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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Jan 30. 2018

병을 얻게 되어 기뻤다.

병 걸렸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나 하나일꺼야

어느 날부터 엄마가 내 눈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 엄마에게 왜 나의 눈을 그렇게 신경쓰는 것인지 물어봤지만 확실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내 눈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 불쾌함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엄마가 내게 그동안 눈을 쳐다보았던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한 쪽 눈동자가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계속 내 눈을 살피셨단다. 내가 눈을 쳐다보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을 때 눈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별 문제 아닌데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해서 내가 눈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어 말씀을 안하셨다고 했다. 


엄마한테는 '나 원래 짝눈이었어. 걱정 안해도 돼.' 라고 말했지만 내심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진단을 들은 후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서 양쪽 눈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을 확인하니 엄마의 말대로 한 쪽 눈동자가 약간 위쪽으로 고정되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안경을 벗고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어보니 한 쪽 눈의 크기가 다른 한 쪽보다 월등히 커져 있었다. 


놀란 마음에 바로 동네 안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5분 정도 요리조리 살펴보시더니 대학 병원에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며 아는 교수님을 소개해주셨다. 이틀 뒤에 방문한 대학 병원에서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눈 모양에 변형을 일으키는 병이다. 나의 경우에는 다행히 초기여서 한 쪽 눈꺼풀만 올라갔지만 이 병이 계속 진행되면 안구가 돌출되는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갑상선 항진증은 평생 약을 복용하면서 호르몬 수치를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방법이라고 했다. 눈 모양은 한 번 변하면 원래대로 돌리기 힘들 수도 있고, 갑상선 항진증은 재발이 쉬워서 거의 평생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어쩐지 나는 좀 기뻤다. '드디어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갑상선 항진증의 가장 큰 발병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갑상선 항진증 확진을 받기 6개월 전부터 나는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다. 그 때는 내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었을 시점이었다. 졸업 이후에 진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서 밤낮으로 괴로워했다. 그런데 내가 괴롭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니 친구들도 나처럼 똑같이 두렵고 괴로울텐데 괜히 나의 이야기까지 보태어서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말을 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자니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눈물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님 앞에서 무조건 울게 될 것 같아 괴로움을 털어놓지 못했다. 결국 괴로움은 아무 곳에도 방출되지 못한채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것이 결국 하나의 병을 야기할 수 있는 큰 스트레스로 바뀌었나 보다. 


병이 한창 심할 때는 모두가 내 눈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 나는 갑상선 항진증 때문에 눈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으레 '그 병은 왜 생기는 거래?'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대."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무엇이 나의 큰 스트레스였는지 상대방이 물어오고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것에 대해서 말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과정 속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괴로움들을 밖으로 퍼다 날랐다. 단지 괴롭다고 말을 한 것 뿐인데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약으로도 완치가 안되는 갑상선 항진증의 가장 효과좋은 치료법은 "스트레스 해소"이다. 한 번 가면 몇십만원 씩 나오는 대학병원 치료비로 내 전재산을 머지않아 탕진하게 될 것 같아 돈도 안들면서 가장 확실한 치료법을 써보기로 했다.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취업'이었다. 하기는 싫지만 딱히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해야만 하고, 하려고 해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바로 그것. 내 몸에서 스트레스를 몰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업'에 대한 생각을 저 멀리에 밀어두는 것이었다. 첫 날에는 몇 달 뒤면 졸업인데 취업을 무시해도 되나 싶어 몹시 불안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취업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나지 않고 생각을 안한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내 눈은 빠르게 치료가 됐다. 아직도 호르몬 수치는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의학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갑상선 항진증 환자이다. 이것을 이유로 나는 현재도 취업 걱정은 최대한 적게 하고 되는 대로 살고 있다.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해 준 이 병이 나는 참 고맙고 좋다.  


병에 걸렸다는 것은 내 몸이 보내는 하나의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아프게 하는 요인들을 이제는 몸 밖으로 밀어내라는 신호. 그 신호가 느껴지면 힘껏 자신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을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그래야 몸의 고통도, 마음의 고통도 빠르게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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