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제4화: 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남편은 정말 말이 없는 사람이다. 안팎으로 유명하다. 시댁 친척 어른들을 뵈면 종종 이런 소리를 듣는다. "조카며느리야, 저 말 없는 놈하고 사느라 힘들지? 그래도 속은 한없이 깊으니 네가 좀 봐줘라." 회사와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다. 승진을 하건, 팀을 옮기건 일체 말을 안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회사에 몸담은 직장인으로서 겪어야 할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런 남편이 처음으로 힘든 기색을 내비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온 나라를 집어삼킨 2021년 가을. 남편은 유독 회사 생활의 여명을 언급하며 불안해했다. 직급은 부장, 회사 생활 20년 차를 넘길 즈음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말해주지 않은 채 그저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그때,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가정은 남편 수입에 거의 100% 의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라 내 일은 거의 용돈벌이 수준이었다. 더구나 재테크로 자산을 불리긴커녕 커녕 집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의 불안은 너무나 당연했고,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런 짐을 혼자 짊어지게 해서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난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유치원생 둘째의 하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뉴스 기사 링크였다. 평소에도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자주 공유해 주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링크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건 그룹사 전체의 임원 인사 소식이었고, 스크롤을 내리자 승진자 명단에 남편의 이름이 떡 하니 박혀 있었다.


뉴스를 보자마자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남편은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실직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임원 승진이라니! 그간의 마음고생이 단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렇게 남편은 회사 생활 20년 만에 별을 달았다. 공채 신입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모든 직장인의 꿈이라는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남편이 결혼 생활 중 처음으로 본인의 승진 소식을 직접 알려준 날이기도 했다. 15년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은 몇 번이나 승진을 거듭했지만 내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 겪는 일이고, 본인이 승진을 했으면 좌천된 사람도 있는 법인데 굳이 떠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임원 승진 소식만큼은 내게 직접 전한 걸 보면, 본인도 무척 기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원 없이 축하하고, 축하받았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과 깜짝파티를 준비했다. 케이크도 사다 놓고, 두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축하 카드도 만들었다. 퇴근한 남편과 넷이서 촛불도 불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그날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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