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를 한 편 낭독하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 있다. 서로의 목소리만 아는 네 사람이 오픈채팅방에 모여 같은 시를 읽고 글로 생각을 공유한다. 작년 5월, 눈팅만 하던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바로 댓글을 달았다. 모르는 사람과 무언가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던 나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모양과 깊이는 다르겠지만 저마다 삶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기에 걱정과 달리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성실히 모임을 이어왔다.
얼마 전부터 듣고 있는 낭독 수업에서 배운 대로 배에 힘을 주고, 끊어 읽기를 하며 물 흐르듯 오늘의 시를 읽는데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부, 윤진화, <영원한 귓속말>, 문학동네, 2014
내 나이면 여름의 끝자락 즈음 될까. 아니면 가을의 초입. 어쩌면 좋지, 난 '아직도 봄'인 것만 같은데. 내가 누군지, 삶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는데 시간은 무럭무럭 흘러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다. 청춘을 청춘답게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을 완전히 보내주지 못했는데 이런 글을 만나버리면 우는 수밖에 없다. 노래도 그렇다. 솔루션스의 '청춘'은 제멋대로 구겨진 얼굴로 숨죽여 울게 만든다. 울 것 같다는 예감이나 전조 증상도 없다. 그냥 어느새 울고 있다.
음악은 취향일 뿐 나이로 구분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공연장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서 있을 때면 이따금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마음이 든다. 이게 내가 원하는 나이 듦의 방향이 맞는지 수없이 묻지만 잘 모르겠다. 뒤늦게 알아챈 봄을 후회하지 않게 즐기고 싶은 마음과 부끄럽지 않게 채우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며 생긴 틈이 아프다. 그런 날엔 모든 걸 뒤집고 싶다. 글도 다 지워버리고, 숨어버리고 싶다.
갱년기는 아니니, 아까부터 의심 또는 확신하셨다면 그 마음 거둬주시길. 뭐든 다 때가 있다는 말이 맞다. 어린애 같은 마음을 들키지 않아야 의젓하다고 칭찬받았던,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너무 일찍 어른처럼 살았던 나를 책이나 영화, 음악에서 만나면 눈물이 난다.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져서, 마음속 저 깊은 어디에 움츠리고 있는 나를 끌어안고 화해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오늘처럼 시를 읽거나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내면 깊숙이 숨겨뒀던 결핍 가득한 나를 직면할 용기가 생겼다. 후회하지 않게 봄을 보내고 부끄럽지 않게 다음 계절을 맞이할 거다.
오픈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달이 지고 꽃이 지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모르는 이에게 받은 위로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내일도 시를 읽고 내 마음을 오롯이 담은 문장을 정성껏 올리는 수밖에. 그리고 지금도 울고 있는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한 번 더 위로받아야겠다. 나를 위해 노래하는 새, 엔플라잉의 'Song bird'.
엔플라잉 'Song bird‘
https://youtu.be/uhxw4beTM3U?si=NH80-19bFu0mXkhk
솔루션스 ‘청춘’
https://youtu.be/Jnmk2NSZ7iM?si=zi3KmDN7ZjbJjm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