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팔다리어깨무릎허리야!
어제 대전에서 열린 콘서트를 기쁘게 즐기고 돌아와, 오늘 점심으로 거하게 소고기를 먹은 후 한잠 자고 일어나니 저녁 8시. 발령받은 새 학교로의 본격적인 출근 12시간 전이다.
흐음, 오늘인가. 드디어 이 글을 써야 할 때가.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간절해서 한 잔 하며 시작해 본다. 내가 참 많이도 사랑한 YB초에 대한 고백.
S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와 내가 신설교에 발령받았다며 우린 이제 '큰 일' 났다고 했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거나 긍정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나는, '네에?'하고 놀라긴 했지만 뭔가 재밌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021년 2월, 코로나19가 2년 차이던 해였다.
S선생님과 만난 것은 다음 날 오전 9시, YB초가 아닌 그 옆 학교에서였다. YB초는 아직 준공 전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말이 돼? 당장 3월에 학교를 열어야 한다고. 개학이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큰 일’ 났다던 S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어쩌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살짝 설렜던 나란 아이는 대체 언제 다 크는 걸까?
이 비극에 함께 당첨된 여러 선생님들과 '어떻게든 개교해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오르는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처음부터 너무 쉽게 보이면 안 되는 법! 눈썹에 힘을 주고 입은 꾹 다물고 바닥만 쳐다봤으나, 결과는 1학년 부장. 네네, 다시 말씀드리지만 코로나19 2년 차였고요. 전 교직 인생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이 되었고요. 당장 입학식 준비해야 하는데 학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고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며칠 후 준공이 완료되어 드디어 학교를 방문했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지금 당장 사야 할 것과 대여해야 할 것, 학사일정과 그중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부터 정했다. 교표와 교가도 만들고 교내 이동 동선이라던가, 코로나19와 관련된 것도 느리지만 정확하게 짚어나갔다.
매일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 입학식을 무사히 잘 치러냈고 학교는 문제없이 가동됐다. 그러나 나는 매일 다짐했다. 2년만 지나면 이곳을 반드시 탈출할 거라고.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해당 학교에서 2년을 채우면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다.)
굳은 다짐과 달리 나는 탈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YB초를 지독히 사랑하게 됐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삶이 이런 것일까. 겉모습만 학교였던 곳이 집단 지성을 통해 학교답게 변모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지켜본 시간은 내게 감격적인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이를 함께 이뤄낸 동료들과의 연대감은 말할 것도 없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5년을 꽉 채워 근무하며 꼬물꼬물 1학년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는 즐거움도 컸다. 공부 시간에 큰 일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로 닦아본 적이 없어 뒤처리를 해달라고 ‘선생님’을 우렁차게 불러댔던 SH. 어느덧 나만큼 키가 컸지만 만날 때마다 그 일이 생각 나 여전히 귀여웠다.
시작은 절망이었고 끝은 사랑이었다. 이제 나는 두려운 게 별로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봤는데 뭐든 못할까. 물론 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협업하는 게 늘 어려웠는데 그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결국 행복을 채워주는 건 사람이었다는 것. 이따금 찾아와 주절주절 근황을 떠들어대던 제자들은 다 큰 줄 알고 거들먹거리지만 손에 쥐어주는 젤리 몇 개에 환하게 웃는, 투명한 영혼들이어서 사랑스러웠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우리 서로 의미 있는 사이라는 걸 확인했던 시간. 떠나는 자와 남는 자가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
촘촘히 쌓인 시간 내내 많이 사랑했어요. 잘 있어요, 잘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