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상무님 사모님에서 실직자 아내로
PART I 그렇게 남편은 실직자가 되었다
제1화: 결국, 그날이 왔다
제2화: 어제도, 오늘도 남편이 회사를 안 간다
제3화: 사장님 사모님이 될 줄 알았지
제4화: 임원을 달던 그날의 기억
제5화: 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라고?
제6화: 사위의 실직 소식을 접한 친정 아빠의 첫 마디
제7화: 꽉 채운 반찬으로 전해진 시어머니의 마음
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제8화: 윤 대리가 죽었어
제9화: 우리 남편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요?
우리 남편은 소위 'TMI'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딱 필요한 말만 한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을 때도 많다. 물론 연애 때는 안 그랬다. 전형적인 경상도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살갑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다. 처음 만나 연애한 남편의 모습은 그런 내 이상형에 완벽히 들어맞았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연애 시절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은 적응이 안 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왜 그리 말이 없냐, 말 좀 해라, 화난 거 아니냐, 내가 뭘 잘못했냐. 하지만 끊임없는 나의 외침에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연애 시절 보여준 그의 모습은, 그저 나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가면?!이었다.
남편은 회사 일과 관련해서도 일체 말을 아꼈다. 연애까지 포함해 16년간 남편을 봐왔지만, 회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본인이 승진을 해도, 팀을 옮겨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쾌한 일이든 불쾌한 일이든, 남편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여겼다.
한동안 새벽 1~2시에 퇴근해 7시면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이어가던 때가 있었다. 주말 근무도 기본이었다. 신혼 때부터 둘째가 태어날 무렵까지 그랬으니 족히 5년은 그런 생활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힘들다는 불평 한 마디가 없었다. 어쩌다 쉬는 주말이면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게 일이었다. 회사가 안팎으로 퍽 힘든 시간을 보낼 때였다.
그런 남편의 회사 생활을 이따금 전해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딱 하나 있었다. 일찌감치 퇴사해 펜션 사장님이 된 남편의 후배를 통해서였다. 이따금 그곳으로 여행을 가 사장님 부부와 바비큐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내겐 꿀같이 달았다. 그토록 궁금했던 남편의 회사 생활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은 고기를 먹다가 왈칵 눈물을 쏟을 뻔한 일이 있었다.
"형수님 모르셨어요? 그때 형 검찰에서 며칠씩 밤샘 조사받았잖아요. 그러고는 곧장 출근해 회장님 보고를 들어갔는데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더라니까요."
검찰 조사라니! 우리 남편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그것도 몇 날 며칠간 밤을 새가며? 세상에 나 와이프 맞아? 그런 것도 모르고 만날 늦는다고 투정만 하고. 회사가 한창 시끄러웠고, 여러모로 어려울 때였다. 집에 못 들어온 날도 종종 있었지만, 검찰에 불려 다녔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남편이 말을 안 하니 내가 어찌 알았겠냐마는, 그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이미 십수 년이 훌쩍 지난 일. 그때의 아픔도 힘듦도 이젠 다 추억이 됐다. 초중고 학창 시절을 합쳐도 12년인데 그 두 배 이상의 기간을 같은 직장에서 보냈으니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겪었을까. 20대 청년 시절을 지나 30대 결혼을 하고 40대 네 식구의 가장이 되는 동안 지나왔을 수많은 시간들. 기쁘고 슬프고 아쉽고 애통했던 그 모든 일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