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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해 보려고 해요. 매주 2회 수요일, 일요일에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라갑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15년 결혼 생활 가운데 평일 낮에 남편이 집에 있던 적은 손에 꼽는다. 남들 다 쓰는 연차 한 번을 안 쓰던 사람이었다. 수면내시경이 포함된 건강검진을 받고도 오후에 출근하던 사람. 건강검진도 가능하면 평일을 피해 잡았지만, 올해는 토요일 아침에 받고도 오후엔 회사로 향했다. 마취도 덜 깬 몸을 이끌고. 평일에 남편이 출근하지 않던 날은 딱 하루, 창립기념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주말에도 부재 중일 때가 많았다.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 큰애는 아빠를 거의 못 보고 자랐다. 평일 12시 야근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이틀 내내 출근할 때가 많았다. 그마저도 집에 있을 땐 피곤에 절어 온종일 잠을 자기 바빴다. 기저귀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남편이었지만, 감히 불평할 수 없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여름휴가라고 다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휴가는 언제나 8월 둘째 주. 며칠만 넘기면 바닷물, 계곡물이 차가워져 물놀이를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팀원들 다 챙겨보내고 늘 마지막에 휴가를 가던 남편. 휴가도 일주일 이상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가장 길었던 게 평일 닷새를 사용한 작년 여름이었다. 올해는 예정된 일정도 다 못 채우고 휴가지에서 오자마자 다음 날 출근했다.


그랬던 남편이, 그렇게 회사밖에 몰랐던 남편이 이제는 회사를 안 간다.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받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을 안 했다. 남편이 집에 있던 첫날,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아침 8시가 지나도 주차장에 남아 있는 남편의 차가, 임원 배지를 달며 회사에서 나왔던 그 검은색 세단이 온종일 집 앞에 세워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 힘들었다. 아이들도 적응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엄마, 우리 학교 갈 때 아빠 차가 있으니 이상해."


가족들이 이런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25년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출근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갈 곳을 잃어버린 상황. 아침에 눈을 떠도 서둘러 나갈 곳이 없게 된 상황. 바로 전날까지 출근했던, 수십 년을 매일같이 드나들던 그곳에 이제는 갈 필요가, 아니 갈 수가 없게 된 상황. 남편의 속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느낄 상실감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모두에게 낯선 아침이 지나고, 점심때가 되었다. 내가 할 일은 딱 하나, 최선을 다해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평일 낮, 남편의 점심상을 준비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밥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겉으로는 딱히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첫날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여느 주말인 듯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남편만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집은 주택이라 지하 방 하나를 남편이 서재처럼 사용하고 있다. 평소엔 수시로 그곳에 들락거리는 모습이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공간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남편 혼자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껏 듣고, 담배도 태우고, 잠도 자고. 가족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상한 마음도 그곳에서 홀로 삭히는 듯싶다.


남편이 집에 있던 첫날, 12시에 점심을 먹고 지하로 '출근'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6시 30분에 '퇴근' 예정이라고 답을 보내온 남편. 집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40분이라고 했다. 평소 출퇴근 시간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회사에서 집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수시로 울컥거리는 마음에 힘들었지만, 잠시나마 피식 웃음이 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남편은 회사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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