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수능인 내년은 고2인 큰 아이 수능이다.
큰 애가 중학생 때부터 시험을 불안해할 때 얘기 해주었던 콩트!
“자~ 네가 고3 수능일 전날에서 오늘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거야. 우리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해보자!”
작년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일이면 본인 차례라고 생각하는지, 올해 수능에는 함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아이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욕심에 긴장을 하고 불안을 느껴, 영락없이 실수를 하고, 기대하는 성적에 모자란 편이다. 그래서, 모의고사 보다 내신에 들어가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실수가 많곤 하다.
잔뜩 겁을 먹은 아이(왜 네가?)에게, 이번에 긴장하고, 내년엔 편하게 보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안다. 고3을 앞둔 아이를 보니, 나의 수능 전날과 수능날이 상기된다.
나의 수능날은 잊을 수가 없다.
수능 전 날. 그렇지 않아도 한껏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로 내 감정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365일 중 그 어느 날 보다도 안정적이고 아무 일도 없었어야 하는 그날.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매우 낮은 확률이었지만, 일어났다.
1897년생이셨던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당시 99세이셨다.
증조할머니는 좋은 분이셨다. 정정하시고 중병도 없었기에, 자잘한 증상으로 병원에 가도 진료가 거부(?) 되시곤 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집에서 모셨고, 노쇠하셔서 사실 많이 안 좋으신 상태였다.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필 내 수능 전날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죄송하지만, 슬플 겨를이 없었다… 대체 확률을 어찌 계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능 날도 아니고, 수능 전날이었다..
아빠와 엄마 모두 장례를 치르러 가셨다. 나는 남동생과 집에 남았다.
펑펑 울었다.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런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나빴지만, 내 수능을 망치게 될 건 뻔했다. 그뿐이었다. 긴장의 밤을 부모님 없이 보내야 했고, 엄마가 도시락을 싸 주실 수도 없었다.
다시 한번 말 하지만, 그땐 어렸고, 어리석었으며, 이기적이었다.
그날 밤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눈물만 났다.
‘하필 내게 오늘 이런 일이…’
얘기를 들은 친구 두 명의 어머니들께서 나의 도시락도 싸 주셨고, 새벽에 엄마가 도시락을 싸 보내주셔서, 내 손에 도시락 3개가 들려 있었는데, 그 도시락들을 모두 들고 갔는지 어쨌는지…
고사장에 어떻게 갔는지, 도시락은 먹었는지, 시험은 어떻게 봤는지,.
수능 당일 일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시험 전날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았고, 시험날은 더 많이, 그리고, 실제 성적표를 받고는 더 펑펑 울었다. 마치 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다.
“엄마, 누나가 EBS로 채점하면서 계속 울어.”
고1이었던 남동생이 그때 얼마나 난감했을지, 그걸 유선으로 듣고 있을 엄마가 얼마나 속 터졌을지(!)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은 가늠이 된다.
성적이 어찌나 떨어졌는지, 사람 좋으신 담임선생님께 엄청나게 혼났다. 평소 실력보다 낮은 가채점 결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낮은 점수가 나왔다.
가장 속상한 건 나인데, 그런 나를 꾸짖는 선생님이 야속했다. 생각해 보니, 못난 짓은 다 했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증조할머니상은 그 저조한 수능 점수의 핑계였다. 나의 실력이 그랬고, 공부를 안 한 나의 태만이지 않았나 싶다. 그저 내 실력이 그랬던 것을,
그렇게 엄청(!) 나게 수능을 망쳤어도, 더 이상의 공부는 정말 하기 싫어, 나는 그 점수로 대학에 갔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 배운 전공으로 아직도 일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시험 때 긴장하고 불안한, 그리고 시험 성적에 실망하는 큰 애에게 잊을만하면 해 주는 이야기이다. 이 경험으로, 행운은 늦게 와도 괜찮은 것 같으니 너무 애태우지 말라고 덧붙여준다.
인생이야 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보다.
‘커피소년’의 ‘모르는 법’ 노래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