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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수 Sep 17. 2020

나는 쿨한 척했던 여자친구였다.

속 편한 연애

나는 쿨한 여자 친구가 되고 싶었고, 쿨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쿨함을 포기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이것은 오로지 나의 이야기이다)

생각해보자. 발렌타인 데이에 가나 초콜릿 하나 주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실망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빼빼로 데이에 아몬드 빼빼로는커녕 천 원짜리 일반 빼빼로도 주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았는가. 물론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정말 그런 거 신경 안 써. 네가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고 싶은 안 줘도 돼. 난 진짜 괜찮아."

이 말은 즉슨 '나 진짜 진짜 괜찮거든. 그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 안 챙겨도 돼. 근데 혹시 그거 고작 몇 천 원 나한테 쓰는 거 아까운 건 아니지? 난 진짜 괜찮은데 아마 나중에 그 뒷감당은 조금 힘들 거야. 알고만 있으라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과연 남자들은 알까.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가는 거 정도는 뭐 괜찮지.", "기념일 뭐하러 챙겨.", "꽃 같은 거 받으면 너무 오그라들지 않아?" 등 연애 초반 내가 함부로 말했던 것들이다. 이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말들은 고이고이 접어 넣어두시길 바란다.


나는 기념일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꽃은 입학식과 졸업식에만 받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연인에게 꽃을 받은 적은 발렌타인 데이 때 딱 한 번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걷다가 꽃을 들고 걷는 커플들을 보면 '하루 종일 들고 다니려면 오글거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래, 난 연인끼리의 사소한 챙김에 쉽게 감동을 받는 타입이구나.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을 테지. 다정다감한 연애가 나에겐 그런 것이었다.  


나는 연애 중이다. 이 연애는 다른 연애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연애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감정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편한 연애를 하고 있다. 현재 만나는 사람을 E라고 하자. 몸도 편하지만 감정적으로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감정에 휘둘릴 때 이성적으로 잡아주는 사람이고, 가끔은 너무 여유로워서 짜증 나기도 하는데 성격이 급한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감정에 솔직한 연애를 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쿨함을 포기했다.


"나는 꽃다발을 받으면 그걸 들고 다닐 그 하루가 번거로울 거 같아. 그러니까 네가 한송이 정도 준다면 적당하겠지."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가는 건 좋은데 그 시간 동안 혼자 있을 나정도는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기념일을 챙기진 않을 테지만 네가 기념일을 챙겨준다면 나는 무지 좋아하겠지. 왜냐 난 너의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삼 남매 중 둘째, 특히 딸이라서 눈치도 많이 보면서 자랐고 질투도 많아."

E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다 알고 있었고 나는 매일같이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걸 즐기고 있다. E는 가끔 나를 놀려 먹으려고 내가 토라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그럴 때마다 쥐어박고 싶다. 나는 아직도 우리의 기념일이 언젠지 모른다. 분명 서로 합의하에 5월 중순 언저리로 정했는데 또 물어보면 몇 날 며칠을 우려먹을까 봐 물어보지 못하고 있다.          

연애를 하지 않을 때의 방탕한 삶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지만 지금은 이 연애를 사뭇 즐기고 있다. 앞에선 쿨한 척하고 뒤에선 구질구질하게 뒷조사하지 않아 마음이 편한 연애다.

E와의 첫 만남 때부터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이건 차례차례 풀어보도록 해야지.




                                                                         

빼어날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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