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던, 어리석었던 나의 성탄절 준비.
얼마 전 결혼기념일이었고, 성탄절도 1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오래전만큼 캐럴이 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트리나 오너먼트 등 장식이 보이니, 연말이 다가왔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부모님의 표정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산타는 이브 날 내가 부모님께 전달드린 3개의 선물 목록 중 하나의 선물을 주셨다. 그래서, 내 생일만큼이나, 적어도 어린이날보다는 더 좋아하는 날이 성탄절이었다. 어떤 선물을 받을지 설레기도 했고, 그 보다, 1년 동안 착하게 지냈는지 평가를 받는 날이라, 두근거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착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적이 없다. (과연?!)
한 번은 산타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 남동생과 손을 잡고 서로 잠들지 않기로 했는데, 동생은 내 손을 두 번만 눌러준 후 잠이 들어버렸다. 아무리 눌러도 답이 없었다..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할 생각에 어찌나 야속하던지! 또 혼자 기다릴 자신은 없어, 결국 뵐 수 없었다.
주택 단칸방에 가까운 집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드디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겠다는 마음에 꽤나 들떠 있었다. 꼬마일 때부터 오래도록 조르던 트리가 우리 집에도 생긴다!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실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음… 들어는 주셨다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기는 하셨다.
당시 집마다 유행이었는지 ‘행운목’을 키웠다. 커다란 화분에 키도 거의 천정에 닿기 직전으로 컸다. 지금 나보다 훨씬 어렸을 부모님 역시 처음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있으셨겠지. 그래도 그렇지, 그 행운목에 트리 장식을 해 놓으신 거다!
세상에, 행운목은 누가 봐도 겨울나무는 아니다!
반짝이는 전구며 초록색 빨간색 술 등 둘러놓은 꾸밈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기이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했는지, 그 자리에서 울음이 터졌던 것 같다.
이 사건(?)은 우리 원가족끼리 가끔 웃으며 얘기하는 기억이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작은 거라도 해줄걸 그랬다며 웃으셨다.
그런데, 내가 결혼하고 신혼집에 들어가던 날. 부모님께서 오셨는데, 두 분의 표정이 서로 달랐다.
설레는 표정의 엄마와 미안한 표정의 아빠. 아빠는 커다란 상자를 가져오셨다.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하셨다. 머쓱해하시며 트리 박스를 내미시던 아빠의 그 표정, 엄마는 기뻐할 나를 기대하는 표정…
“이제야 사줘서 미안해. 많이 늦었네.”
나는 그때 또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그게 늘 마음에 걸리셨단다. 제일 먼저 트리를 장식해 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오래 담아두고 계셨나 짜증도 나고, 괜히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마 화를 냈던 것 같다.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어이없게도 이제 드디어 내 집에서 나도 내 마음대로 꾸미고 싶은데, 이제야 트리를 가져오시다니 싶기도 하고…
아빠가 예상하시지 못했던 반응을 보였던 나. 그런 내게, 아빠는 그래도 잘 꾸며보라고 밀어 놓고 가셨다.
내게 지금 최고의 날은 우리 두 아이들의 생일이지만, 그전까지는 여전히 크리스마스였다. 종교도 없었던 내가 왜 예수님 태어나신 날을 그토록 고대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산타를 기다리던 남동생과 나의 동심을 소중하게 지켜주신 부모님의 사랑 자체였던 날이라는 것을.
나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어설펐다. 부모님께서는 그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산타를 맞이하셨던 걸까?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주지 못하셨던 것이 돈 때문인지, 공간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꼭 커다란 트리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수 있는, 작은 트리 장식이나 화환, 가랜드 정도여도 행복했을 텐데, 부모님께서는 커다란 트리를 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 마음을 알겠다. 아이를 키우니, 안타깝고 애틋했을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크고부터는 트리를 설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산타도, 트리도 기다리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올해 반짝이는 전구 정도는 달아봐야겠다. 부모님의 사랑하는 딸인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