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육아와 경력 단절 사이에서》

아이만 바라보는 시간이 당연히 행복할 줄 알았다.

by 초이

요리로 배우고, 요리로 연결되던 시절. 나는 마침내 내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도 아깝지 않은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요리’였고,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었다.


하루는 촬영에 쓰일 식재료와 그릇들을 준비하고, 하루는 새벽부터 촬영장에 도착해 음식을 세팅하고, 또 어떤 날은 방송 녹화장에서 레시피 촬영을 하고, 어떤 날에는 복지관에서 이주여성과 청소년들에게 요리 기술을 가르쳤다.



불러주는 곳마다 전혀 다른 무대를 세우는 일은 늘 새롭고 짜릿했다. 매번 다른 환경, 다른 사람, 다른 도전이 주는 긴장감은 내 몸과 마음을 완전히 깨우는 에너지였다. 그 과정을 통해 내 한계를 넘어서는 기분을 맛볼 때, 나는 확신했다. 이 길이 내 길이라고.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하던 중, 일하며 만난 인연들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은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이어서 임신과 출산을 맞이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삶이 얼마나 바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출산 2주 전까지도 스케줄과 촬영을 소화했고, 심지어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몇 시간 전까지도 사람을 만나 일정을 조율했다. 진통이 시작됐을 때조차, 나는 단순한 복통이라 여겼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이가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 뒤였다.

출산 후 약 100일, 짧지만 소중한 휴식을 마치고 나는 현장으로 복귀했다. 어떤 날엔 아이를 데리고 촬영장에 가기도 했다. (이때는 누워만 있는 아기였기에 가능했다. ㅎ) 그때는 ‘프리랜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출퇴근이 없으니, 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강점은 온 힘을 쏟아부을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인데, 육아는 그 시간을 조각냈다. 나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프리랜서의 루틴이 좋았는데, 내 하루 24시간 중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열, 등원 거부, 낮잠 실패, 어린이집에서 걸려 오는 긴급 전화, 코로나… 그 모든 변수가 내 일정을 무너뜨렸다.


출산 전에는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냈지만, 출산 후에는 누군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날이 많아졌다. 내 능력과 의지는 그대로인데,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오는 일은 점점 줄었고,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점점 좁아졌다.


아이를 맡길 사람을 구하려 했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정부 지원이든, 구인 광고든, 불규칙한 프리랜서 일정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나는 ‘워킹맘’이면서도 동시에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낯선 이름을 갖게 될까 두려워졌다. 예전에는 뭐든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던 P형 인간이었는데, 점점 J형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촘촘히 일정을 관리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의 미팅도 잡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1인 크리에이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콘텐츠 시장이 확장되면서 나의 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잠깐 쉬었다 돌아오면 예전의 자리로 바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복귀의 문턱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내 일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누군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라며, ‘좋은 엄마’가 될지 ‘나쁜 엄마’가 될지 선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영유아기, 홈베이킹은 원 없이 했다. :D

엄마라는 이름을 얻으며 얻은 것이 많았지만, 포기한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일만큼은 끝까지 붙들고 싶었다.


예전처럼 화려하지 않더라도, 천천히 내 속도대로, 아이를 키우며 내가 꿈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욕심일까?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아이에게서 위로받으며 하루를 버텼다.


“엄마, 오늘은 집에서 일 안 해?”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묻는 순간, 나는 잠시 모든 불안을 내려놓았다. 그래, 아이는 내가 일터에 있든 부엌에 있든, 그저 ‘엄마’이기만 하면 된다.


일하던 현장에서, 엄마 껌딱지 딸내미와

이제는 아이가 많이 자랐지만,

육아와 경력 사이에서 여전히 줄타기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한 번에 달려갔을 길을

이제는 몇 번을 쉬어가며 걷는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가 나쁘지만은 않다.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나는 문득 묻게 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디쯤 있었을까.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어쩌면,

나의 두 번째 커리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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