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제4화: 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제5화: 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라고?
제6화: 사위의 실직 소식을 접한 친정 아빠의 첫 마디
제7화: 꽉 채운 반찬으로 전해진 시어머니의 마음
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제8화: 윤 대리가 죽었어
"윤 대리가 죽었어. 오늘 보내고 왔다."
그날은 아마도 남편의 25년 회사 생활에서 가장 슬픈 날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제일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후배. 같은 팀원으로 남편 바로 밑에서 손발을 맞추던 사람이었다. 말수도 없고 좀처럼 속내를 터놓는 법도 없는 남편이 퍽 깊게 의지하던 윤 대리님. 서른 중반의 가장은 이제 갓 첫돌을 넘긴 딸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윤 대리님 부부는 입사 동기로, 부부 모두 남편에겐 각별한 후배였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회사 사람들 중에선 두 사람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었고, 특별히 윤 대리 님 아내분은 나와 동갑에 관심사가 여러모로 비슷해 사석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결혼식도 우리 부부와 몇 달 상간으로 올렸다. 그래서 그분들 결혼식이 남편과 내가 부부 동반으로 처음 참석한 행사이기도 했다.
"뭐? 뭐라고? 당신 후배 그 윤 대리? 성민 씨?"
나는 기각 딱 막혔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데? 이제 결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니 그리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니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한 윤 대리님은 업무 시간에 갑자기 쓰러졌고, 그길로 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즈음, 아내의 뱃속엔 예쁜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대리님 부부는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고 했다. 새 생명을 맞을 준비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시한부 선고라니. 그 슬픔과 절망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생명의 끈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세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단 하루라도 늘리기 위해 부부는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천사 같은 딸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애달팠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긴 시간이 허락되진 않았다. 딸아이의 첫돌을 보내고 얼마 후, 대리님은 영영 가족의 곁을 떠났다. 워낙 건강하고 체격도 좋은 젊은 사람이었기에 암세포의 공격 또한 무서운 기세로 몰아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소식을 뒤늦게 접한 탓에 나는 장례식장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천국 소망을 품고 대리님의 영생을 위해 혼자만의 기도를 올려드렸다.
그 후로 얼마간, 남편은 한 번씩 대리님 납골당에 가는 눈치였다. 그 긴 시간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생활한 후배가 하루아침에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그 상실감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리고 이따금 윤 대리님의 아내도 본다고 했다. 이직은 했지만 일 때문에 가끔 회사에 오는 모양이었다. 아내분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간다고 했다.
그렇게 윤 대리님이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추억도, 아픔도 많이 바랬다. 우리 둘째와 동갑인, 그 돌쟁이 아가씨도 어느덧 초등 고학년 언니가 되었을 터. 윤 대리님이 살아있었다면, 그래서 여태 남편과 직장 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관계로 남아있었다면, 과연 무어라고 위로했을까? 유쾌한 대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형, 축하해. 이제 자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