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어딘가의 부엌에서
처음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을 땐, 음식의 ‘미적 요소’에만 집중했다. 예쁘게 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이 일을 디자인의 일부로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일은 단지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작업이 아니라, 음식에 깃든 문화와 식재료 본연의 맛과 멋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내는 일임을 깨달았다.
번아웃이 왔던 시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는 개인적인 슬픔을 겪으며 나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그러다 KOICA 해외봉사단을 통해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요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었다.
르완다 키갈리에 위치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hospitality services 과정의 조리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곳에선 전기와 가스 공급이 자유롭지 않아 대부분 숯으로 조리 수업을 하였고, 1-2인분의 재료로 20명 가까운 학생들이 함께 조리로 실습했다.
닭요리를 해야 하는 수업 때에는 학생들이 살아 있는 닭을 직접 잡아 털을 벗기고 해부하듯 손질하여 1마리의 닭을 튀긴 뒤 맛을 보는 것이 조리 실습의 전부였다. 음식 ‘플레이팅’은 사치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처음에는 문화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이곳 사람들은 튀김이나 찜 요리에만 의존할까, 샐러드나 현미밥 같은 건강한 음식은 왜 보급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함께 생활하며 점차 깨달았다. 깨끗한 물이 부족하고, 전기와 주방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이 나라의 상황에서 끓이거나 튀기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조리법이었다. 요리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생활환경과 문화의 결과물이었다. 동시에 내가 알려주고 싶은 조리가 아닌 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조리법과 요리기술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르완다 뿐 아니라 미국, 네팔 등 다양한 지역에서 요리를 통해 직업 교육을 돕는 경험을 했고, 그때마다 한식도 함께 소개했다. 젓가락과 반찬 문화,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모두 흥미로워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나라의 음식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식은 늘 마음을 열게 했다.
인상 깊었던 순간은 네팔에서 두 달간 머무르던 중, 감사하게도 현지 가정집에 머물 기회가 생겼던 일이다. 늦은 밤 짐을 푸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는데, 이른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직접 만든 셀로띠(Sel Roti)와 마살라티를 건네주셨다. 가스도 연결되지 않은 우리를 걱정하셨던 것이다. 쫀득한 도넛과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 말없이 건넨 그 따뜻한 마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내 인생의 또 다른 교과서였다. 어떤 이는 끼니를 굶은 끝에 밥 한 그릇에 위로를 받았고, 또 다른 이는 조용히 국물 한 숟갈을 뜨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술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한 번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상생상회’ 오프닝 행사를 맡게 된 적이 있다. 지방의 농특산물을 소개하는 이 공간에, 어떤 노부부가 신문 스크랩을 들고 찾아오셨다. 과메기를 맛보고 싶어 먼 길을 오셨다고 했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 요즘, 신문을 오려 손에 쥔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다. 기술과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방식은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 그리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요리 기술을 가르치는 일. 이 일을 하며 어떤 이의 삶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 반응 하나에 며칠을 밤새며 고민한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는 준비하는 순간부터 사람을 맞이하고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 과정이 가끔은 고되고 지칠 때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나’로 살아가게 했다.
좋은 식재료를 만나고, 칼을 쥐고 재료를 손질하는 시간, 불 앞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플레이트 위에 음식 본연의 모습을 올려낼 때만큼은 온전히 ‘지금’에 머물게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결과가 달라지기에, 요리는 내게 늘 현재를 사는 훈련이 되었다.
요리를 하며 나는 사람을 배웠고, 삶을 배웠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다시 알게 되었다. 어떤 순간에 기쁘고,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는 사람인지. 요리는 단순한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자 세상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연결’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기적을 믿기에 이 일이 여전히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