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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Feb 03. 2018

인턴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엔터테인먼트사 인턴의 이야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는 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3개월 가량 인턴으로 근무했던 인턴 G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첫 인턴십을 시작한 곳은 한 엔터테인먼트 사였습니다. 꼭 일해 보고 싶었던 꿈의 회사였죠. 하지만 꿈꿨던 곳에서 일을 시작하자 저의 이상과는 너무 다른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끝끝내 그 괴리를 채울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일을 하는 것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외일지 모른다   

  

  지원 공고에는 ‘인턴 3개월 후 정규직 전환을 고려’ 하겠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들었던 말은 ‘한 번 인턴해서는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는 짐작했지만 그래도 정규직 전환을 한 번쯤은 고려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려조차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무것도 담보된 것이 없어진 인턴십이었지만 ‘나는 예외적 사례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계약 기간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2주 전에 인턴들을 회의실로 부르더니 담당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여기서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다른 부서에서 인턴을 하는 수밖에 없어. 알바하는 셈치고 한 번 해봐.” 


  회사에서는 주말 전까지 다른 부서에서 인턴십을 계속 할 것인지에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의 결정은 계약 기간만 채우고 회사를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일하는 것이 싫어지기도 했고, 어차피 휴학을 하고 인턴십을 했던 터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보다 훨씬 절박한 분들, 이미 학교를 졸업해서 일자리를 한시 빨리 구해야 하는 분들, 또는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근무하기를 소망했던 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부서에서의 인턴직을 수락한 것으로 압니다.    




인턴들의 삶을 망치는 희망 고문    

  

  그런데 알바하는 셈치고 해보라고 했던 다른 부서에서의 인턴십도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인턴직을 수락하신 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오래 회사에 남아있을수록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회사에는 1년 정도 인턴십을 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회사 내에서 모든 인턴들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일부러 인턴들을 희망 고문하기 위해 그런 상징적인 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인턴들을 희망 고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규직 전환이 어려울 것 같으면 솔직하게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회사는 실제로는 정규직 전환을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항상 운이 좋으면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인턴들의 꿈과 희망을 담보로 해서 저렴한 노동력을 한 번 더 이용하는 악질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도 회사에서 인턴십을 제안한 ‘다른 부서’를 보면 이 회사가 얼마나 인턴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부서는 인턴들이 3개월 동안 일했던 부서와는 정말 다른 곳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재무직에서 일하고 있던 인턴들을 하루아침에 HR 부서로 옮기는 격이랄까요? 인턴들의 커리어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하지 않고, 지금 당장에 그 부서의 인력이 부족하니까 인턴십을 제안한 겁니다. 이 회사에서 인턴은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인턴은 존중하지 않아도 되나요    


  ‘왜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인사를 하지 않느냐’, ‘왜 발을 질질 끌면서 걸어 다니냐’, ‘왜 대리처럼 앉아있냐’, ‘왜 내시처럼 걷느냐’, ‘너희들은 왜 막내다운 맛이 없느냐’ 등등 업무 외적인 부분으로 말도 안 되는 지적을 많이 당했습니다. 외모에 대해서도 폭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인턴 분이 잦은 야근 등으로 인해 건강이 몹시 안 좋아져서 스테로이드 약을 복용하였는데, 그 약으로 인해 살이 많이 쪘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함께 인턴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 분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분의 사수는 ‘살이 너무 쪘다, 살을 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인턴이 화장을 하고 회사에 오자 ‘이제야 막내답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그 사수 분께 묻고 싶습니다. 막내답다는 것은 도대체 뭔지.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 회사에서 일할 당시에는 노동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잦은 야근에 대한 수당을 한 번도 못 받은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해 신고하지는 못했습니다. 회사가 워낙 큰 회사였기 때문에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만약 함께 퇴사한 분들이 ‘같이 힘을 모아서 우리가 겪은 일을 신고하자’고 했다면 저도 회사를 신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같이 신고하자고 하지 않았고, 개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지레 짐작해서 참는 쪽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인턴십 이후에는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턴십을 하면서 겪은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신고를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앞으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이상한 곳이라 제가 이런 부당한 경험을 한 것이지, 이 회사 밖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세상은 제가 생각한 것과는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인턴십 이후에 다양한 아르바이트들을 하면서도 부당한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부당한 일들을 계속 겪다보니까 원래 한국 사회는 부당한 일들이 판치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당하고 마는 것은 괜찮은데 매번 당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말고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휴 수당을 못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고용 노동청에 사장님을 신고해서 주휴 수당을 받아낸 적이 있습니다.


  한 번 신고를 해보니 이게 정말 생각보다 별 일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 외로 법이 우리 같은 약자들의 편에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제가 찾아간 감독관님은 제 사정에 깊이 공감하시면서 어떻게든 돈을 받아주겠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노무사나 변호사 무료 상담도 있고, 알바 노조 카페도 있고 찾아보면 도움 받을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곳들을 잘 활용하셔서 부당한 일에 당당히 대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턴 제도가 있는 이유는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인턴십을 하면서 오히려 꿈을 잃었습니다. 꿈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도 함께 잃었습니다. 지금 제가 정부쪽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하면서는 월급이 밀린다든가, 수당을 안 주든지 하는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정부 단체여서인지 법을 최대한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걸 보면서 왜 우리 청년들이 다 공기업이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내가 일한 만큼 보상 받는다는 것이 정부 기관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요. 현재로서는 인턴 제도가 기업들을 위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인턴이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턴 제도가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학생들이 인턴 제도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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