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근무지에 출근한 지 이틀 만에 영혼이 털려버렸다. 어제 알게 된, 아직 낯선 이와 어차피 앞으로 매일 볼 동료가 될 터이니 마치 예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눈을 맞추며 웃고, 묻고, 답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은 나 같은 내향인에겐 버거운 일이다. 마지막 단계였던 '차 마시며 대화하기' 진행 중,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려버렸다.
이런 날엔 '맥심 화이트 골드'를 한 잔 해줘야 한다. 종이컵에 화이트골드 한 봉 탈탈 털어 넣고, 물은 반 조금 넘게 넣어 휘휘 저은 후 식기 전에 호로록 다 마셔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 화이트골드가 내 마음에 달달하고 부드럽게 스며들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상위 버전인 슈프림골드도 먹어봤는데, 아니! 슈프림골드가 더 비싸고 아무리 고급이라 우겨도 난 오직 화이트골드뿐.
너무나 슬프게도 오늘은 준비된 화이트골드가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고 나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한계에 다다를 즈음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던 약과 한 개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살아날 수 있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들, 그리고 비슷한 시대를 공유한 선배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오늘 털린 영혼은 머지않아 그들로부터 다시 채워지고 넘칠 것이란 것을. 고로 오늘의 나약하고 볼 품 없는 내 마음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화이트골드로 아침을 시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때가 있었다. 하루에 두 봉 이상은 먹어줘야 살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같은 마음이거나 아니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날에만 화이트골드를 한 잔 한다. 그럼 뭐 괜찮은 거 아닌가. 내 마음도 좀 자란 것 아니냔 말이다.
사실 바로 전 글에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썼는데, 오늘을 마주하고 나니 그 글이 너무 부끄러워져서 어쩜 좋을지 고민하며 이 글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놔둬야겠다. 이거 쓰는 동안 내 마음이 다 치유됐어. 그런 나도 나고, 이런 나도 난데 뭐. 그냥 오늘을 보내주자.
ㄴ 맥심 화이트골드 없어서 아무 커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