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제4화: 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제5화: 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라고?
"이제 네가 번 돈은 저축 통장으로 넣지 말고, 생활비로 써 봐. 거기서 부족한 금액은 내가 보내줄게."
2년 전 어느 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번 걸 생활비로 쓰라니? 그럼 생활비를 끊겠다는 거야?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가족의 생계는 '당연히' 남편이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남편의 일방적 통보가 몹시 불쾌했다. 저 한 마디를 듣고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쳤는지 모른다. 그것이 퇴직을 염두에 둔 남편의 빅 픽처임을 그땐 알지 못했다.
결혼 후 10년 넘게 우리 집 생활비 담당은 남편이었다. 매달 25일, 월급이 들어오면 남편은 내게 한 달 생활비를 입금했다. 십일조, 교육비, 식비 등 모든 지출을 그 안에서 해결했다. 나는 프리랜서라 소득이 일정치 않기에 한 달에 두 번, 공용의 저축 계좌로 내가 번 돈 일체를 송금했다. 그럼 남편의 월급에서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돈과 내 수입을 합쳐 재테크를 했다. 그건 남편 몫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탄탄한 시스템으로 가정 경제를 꾸려오던 차에 남편이 던진 한 마디는 내게 날벼락과 같았다. 나보다 2배 이상 버는 대기업 임원 남편을 두고 내가 왜? 그럼 남편은 그 돈으로 뭘 하려는 거지? 딴 주머니를 차려는 건가? 자고로 가정 경제는 남자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 머릿속에 온갖 부정적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한 건지 궁금했다.
그때가 임원 2년 차를 막 넘길 때였다. 남편은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설명했다.
"2년이면 딱 평균만큼 한 거야. 이제 정말 언제 잘릴지 몰라. 그러니 지금처럼 경제를 꾸려가선 안 돼. 내 월급에만 기대 있다가 막상 월급이 끊기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그러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자. 내가 버는 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네 수입을 생활비로 써봐. 모자라는 건 보내줄게. 내 월급은 전액 투자로 굴릴 거야. 퇴직 후를 대비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 나아."
요컨대, 퇴직 연습을 해보자는 거였다. 사실 그때는 남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창 잘 벌고 퇴직 시기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사서 걱정을 하는 남편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왜...?'라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남편은 단호했고, 정말 다음 달부터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다. 남편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못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뒤로 식비를 제외한 일체의 생활비는 내 수입으로 감당했다. 두세 달 그렇게 살아보니 대략 한 달에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이 됐다. 내가 부족분을 요청하면 남편이 보내주는 식으로 꾸려나갔다. 생활비 충당에서 자유로워진 남편은 그때부터 훨씬 더 공격적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 낮에는 회사 일에, 밤에는 투자 및 관련 공부에 집중하며 하루 4~5시간밖에 못 자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퇴직 연습'을 시작한 지 2년, 여전히 내 소득만으로는 부족하지만 남편의 월급에서는 한결 자유로워졌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변화가 두드러졌다. 이제는 남편도 나도, 더 이상 퇴직이 두렵지 않았다. '그날'을 수없이 그려보며 마음속으로 또 현실적으로 충분히 연습한 덕분이었다. 당장 남편의 월급이 끊겨도 크게 타격받지 않을 만큼 우리 부부는 단단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그날'이 왔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눈물은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 연습하며 준비한 덕분에 경제적인 타격감은 크지 않았다. 남편이 대기업 임원이던 어제도, 실직자가 된 오늘도 우리 가정 경제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제야 2년 전 남편의 빅 픽처가 옳았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제일 많이 벌고 잘 나갈 때 모든 지출을 0으로 만들어 미래를 대비한 우리 남편, 진심으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