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채운 반찬으로 전해진 시어머니의 마음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제4화: 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제5화: 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라고?

제6화: 사위의 실직 소식을 접한 친정아빠의 첫 마디

제7화: 꽉 채운 반찬으로 전해진 시어머니의 마음


"김치 가져가. 곧 한파라고 해서 미리 해버렸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어머니 말씀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김장을 혼자 하셨다고? 그 많은 재료를 혼자 사다가 씻고 다듬었다고? 왜? 아니 대체 왜?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다음 주에 우리 집에서 하기로, 시누이까지 와서 다 같이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머니는 디스크 때문에 허리도 안 좋으셔서 그즈음 겨우 치료를 끝내고 회복하던 중이었다.


솔직히 감사한 마음보다는 걱정과 짜증이 밀려왔다. 이제 겨우 괜찮아졌는데, 이제 좀 살만한데 그러다 또 디스크 재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 이러시나! 제발 당신 몸 좀 아끼시라고, 우리 김치 안 먹어도 되니까 어머니 건강이나 돌보시라고 수없이 말해도 좀처럼 듣지 않으셨다. 매번 같았다. 치료받고 좀 낫는다 싶으면 반찬 하나라도 만들어 챙겨주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머니께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다 같이 김장을 하기로 약속된 날로부터 꼭 일주일 전, 당신의 아들이 퇴직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한창나이에. 워낙 표현에 서툰 분이라 소식을 듣고도 위로의 전화 같은 건 없었다. 사실 그 부분이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며칠 뒤 걸려온, 김치를 가져가라는 전화에 난 어머니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결국, 혼자서 끝낸 김장은 어머니만의 위로 방식이었다. 며칠 뒤, 남편과 함께 어머니 댁으로 갔다. 퇴직 후 남편과 함께 한 첫 평일 나들이였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평일 대낮에 남편과 외출을 하다니.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잔함도 느껴지고, 그런 어머니를 향한 남편의 마음도 느껴지고. 하지만 여느 때처럼 하하호호 맛있게 밥을 먹고 김치를 실어 집으로 왔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코스트코 가방 한가득 반찬을 실어 온다.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는 평소에도 반찬을 만들어주시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 종류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최근에 담아주신 김치만 해도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동치미 등 대여섯 가지는 된다. 거기에 각종 나물과 생선, 고기에 아이들 먹일 반찬까지 꼭 따로 챙겨주신다.


회사에 다닐 때도 남편은, 저녁은 거의 집에서 먹었다. 친구나 지인 약속도 기껏해야 1~2주에 한 번이었다. 그런 남편이 점심 한 끼 더 먹는 건데도 생각보다 고되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 반찬은 정말 단비 같다. 정말 감사하지만, 허리도 아프신데 온종일 부엌에 계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고.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온다.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 밥 차릴라모 며느리 힘들다고 그래 해주시는 거 아이가. 그런 시엄마 읍다. 니는 고마마 시집 잘 간 줄 알고 끽소리 말고 잘 해라!"


결혼 생활 16년 차. 처음 10년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6년 전 분가해 따로 또 각자 살아가고 있다. 친정엄마랑도 한나절만 같이 있으면 부딪히는 법인데, 하물며 생판 처음 본 두 여자가 10년의 세월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으니 오죽했을까. 그때는 어머니도 나도 힘든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고, 나도 중년이라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근 두 달째,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반찬으로 내 영혼이 치유받는 느낌이다. 그 갖가지 반찬에 아들, 며느리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다 녹아 있으리라. 한 번씩 나를 괴롭혔던 어머니를 향한 미움도, 원망도 이제는 안쓰럽고 애처로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여생을 좀 더 편안하게, 누리면서 사시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지금처럼 맛있는 거 해주시면서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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