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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Jan 30. 2018

정규직 전환, 가장 달콤한 덫에 걸리다

영상 스타트업 인턴의 이야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는 영상 스타트업에서 3개월 가량 근무했던 인턴 E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제가 일한 곳은 영상 스타트업이었습니다. SNS에 굉장히 트렌디한 영상을 올리는 곳이었는데 팔로우도 많고, 저 역시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던 컨텐츠 제작소였습니다. 이 회사에서 만드는 영상도 그렇고,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해 보니 제 상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습 기간 3개월이 거의 끝날 무렵 회사를 나왔습니다.    


 

너무나 달콤했던 정규직 전환의 덫    


  저는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 KBS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회사였음에도 KBS를 나와 이 스타트업에서 인턴십을 했던 이유는, 이 회사에서는 수습 기간 3개월만 끝나면 바로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KBS 인턴십은 비채용형이었기 때문에 곧 졸업을 앞두고 있던 저로서는 정규직 전환이 보장된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일한지 한 달 반쯤 되었을 때 갑자기 대표님이 최종 평가를 거쳐야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원래는 수습 기간 3개월이 지나면 별 평가 없이 자연스럽게 정규직 전환이 된다고 했었는데 말이죠. 날을 잡아 촬영 기법, 스토리 짜는 것 등 업무에 관련된 일들을 평가할 것이며, 이 날 평가에 통과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최종평가를 할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한 뒤에는 인턴들이 무슨 실수만 하면 ‘이러면 우리랑 같이 일 못한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자기가 한 말을 뒤집고 뻔뻔하게 행동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서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규직 전환이 안 될까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정규직 전환 결정 번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습니다. 수습 기간 3개월을 거친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약속은 구두로만 한 것이라 회사에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해버리면 제가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를 안 써주려고 하다 보니 구두 약속을 명문화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혹시 말을 번복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돼서 계약서를 써달라고 계속 요구하기는 했지만,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 전환이 되면 그 때 정식으로 계약서를 써 주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가서 계약서를 써주려 하나보다’ 하고 수습기간 동안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했습니다. 계약서 작성 문제를 그렇게 쉽게 넘어가버린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수습 기간 중 부당해고

   

  제가 결정적으로 이 회사에서 나오게 된 계기는 저와 함께 일을 시작했던 인턴 두 사람이 하루아침 사이에 해고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분은 대표님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해고당했고, 다른 한 분은 영상 편집 때 사소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다음 날 아침에 해고당했어요. 두 분이 갑작스럽게 해고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더 이상 이런 분위기의 회사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모두 해고당한 다음 날 대표실에 찾아가 ‘저는 더 이상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대표님이 두 사람을 해고시킨 것이 아니라 계약 만료 기간이 다 되어 재계약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이 말도 거짓말입니다. 저랑 같은 날짜에 인턴으로 입사하신 분들이고, 제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는데 어떻게 두 사람이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서 회사를 나간 것이 될 수 있을까요? 금방 드러날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대표님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대표님이 수습기간 3개월 내에 인턴을 자르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이 회사에서 수습 기간 중에 부당해고를 하는 것이 한 두 번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계신 작가님의 이야기인데, 작가님도 수습 기간 때 갑자기 대표님이 그만 나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손이 부족해지니까 다시 말을 번복해서 회사에 계속 나오라고 했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두려웠던 작가님은 이 회사에서 계속 일했다고 합니다.     

     


사직서도 내 맘대로 못 쓰나요    


  퇴사를 위해 사직서를 쓰는데 경영 팀장님이 옆에서 사직서에 적을 내용을 불러 주었습니다. 사직 사유도 솔직한 제 생각을 쓰고 싶었지만 팀장님이 옆에서 ‘수습 기간 만료 및 재계약 하지 않음’이라고 쓰라고 은근히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를 나왔을 시점이 계약 만료가 되기 일주일 전이었는데 사직서에는 사직 날짜를 계약 만료일로 속여서 적으라고도 했습니다. 그 사직서를 복사해서 나왔어야 하는데 당시 경황이 없어서 그걸 복사하지 못하고 그냥 나온 것이 참 아쉽습니다. 먼저 해고당한 분들은 사직서 쓸 때 어떻게 했나 물어보니, 그 분들도 저와 동일하게 사직 사유에는 수습 기간 만료 및 재계약 하지 않음, 사직 날짜는 계약만료일로 적게 시켰다고 합니다. 


  다른 인턴 분들과 제가 이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신고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거짓으로 쓴 사직서 때문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계약 만료에 의한 퇴사가 아니라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였다고 주장해도, 회사에서 이 사직서를 내밀면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버스타고 싶어도 버스가 끊겨서 못 타요    


  출근을 11시에 하기는 하지만 야근이 참 많은 회사였습니다. 원래의 퇴근 시간인 7시에 퇴근한 적은 거의 없고 빠르면 9시, 보통은 10-11시 정도에 퇴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 새벽에 퇴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야근했을 때 택시비를 90%까지만 지원을 해줬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회사에서 좀 많이 떨어져 있던 곳이라서 택시를 타면 돈이 많이 나왔습니다. 택시비가 걱정되면서도 새벽까지 일하면 교통수단이 택시뿐이라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잦은 야근 탓에 평균적으로 한 달에 택시비가 20만 원 정도 나왔는데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서 대표님이 직원들 앞에서 저를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 경비라고 해서 영상을 촬영하러 갈 때 택시비, 외근비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돈을 주는 것이 있는데 아직까지 받지 못했습니다. 2개월 반 동안 약 4-50만 원 정도의 개인 경비가 발생했지만 회사에서 아직까지 경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 다니고 있을 때에도 회사 사정이 안 좋다면서 경비 지급을 계속 미뤘는데, 회사에서 나온 지금은 경비 지급을 해줄까 의심됩니다. 


  저는 비록 수습이기는 했지만 월급은 정직원들이 받는 만큼 받았습니다. 물론 일의 강도도 정규직 직원과 완전히 동일했습니다. 정확히 제가 받은 월급은 세후 182만원입니다. 인턴치고는 많은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일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월급 액수가 많은 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제가 돌려받지 못한 개인 경비까지 포함한다면 182만원이라는 월급은 더더욱 많은 액수가 아닐 겁니다. 



‘대기업이 진리’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이런 일들을 겪은 후에 직업 선택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정보다도 일을 통한 모험, 도전, 자아실현 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KBS를 선뜻 포기하고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를 택했죠. 하지만 이 스타트업에서 크게 데인 후에는 스타트업이나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무조건 대기업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큰 회사들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수당이나 경비를 떼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노조가 있어서 잘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회사를 나온 뒤에는 열심히 대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 회사가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직서를 써야 할까요 그냥 버텨야 할까요? 부당해고를 주장하시려면 '절대' 어떠한 경우에도 사직서를 작성하시면 안됩니다! 


기업에서 실제로 인턴들을 관리하고 계시는 실무자 분, HR 담당자 분 등 기업의 관점에서, 혹은 본인의 관점에서 '인턴제도'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실 분을 찾습니다. 갖고 계신 생각을 공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턴제도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주실 분은 subinne@naver.com 으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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