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아이와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 또 하나의 성장의 길

by 초이

“계속 일할 거야?”
아이를 처음 품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출산 후 백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여주의 한 스튜디오로 향하던 그날, 오랜만에 혼자 운전하며 가는 길은 낯설 만큼 자유로웠다. 차창 밖 풍경이 오랜만에 눈에 들어오고, 혼자만의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길은 마치 짧은 여행 같았다.


그러나 촬영 틈틈이 화장실에 숨어 유축기를 돌리며 곧장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문을 두드리는 발자국 소리 사이에서 불룩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실감했다.


‘아, 이제 나는 엄마구나.’


수유실을 갖춘 사무실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는 스태프들로 가득한 촬영 현장 화장실 한편에 쪼그려 앉아, 유축기의 기계음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가운데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 순간만큼은 직업인도, 자유인도 아닌, 아이를 위해 몸을 쪼개 쓰는 엄마 그 자체였다.


갓 태어난 아이와 초보 엄마였던 나는, 엄마로도, 아내로도, 또 ‘나’ 자신으로도 살아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이전엔 일이 내 삶의 전부였다. 밤새 몰두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때는 퇴근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내 삶에 퇴근 시간이 생겼고, 저녁 식탁이 생겼다. 그 식탁은 아이의 웃음과 젖은 손길로 채워졌다. 삶의 리듬은 조금씩 ‘온’과 ‘오프’로 나뉘어 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한 일터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는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일정은 이제 아이 중심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스케줄이 잡히면 가장 먼저 양가 어머님의 일정을 확인했고, 부탁드리기 어려운 날이면 아예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함께 소품을 고르러 다녔다. 원래라면 두세 시간이면 끝날 일을, 기저귀 갈이와 낮잠, 수유가 끼어들며 여섯, 여덟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여러 건의 촬영을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많아야 한 주에 한 건, 한 달에 네댓 건 정도가 한계였다.


아이와 함께 일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일을 이어갈 때마다, 나는 내가 단순히 일을 ‘이어가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는 엄마의 일을 지켜보며 세상을 배웠고, 나는 아이와 함께 있음으로써 내 일의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촬영할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 옆에서는 아이의 작은 요리 교실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제는 세상이 내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 돌이 지나면서 ‘이제 좀 괜찮아지겠지’ 싶어 다시 본격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려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일 년 동안 나 위주로 스케줄을 조정하고, 촬영을 거절했던 그 시간이 결국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 셈이었다.


프리랜서라는 일이 아이 키우기엔 적합하다 믿었지만, 세상은 내 믿음을 너무 쉽게 무너뜨렸다. 한 건의 일을 잡기 위해 더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해졌고, “돌 지나면 괜찮아진다”던 선배들의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돌이 지나니 아이는 더 고집이 세어지고, 자기주장이 뚜렷해졌다. 백일에는 ‘돌까지만 버텨라’ 하더니, 돌이 지나자 또 ‘세 살까지만’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중학생 아이를 둔 워킹맘 프리랜서 선배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딱, 10년만 버티자.”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10년이라니. 1년도 벅찼는데, 십 년을 더 버텨야 한다니. 하지만 선배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오히려 더 큰 고비가 오고,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둔 친구들이 다시 일하려 할 땐 자리를 찾기 어려워 후회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엄마의 삶은 아이 키우는 몇 해가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일은 나를 다시 세운다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은 분명 쉽지 않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돌봄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영유아기에는 보육이, 취학기에는 학습과 관심이, 청소년기에는 정체성과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아이의 나이가 바뀌어도 엄마의 역할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아픈 아이를 억지로 돌봄 교실에 보내야 하고, 피곤하다고 투정하는 아이를 학원 버스 시간에 맞춰 내보내야 한다. 아이가 자라고 독립심이 커져도, 엄마의 손길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이야말로 내가 ‘나’ 임을 확인하는 통로이자,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성취를 느낄 때, 그 성취는 곧 아이에게 전해지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란다. ‘엄마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생각한다.


흔들리지만, 함께 자란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함께하는 요즘도, 나는 여전히 매일 흔들린다.

워라밸이 있는 회사원이 된 오늘도 회사와 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흔들리면서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 역시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다시 세우고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나에게 있어 일은 성취였고, 그 성취는 곧 성장으로 이어졌다.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곧 멈추지 않고 아이와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챕터, 성장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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