혀 무섭지 않건만, 넘들의 손가락은 무섭다네. 크흐윽. 저 집안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겁탈했다. 그래서 손녀가 아이를 뱄다. 라고 손가락질을 당할까 봐 무섭다네. 넘들이 뒤에서 흉을 볼까 두렵다네. 우리 집안을 쉽게 보고 무시할까 봐 괴롭다네.
그, 그라믄 형님, 저한티 좋은 생각이 있응께 이렇게 합시다. 여그 어르신을 생강 굴에 밀어 넣어 버리는 겁니다. 예? 그리고 경찰에다가는 어르신이 안 보여서 찾아봤는데, 생강 굴에 들어갔다가 질식사를 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티비같은디 보니께 생강 굴에 들어갔다가 질식사로 죽는 경우도 많다고들 합니다. 그러니께, 경찰도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 거 아니겠습니까? 네? 게다가 가족이 죽었다는디, 누가 거다 대고 수사를 한다고 나서겠습니까? 안 그라요? 그리고 지희 배 속에 있는 아기는 말입니다만, 그 눈 딱 감고 지우믄 되지 않겠습니까? 그전까지는 뭐 좀 불편하더라도 집에서만 지내면 되고요. 예? 그라고 오늘 있었던 일은 죽을 때까지 우리만의 비밀로 하는 겁니다. 아니 막말로, 여기 있는 우리만 입 싹 닫으믄, 세상에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안 그라요, 형님? 제 말이 어디 틀렸습니까?
하지만……
그려. 자네는 이렇게 살아있제. 나야 뭐, 내 의견만 말했응께 그 뒤 사정이야 모르제. 지희가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던 건지, 아니면 형수님인지, 그것도 아니면 형님인지. 어쨌든 자네는 이렇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지냈을 터고, 어머니를 누나로 알고 지냈을 거여. 후, 세상일이라는 거시 참 모를 일이제? 근디 말이여, 당시에는 아무리 모르는 일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믄 대충 어느 정도는 다 알게 되더라고. 논에 모를 심을 때는 몰라도, 다 심고 보면 내가 심은 모가 반듯한지 비뚤비뚤한지 알 수 있는 거랑 같은 이치 아니것어? 무슨 말인지나 알어? 그려. 나가 아까 말혔지? 점쟁이가 한 말에도 일리는 있을 거라고. 왜 그런고 하니, 내가 본 께 말이여, 자네는 그놈의 빌어먹을 점쟁이가 말 현대로 태어난 거시 틀림없기 때문이여. 근디 하나 분명한 건, 자네는 봉황 같은 그런 훌륭한 게 절대 아녀. 네놈은 말여, 봉황이 아니라 지네 새끼여. 알어? 그 집터에 들러붙어 가지고선 봉황의 살점을 파먹던 지네 새끼가 바로 네놈이다. 이거여. 내 말을 알아 듣겄어? 응? 삼십여 년 전 그때, 영감님이 팠던 생강 굴은 말이여, 지네 새끼가 빠져나가도록 하는 구멍이 아니였어. 그 구멍은 지네 새끼를 집 안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입구였던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노인네가 미쳤다고 자기 손녀딸을 건드려? 응? 지희도 말여, 결국엔 자살 했잖여. 안 그려? 그리고 형님도 결국엔 이렇게 죽어불고. 하― 나, 참. 형님은 대체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는가, 저 혼자 생강 굴에 기어들어 가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생각을 다혀부렀데? 잉? 인자 자네도 알것는가? 이 집에 자네만 태어나지 않았으믄, 나가 아기를 없애버리라고 말혔을 때 형님이 없애버렸으믄, 이 집안이 이런 꼴 나지는 않았을 거시여. 알어? 자네만 없었으믄! 우리 영희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여! 알아 듣것어, 이 지네 새끼야?
이장님,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것 아닙니까?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렇게 저주를 퍼붓습니까?
지나치다고? 하하. 지나치믄, 지나치믄 네놈이 어찌할 건디? 응? 나도 콱, 기냥 죽여 불라고? 응? 나한테도 막 저주를 퍼부어서, 응? 형님처럼 죽여불라 그러는 거여? 이 썩을 놈의 지네 새끼야? 응? 니놈 가족들로도 모자라서 인자 우리 가족들까지 죽여버리겠다는 거여?
이장님!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주세요.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흥! 염벙할. 가라믄 당연히 가야제. 네놈이 가라고 하지 않아도 내 발로 여서 나갈 거다. 왜냐고? 지네 새끼랑 같이 있다가는 무슨 흉이 들지 모르니까, 무서워서 나간다! 끙차.
아버지, 그랬던 겁니까? 이장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인 겁니까? 네? 그토록 가족을 생각하셨다는 분이 왜 그렇게 어머니와 저를 못살게 굴었던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아꼈던 건 가족이 아니라 가문 아니었습니까? 자신의 체면을 향한 남들의 시선을 더 두려워했던 건 아니었습니까? 그래놓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저와 어머니를 못살게 굴었던 건 아니었습니까? 술과 도박이 없으면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저를 두고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던 건 아니었습니까? 저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 얼굴이 보여서 두려웠던 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분노했던 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저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던 건 아니었습니까? 정말 웃기네요. 너무 웃겨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아버지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을 핑계로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했던 겁쟁이였습니다. 매일 괴로움 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현실을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한심한 인간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미래를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늘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던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큰소리만 칠 줄 알았지 그 속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소인배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우리 가족이라는 게 부끄럽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헛살았습니다.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외면했습니다. 내면의 괴로움이 주는 경고와 기회를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숨어만 살았습니다. 자신의 진심을 속이며 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서 타락하기만 했습니다. 여든에 가까운 인생이었건만, 당신에게는 보고 배울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처럼 자신의 공포에 맞설 용기가 없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은 절대로 살지 않을 겁니다. 성장의 기회로부터 도망다니는 인생은 절대로 살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