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믿어줘요

by sso

브런치가 내게 안부를 물었다. 왜 요즘 글 쓰러 안 오느냐고. 듀오링고도 자꾸 잔소리를 해서 참다 참다 이별했는데 브런치도 그렇구나. 그래도 아주 젠틀하게 나를 걱정하듯 말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쓴다.


3월이라 바빴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긴장하기도 했고, 어린이들과 생활하는 시간에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빈틈없이 쓰다 보니 몸이 많이 피곤했다. 요즘 봄바람이 살랑살랑 그렇게 좋다던데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느낄 새도 없이 3월 말이 돼버렸다. 주말마다 공연장에 가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실내였다. 비록 몸은 무겁고, 봄바람도 못 맞았지만 마음은 봄 같았다. 출근길이 즐거웠다면 설명이 될까.


우리 반 어린이들이 너무 귀엽다. 그래서 매일 고백한다. 왜 이리 귀엽고 난리냐고. 내 진심을 알았는지 우린 꽤 많이 친해졌고 마음의 모양을 맞춰가고 있다. 동료들과도 가까워지는 중이다. 오늘은 급기야 파워 E 선생님께도 왜 이렇게 귀엽냐고 말해버렸다. 그분은 본인의 신념과 다른 상황을 못 견디시는데 그럴 때면 마치 투사처럼 행동하신다. 오늘도 투쟁한 일화를 말씀하시는데, 뚜렷한 캐릭터로 일관되게 행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그만 귀여우시라고. 이분 에너지를 감당 못해서 2월에 맥심 화이트골드를 여러 번 들이켰는데 말이지.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동학년 교사 모두 연구실로 모이라는 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부장님이 뜬금없이 친구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화가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전시회를 할 때마다 꽃을 많이 선물 받는데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교사들은 3월 첫 시작을 왜 늘 긴장된 마음으로 힘들게 보낼까. 우리끼리라도 서로 응원하고 힘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꽃을 선물하려고요. 우리 꽃보며 함께 힘내요."

갑자기 내 가슴에 꽃다발이 안겨졌다. 이런 방식의 응원 고백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꽃다발을 한아름 품에 안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동영상을 찍었다.


지난주는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었다. 매년 하는 행사지만 수업을 준비하기까지 신경 쓸 것도 많고, 마음도 부담스럽다. 다행히 잘 끝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다음 날 출근했는데 준기(가명)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엄마가 선생님 드리래요."

혹시 민원인가.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 목소리가 밝으셨는데 설마. 뭐지, 뭘까. 여러 가능성을 추리해 보는데 봉투에 적힌 내 이름 옆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식은땀이 나려 했는데 살았다,는 마음으로 읽은 편지는 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 고백으로 가득했다.


어제 읽은 오은 시인의 시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를 조심하라.


그래, 나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이것 말고도 좋은 일, 더 있었거든. 더는 말 못 해. 날아가버리면 어떻게 해.


준기 어머니는 나의 매일매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쓰셨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타인이 나를 아껴주는 마음. 이거 내가 제일 잘 아는 건데. 덕질하는 자의 기본값. 그런데 내가 그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의심하게 된다. 그분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말이다.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너무 엄격하다. 지긋지긋해.

조심하긴 뭘 조심해. 그냥 즐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내게 주어진 좋은 것들이 날아갈까 염려하지 말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저 감사하며.


채점하고 있는 학습지 위로 무언가가 시야를 가렸다. 수현(가명)이가 직접 만든 대형 네잎클로버였다. 큰 하트 4개를 꼭꼭 눌러 접고 이어 붙인 뒤, 가운데에 작은 하트까지 덧붙인 사랑 고백. 줄기에 쓰인 ‘행운이 가득하길.’이란 문장까지 완벽하다. 갑자기 몰려온 행운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불안한 선생님 마음을 수현이가 찰떡 같이 알고 충전해 주는구나. 그래, 선생님은 수현이 믿고 행운 플렉스 해버릴란다. 고맙다.


나의 행복과 행운에 반전이 없길 바라며, 반전이 있어 사랑하는 노래를 듣고 자야지. 내가 상상하는 건 뭐든 이뤄지는 법이 없던데. 반전 있는 노랠 들으면 반전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라는 아무말로 아무렇게나 끝.

솔루션스 heavy nights

https://youtu.be/sEwrZQPj1Rg?si=Q2Xky3ekF-zLSjlW


솔루션스 silence

https://youtu.be/rDiDUkDxOYA?si=m9W39H3zj-qfzg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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