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사는 엄마는, 뵈러 갈 때마다 내게 말씀하신다.
“너 피부가 참 좋다.”
처음엔 진짜 좋아졌나 하다가, 매번 말씀하시기에, 일흔이 넘으신 엄마보다 젊은 사람의 피부가 좋아 보인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나서는 그냥 웃었다.
그런데, 어제도 똑같이 말씀하시고, 내 반응을 잠시 보시더니, 처음으로 되물으셨다.
“엄마 피부는 어때?”
아! 잊고 있었다. 외모 칭찬은 인사 같아서, 칭찬을 받으면 나도 되돌려 주어야 인지상정인 것을!
“엄마 피부도 좋지!”
엄마 표정이 밝아진다.
한 달 전쯤 다치셔서 집에만 계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편인데, 아마 보통 답답하지 않으셨을게다. 나름 주말에도 찾아가 말동무도 되어 드렸는데, 아차! 가장 첫인사인 외모 칭찬을 놓쳤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집단에서 상황과 상대방에 적절하게 타인으로서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페르소나라는 단어로써 거창하게는 아니라도, 상대를 배려하고자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바로잡은 게 있으니, 그중 하나가, ‘상대방을 외모로 칭찬하지 않기’이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서로 부지런히 칭찬하거나 걱정해 주는 게 미덕이었다. 새로운 옷과 가방, 바뀐 헤어스타일. 또는 살이 빠졌네, 피부가 좋아졌네 등등. 하지만, 너무 말라도 타인의 걱정을 유발한다. 피부가 푸석해도 마찬가지. 흰머리가 나도 염색하지 않으면, 내 유난스러운 피부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보다 타인에게 비칠 내 모습에 훨씬 신경이 쓰였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랜 인연이 아닌 최근의 동료나 지인들, 특히 나보다 어린 분들을 만나면, 서로 칭찬도 걱정도 잘 건네지 않았고, 요즘은 그게 미덕인 시대가 되었구나 이해했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내가 연장자라서 배려(?)하거나, 딱히 관심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특히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료들에게는 조심해야 한다. 나는 ‘정말’ 예뻐서, 부러워서, 나도 구입하고 싶어서 칭찬을 하지만, 그 역시 ‘평가’ ‘판단’이 되기에, 꾹꾹 삼키려고 한다.
그러니, 엄마 같이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칭찬을 담뿍 담아 인사를 해야 하고, 서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냥 담아두어야겠다 생각했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우리 아이들은 알파세대이니,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내 눈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쁘기만 하다. 육아 서적에는 외모 평가하고 결과로 칭찬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자꾸만 칭찬이 흘러나온다. (물론, 미운 부분이 있을 때도 있지만~)
아까, TV를 보다가, 한 연예인이 여전히 너무 예쁘길래, 혼잣말로,
“어머, 저 연예인은 어쩜 하나도 안 늙고 그대로야~” 했더니,
그걸 들은 둘째가 얘기한다.
“그대로인 사람 한 명 더 있는데! 엄마.” 하며 웃는다!
내가 더 크고 신나게 웃고, 조금 지나서, 요즘 걸그룹 예쁘다고 얘기하니, 누구보다도 엄마가 제일 예쁘단다.
사실이 아니라 듣기 좋은 말인 줄 알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말을 하면서부터 사랑스러운 말만 골라서 하는 아들내미. 늘 대화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 말은 누구에게 배웠냐고 하니, 또 ‘엄마’란다.
얼마나 기쁘던지, 투박하고 퉁명 부리는 남편에게 반만 닮으라고 타박했다.
그래,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이 있다.
사실 칭찬을 하면 일단 그 말을 하는 내가 먼저 기쁘다. 내가 들어도 행복하고, 또 듣는 사람의 밝은 표정을 상상하며 또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하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숨길 자신도 없다.
진심의 칭찬을 삼키지 말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