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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Feb 23. 2019

나만의 일기

1. 분명 동글동글한 아이였는데 말이다. 한번 날카롭게 다듬은 칼을 다시 무디게 만들기까지 한 세월이 필요하듯, 내 마음 속 뾰족해진 부분을 다시 동글게 만들기 쉽지 않다. 특히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표현하기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회사에서 후배들이 내 앞에서 나 듣기 좋으라는 말만 늘어놓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예민해지고 싶지도 않고 꼰대가 되고 싶지도 않은데. 그러려면 다시 동글어져야겠다.


2. 목감기가 있을 때 귤이나 오렌지 같은 과일을 먹으면 좋지 않댄다. ‘산(acid)’이 목구녕을 타고 올라와서 그렇다나. 겨울마다 귤과 오렌지, 한라봉, 천혜향을 고루 사랑하는 내겐 너무 잔인한 사실이다. 설 연휴부터 잔잔한 목감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단 하루의 저녁도 천혜향을 거를 수가 없다. 냉장고에 천혜향은 곧 떨어져가는데 엄마가 한 박스를 또 주문하셨다. 목감기가 더 오래갈까 걱정이 되면서도 안도가 된다. 에잇, 모르겠다. 그깟 목감기 좀 천천히 낫지, 뭐.


3. 영어를 고되게 배우고 싶다. 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던 날들이 그립곤 하다. 사교육의 폐해일까, 대학생이 된 후 직장인 대상의 파고다 같은 영어 학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등학생 대상의 외고준비 또는 토플 코스를 수강해도 되냐고 문의한 적 있다. 요즘 직장인 대상 영어 학원을 2개나 듣고 있는데 돈은 돈대로 비싸고 수업의 진도는 혜민 스님 느낌이다. 느리게 천천히 가야 비로소 보인다는듯이, 수업 진도가 한 세월이다. 으랴으랴 말을 채찍질하듯 빠르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내 마음은 아무도 몰라주고. 하지만 혼자서는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절대 빡세지지도 않는다. 자기 주도 학습이 부족했나보다.


4. 난 본디 말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내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영어회화도 좋아하나보다. 문장을 하나 하나 만들 때, 단어와 문장을 완벽히 발음할 때 짜릿하다. 한국말을 많이 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5. 회사 1년차 시절, 선배가 말을 똑바로 알아듣게 하라고 혼낸 적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선배가 답답해했는지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말 잘하는 걸 제 1 장점으로 꼽으며 살았던 내가, 말 못한다고 혼나는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그간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걸까. 세상의 모든 언어 중에 나만 고립되어 살고 있었나. 암담해졌었다. 하루는 헬스장 등록을 하기 위해 프론트 데스크에 계신 아저씨께 말을 거는데 이 분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실까 겁이 났더란다. 혼나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것보다 무서운 건 혼낸 기억이 뼈에 남는 것이다.


6. 고등학생 때 난 수학을 잘 하는 아이였지만 지금 내 머리 속엔 계산기 자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쉴새없이 덧셈 뺄셈을 멈추지 않는 머리 속이 어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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