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과 맞바꾼 아빠의 자리

Part II 신입부터 임원까지 25년, 당신의 희로애락

by 번역하는 엄마

저희 가정은 최근 남편의 실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매주 2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아무리 부부라 한들 마음속 깊은 생각까지 속속들이 알진 못한다. 더구나 우리는 남편도 나도 서로에 대해 너무 깊이 알려 들지 않는다. 부부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만큼 개인의 삶도 존중한다. 그럼에도 15년이라는 시간을 부부로 살아오며 자연스레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남편의 목표는 대기업 임원이 아니었다. 요컨대, 임원을 목표로 회사 생활을 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야망이 강한 사람도, 명예욕이나 출세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직장인'이라는 자신의 자리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에 최선을 다하느라 아이들이 어릴 때 아빠의 자리는 늘 부재중이었다. 지금이야 '칼퇴'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문화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특히, 당시 남편의 회사는 평일 야근은 기본에 주말 출근도 으레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평일에 가족들끼리 저녁을 함께 먹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당연히 모든 육아와 집안일은 내 차지였다. 그저 내 몫이려니 불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남편은 기저귀 가는 법을 모른다. 갈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 살 터울의 두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화장실에서 스스로 용변을 처리하기까지 아빠의 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림만 했던 건 아니다. 나 역시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이름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훅 올라왔다. '너만 일하냐! 나도 일한다!' 하지만 그런 소모적인 전쟁을 치르기엔 주말도 없이 일에 치여 사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


남편이라고 365일 회사에 매이고 싶었을까? 그렇게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물며 제 새끼들인데 크는 모습 하나하나 살뜰히 챙겨 보고 싶지 않았을까? 아이들 잘 때 출근해 다시 잠이 들어서야 퇴근하는 생활을 수년간 이어갔지만, 그 시절 남편은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의미 있게 회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십수 년간 몸담았던 전략기획팀에서 해외사업팀으로 옮겨 출장도 많이 다녔다. 또 둘째가 태어날 무렵에는 MBA 과정에 입학해 학업까지 병행해나갔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남편은 회사로, 나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7~8년을 보냈다. 그러다 경영진이 바뀌고 사내 문화도 점점 가족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도 칼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평일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주말에 가족 여행을 갈 수 있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우리는 토요일 아침이면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네 식구 똘똘 뭉쳐 어디로든 갔다. 내 외장하드에는 그때의 추억이 연도별로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남편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 두 녀석 초등 시절에는 정말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애쓰는 남편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남편은 훨씬 더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사춘기에 접어든 녀석들이라 데면데면하게 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빠가 본인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또 살고 있는지 아이들도 가슴으로 느낄 거라 믿는다.


그렇게 회사에 내주었던 남편이,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새날, 새로운 추억을 하나씩 쌓아나가길!


SE-2f262997-19d8-4ab7-a72f-bba7a5a1ede0.jpg 주말이면 아빠는 회사로, 우리는 키카로 가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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