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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Jan 08. 2019

취업 준비,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잘하고 있어, 잘할 거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JTBC <스카이캐슬>에 푹 빠졌다. 황금 같은 금,토에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지 않고 저녁 10시 반이면 집에 들어와 씻고 TV 볼 준비를 마친다. 11시, 드라마가 시작되면 숨 죽인 채 집중한다. 가끔 중간광고가 나올 때면 카톡을 켜서 친구들과 짧은 감상평을 주고 받는다. 12시 10분, 드라마가 끝나면 복선과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끝이 없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드라마의 전개만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여러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은 이 드라마를 보고 내 안에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고자 한다.

 입시는 전쟁이다. 내게도 입시는 전쟁과 같았다. 매일 타이머를 맞춰놓고 10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밥도 간단하고 짧게, 이동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간 대학과 학과를 들으면, 스카이캐슬 부모들은 뒷목 잡고 쓰러질 수도 있다. 나름 서울 명문대에 함께 간 친구들과도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스카이캐슬 주인공들은 이 대학에 간다면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고.

 어쨌든 나는 서울에 나쁘지 않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학과가 아니었다. 국문학과. 내 중,고등학교 은사님들은 딱 1년을 제외하고 전부 국어선생님이었다. 이것만이 내가 전공을 선택하는 데 유일하게 작용한 배경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난 문학 지문을 읽을 때마다 설렜다. 앞뒤 생략된 지문을 더 찾아 읽고 시는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문제 풀이를 하느라 모든 지문은 빠르게 읽어버려야 한단 사실이 아쉬웠다. 대학에 가면 문학에 푹 빠져 살아야지 결심하고 지원하는 대학은 전부 국문과 전공으로 선택했다.

 물론 바라왔던 것처럼, 국문과 공부는 적성에 잘 맞았다. 소설이나 시를 읽고 내 생각을 발표하는 것도 즐거웠고, 관련 논문을 수십개씩 찾아읽는 일도 설레는 과정이었다. 교수님께 논문을 들고 찾아가서, 내 생각을 얘기할 때면 교수님들은 모두 대학원에 오라고 추천해주셨다. 비록 글을 남들보다 잘 쓰는 건 아니지만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도 워낙 좋아하니 글을 평생 가까이 두면서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싶었다.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3학년에 진학하면서 주위 친구들이 하나씩 취업 준비를 하고 경영학 수업을 듣는 걸 보며 슬슬 불안해졌다. 작가나 교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2개 직업이 얼마나 되기 어려운 일인지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은 그런 얘길 쉽게 했다. 너도 차라리 취업 준비를 하라고. 우선 경영학 수업을 듣기 시작하라고. 주위에 누구는 벌써 기업 인턴십에 합격해서 졸업과 동시에 그 기업에 들어갈 거라고. 우리 집 역시 내가 대학원이 아닌, 취업을 하길 바랐다. 여러 환경과 상황이 맞물려, 경영학 수업을 들으며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보다 더 빨리 전공 이수 학점을 다 채워 한 학기 먼저 준비를 시작했다. 막상 부딪혀보니 현실은 현실이더라. 아직 취업 준비가 한 학기 남은 친구들은, 친구들 생일파티나 동아리 모임에 나오지 않는 내게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취업 준비가 대체 뭐길래 친구들과 제대로 연락도 하지 않고 이미 취업한 선배들에게 도움이나 구하러 다니냐고. 물론 그 친구들도 본인들의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때 섭섭해했던 걸 미안해 하더라. 어쨌든 그렇게 주위를 섭섭하게 만들 정도로 나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몸과 정신이 바빴다.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 내 자기소개서는 한 편의 소설 같았고 면접은 '어버버'의 연속이었다. 국문학과라 그랬는지, 자기소개서가 처음이라 그랬는지 전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장들뿐이었다. 취업상담팀에서는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쓰면 기업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면접에선 목소리가 너무 커지거나 빨라지거나 버벅인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공고가 뜬 기업도 몇 개 지원하지 못했다. 내가 언제부터 ㅇㅇ화학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왜 ㅇㅇ전자에 관심이 생겼는지, 내가 왜 ㅇㅇ패션회사에 입사해야 하는지. 알게 뭐람. 내가 그런 기업을 가고 싶어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자소서 문항은 말도 안되는 말들의 조합이었고 심사 공고가 뜨면 난 불합격을 받기 일쑤였다.

 내 스펙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학교에, 학점은 4.3점 만점에 4.0점에 가까웠다. 남들 다하는 교환학생 경험도 있었고 영어 점수는 높은 수준에 속했다. 3학년 때부터 방학마다 간간이 했던 인턴십 덕분에 경력 란이 비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두 학기, 즉 1년을 깔끔하게 다 떨어진 뒤, 카페에 앉아 울며 일기를 썼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를 고작 일년 하고 뭘 그리 낙담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취업 스터디에서 나보다 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합격하고, 나란 사람은 취업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절박해지더라. 사실, 가장 낙담했던 건, 그간 실패를 많이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에서 나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와서도 변함 없었다. 하려던 인턴십이나 대학생 기자단, 동아리 쯤은 원하는 대로 됐기 때문에 어렵게 살아오지도 않았다. 별로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해왔다. 어렵거나 힘들어 보이면 크게 무리해서 욕심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취업 준비는 더 어렵더라. 당시 내게 취업이란 선택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취업한다, 하지 않는다 2개의 보기로 끝나지 않고 '하지 않는다'를 선택할 때 열리는 수많은 보기들 - 전문 자격증을 딴다, 백수가 된다, 사업을 한다 - 을 선택할 자신은 또 없었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꼭 그래야만 했나 싶긴 하다. 다른 선택지가 충분히 많았고 난 아직 어렸음을 그땐 몰랐으니까. 이 선택지를 포기하는 순간 실패라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1년 좀 넘게 준비를 했을까 마침내 한 회사에 입사했다. 내가 갈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한 회사였다. 준비했던 금융계 회사가 다 떨어지고 우연히 붙은 회사의 영업마케팅 직군이었다. 아직까지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다. 벌써 4년차가 되었다. 사실 요즘은 이렇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사는 게 맞는지 고민된다. 지난 27년을 뒤돌아보며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왔는지, 주위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방향대로 흘러온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도 함께 고민중이다.

 스카이캐슬 드라마가 촉발한 생각이라고 하기엔 참 두서 없었고 길었다. 뭐 하나만 보거나 들으면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성격은 여전한가보다. 하여튼, 더 잘 살고 싶다. 더 행복하게,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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