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콘서트 안 가요?"
금요일 오후, 지성이가 내게 물었다. 뜬금없이 이 질문을 받은 건 '콘서트에 간다, 갔다 왔다, 갈 거다' 기쁘고 설렌 감정을 가만히 품지 못하고 내 덕질 일정을 시시콜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읊었던 탓이다.
"응, 안 가."
"왜요?"
"왜긴, 없으니까 못 가지."
헛헛하다. 겨우내 거의 매주, 혹은 주말 내내 라이브 콘서트에 폭 빠져 있었는데 아무 데도 못 간지 2주째다. 왜요, 왜죠? 이럴 수는 없다.
"선생님, 1년에 콘서트 열 번 가요?"
재인이의 질문이다.
"음, 열 번? 지금 벌써 열 번 넘게 다녀왔는데."
"네에?? 그럼 아주 많은 건데......"
재인이의 말줄임표에 숨어 있던 놀란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괜히 말했나? 집에 가서는 말하지 말아 줘.
나는 하나에 빠지만 끝을 봐야 한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달린다. 요즘은 콘서트가 그렇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은 절대 놓칠 수 없다. 덜덜 떨리는 심장과 손으로 티켓팅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정도로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가면 살고 못 가면 죽는다.
2025년은 엔플라잉 데뷔 10주년이었다. 공연이 무지무지 많았다는 뜻이다. 2024년에 입덕한 나는, 10주년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웅장해진 가슴으로 언제든,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다짐을 했고 매우 착실히 지켜냈다. 일주일에 세 번 넘게 공연을 간 적도 있었고,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대학 축제에도 가봤다. 해외 공연도 물론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해외 공연은, 배스킨라빈스에서 뉴욕치즈케이크와 쿠키앤크림 중 어떤 맛을 고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더 이상 내게 새로운 자극이나 영감이 될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안정된 삶 속에 변화라는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변화가 아니라 파괴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30대는 지켜내고 싶은 것 투성이었다. 무언가에 빠져 허우적대면 답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의식적으로 세상에 무관심하려 애썼다.
삶은 참 이상하다. 그때는 분명히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완벽히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나라는 한 사람에게 정반대의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것.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곱씹으며 때로는 울고, 어느 순간에는 체념도 하며 수용하게 되는 것.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게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옳을 거라 믿으면서.
분명 비가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예보와 달리 맑고 화창한 하늘을 보니 이런 날 즐길 공연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원통하게 느껴진다. 아니야, 할 일 많은 주말인걸. 밀린 빨래와 공부도 해야 하고, 어제 불금이라고 기분 내고 싶어 마신 맥주 한 캔 때문에 가만가만 조느라 못 읽은 책도 완독 해야지. 이따 저녁에 영화 보러 갈 거니까 그전에 청소도 싹 하고 빈틈없이 해내보는 거야. 역시 마감 있는 삶은 내 등을 떠밀어 잘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해. 엇, 빨래 다 됐다네? 그만 써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