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by 번역하는 엄마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말씀드렸듯,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해 보려고 해요. 매주 1~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라갑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얼마 안 남았어.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아."


임원으로 승진한 뒤 남편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기업 임원의 평균 재임 기간 2년. 남편의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은 3년 차를 넘어서고부터는 정말로 옷 벗을 준비를 하는 듯했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모두. 그때부터는 달고 사는 한 마디가 추가됐다. "나 회사 그만두면..."


25년의 긴 여정이 끝나면 남편은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여행도 길게 가 보고, 아이들도 좀 더 가까이에서 살뜰히 지켜보고, 운동도 시작하고. 회사를 그만둔다는, 아닌 회사에서 잘리면 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말하며 남편은 진심으로 설레는 듯했다. 하지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의 힘을 믿는 나로서는 마냥 동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퉁명스레 대꾸하곤 했다.


"아직 닥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남편의 그 설렘은 어쩌면 불안의 반작용일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임원이 되는 순간, 고용 안정성은 사라진다. 정규직에서 계약직 신분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퇴직금도 정산 받는다. 이는 곧,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뜻이다. 월급은 평사원일 때보다 2배 이상 오르고, 주어지는 혜택도 비할 수 없이 커지지만 고용은 보장받지 못한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남편은 4년을 버텨냈다.


하지만 남편의 줄기찬 세뇌에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상무를 넘어 전무, 대표이사 자리까지 갈 거라는 내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심지어 해고 통보를 받는 그날까지 나는 기도 수첩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하나님, 우리 남편 직장 생활 딱 10년만 더 하게 해주세요. 본인의 능력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주세요.' 이런 내 바람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우선, 남편은 특진을 거듭하며 최연소 나이로 임원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승진에서 밀린 적이 없었다. 더욱이 핵심 부서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잔뼈가 굵었고, 이후엔 관리자 신분으로 해외 사업부 등 주요 부서를 돌며 사업의 전 영역을 두루 익혔다. 또 수년 전에는 회사의 지원으로 유수의 대학에서 MBA 과정까지 마쳤다. 언젠가 남편의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이사까지 가셔야죠. 그 코스대로 밟고 계시고요."


그래서 남편의 직장 생활이 상무에서 멈출 거라는, 만 나이 50도 되기 전에 해고 통보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남편이 입에 달고 살던 '이제 얼마 안 남았다'라는 말조차 나는 매번 흘려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말이 씨가 된다고! 당신은 승승장구할 거야! 대표이사까지 갈 거라고! 그러니 자꾸 앞서서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정말 남편의 말처럼 되고 말았다. 만 49세, 남편은 상무 4년의 임기를 끝으로 25년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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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를 통보받기 며칠 전, 남편과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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