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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Jan 28. 2018

이상봉 디자이너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패션 업계의 나쁜 관행 '열정페이'에 관하여

                                                                                                                 

인턴백서 제작을 위해 많은 디자인 전공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매우 익숙해진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대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씨입니다. 그분이 오늘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남매 편에 나오셨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안 좋은 일로 성함을 알게 된 분이시기에 TV에 출현하신 모습이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한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건 있습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2018.01.28.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남매 편에 출현한 이상봉 디자이너



이상봉 디자이너님, 

제가 당신의 성함을 알게 된 것은 디자인 전공 친구들의 인턴 경험담을 인터뷰하면서 였습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디자인 전공생들 전원이 "열정페이"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그 고백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이름이 '이상봉' 이었습니다. "열정페이"는 디자이너님으로 인해 탄생한 신조어이니까 어쩌면 당신의 이름이 인턴들이 자신의 열정페이 노동을 고백할 때 빠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디자이너님이 운영하시는 회사에서 일했던 실무자가 인터넷에 '견습은 10만원, 인턴은 30만원, 정직원은 110만원을 준다' 는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열정페이'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2015년에 패션노조 측으로부터 '청년착취 대상'을 받으셨었죠. 수상 직후 공개 사과문을 내고 "패션업계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라고도 말씀하셨죠. 그 당시 이상봉 디자이너님은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직도 겸임하고 계셨었습니다. 충분히 패션계의 나쁜 관행인 '열정페이'를 근절하기 위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2015년 패션노조가 수여하는 청년착취대상을 이상봉 디자이너가 수상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님은 사과만 하셨을 뿐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대안도 내놓으시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시간만 계속 흘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한국패션디자인협회 회장 임기도 끝나버렸습니다. 그 사이 열정페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었죠. 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식으면서 언론도 디자이너님의 열정페이 근절을 위한 노력을 더이상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디자이너님의 사과문을 내신 후로 실질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이제 당신의 밑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일합니까?


이상봉 디자이너님, 

그런데 저는 어쩐지 당신의 디자인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열정페이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제가 취재했던 패션 업계 인턴들 중에 최저 시급을 받고 일했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들은 비현실적인 셈법을 가지고 있어서 50만원을 많은 월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급으로 일하는 것은 패션업계의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관대함도 지니고 있고요. 이상봉 디자이너님으로 인해 조명되었던 패션계의 '열정페이' 문제는 현재진행형 입니다. 


디자이너님, 사실은 위에서 말씀드렸던 '인터뷰에 응해준 디자인 전공 인턴' 중 한 명은 저의 여동생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제 여동생은 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월급으로 30만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동생은 일을 하면서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습니다. 왜 열정페이를 받는 것으로 제 여동생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최저 시급에 한참 못미치는 월급을 주고서도 밤낮 일을 시키는 디자이너 분들이 아닌가요? 청년으로 사는 것은 여느 때보다 고달픈 지금 청년들은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얼마쯤 지니고 삽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무거울텐데, 저는 제 동생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미안해하면서 더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님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님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영향력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디자인실 직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패션업계에서 더이상 열정페이를 관행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그러려면 패션업계의 원로이신 디자이너님이 먼저 바뀌셔야 합니다. 디자이너님의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세요. 그러면 패션업계에서는 열정페이가 관행이라는 말이 조금은 사라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당신에게도 훨씬 유리합니다. 제가 인터뷰한 디자인 전공생들은 열정페이에 너무 지쳐버려서 무조건 최저 시급을 챙겨주는 대기업 패션회사로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당신의 브랜드에서 최저 시급을 준수한 페이를 제시하면 우리나라의 패션 인재들이 당신의 회사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과 브랜드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질 것입니다. 그 영광을 디자이너님이 꼭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P.S) 이미 회사 내의 열정페이 문제를 근절하신 상태라 제가 드리는 말이 쓸모 없는 소리로 치부되면 가장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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