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머리 터지겠다!

그림보다 욕심이 앞섰던 날들

by 최우성

검은 그림자 선생님 말씀대로 이번 수업부터는 다른 연습 방법대로 하기로 했다. 이 연습법의 핵심은 비례를 맞추며 형태를 갖춰야 한다. 일명 “패턴 지옥”. 얼마나 괴상한 지 여러분들도 해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1. 원을 그린다. (어느 도형이든 상관없다)

2. 원 위에 수직선을 긋는다.

3. 원 위에 도형을 그린다. (수직선에 최대한 비례를 맞춘다)

4. 도형 안에 같은 도형을 그린다.

5. 도형을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될 때까지 4번을 반복한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도형을 그려본 적이 있던가? 정육면체보다 그리기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비례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쉽게 흥미를 잃을 것 같은 나를 위해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하셨다. 패턴 지옥이 재미없어지면, 드로잉을 하곤 했는데 애니메이션 캐릭터 동작이나 사진을 본 뒤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그렸다.


예를 들어 공작 사진을 보면서 자연과 같은 요소를 집어넣어 그리거나 사람 얼굴을 일부러 다르게 그린다든지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 방법은 창작 일러스트를 할 때 굉장히 도움 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한 재미를 쌓아 갔다.


무엇보다도 내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실 외에 집에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조용한 재즈 음악과 좁은 책상 위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새벽에 다다를 때쯤 드로잉 북들은 쌓여 갔다. 이걸 보면 늘 뿌듯했다. 실력보다는 재미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것을 재해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시기에 마카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을 때라 사용해 보았다. 반고흐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때의 우울함과 어두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이내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갈색, 하늘색, 초록색, 노란색을 적절히 배치하여 반고흐의 기법을 최대한 나의 그림체로 재해석해 보았다. 이로써 나만의 반고흐 자화상이 완성되었다.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처음으로 칭찬받았고, 재능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살면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감사함을 느꼈다. 덕분에 그리기에 용기가 생겼고, 욕심은 커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림을 나를 위해 그리는 것" 이 아닌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리는 것이 커졌다.

퇴근 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화실에 갈 때마다 선생님들께 보여드렸다. 어떤 그림은 평가가 좋았고, 어떤 것은 안 좋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나의 세계에 덧칠하기 시작했다. 마치 선생님의 철학을 나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급했는지 그림을 그려놓고,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으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그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기에 나는 그림으로 사기를 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런 싸구려 그림들을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 내듯이 수십 권의 드로잉 북을 매번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보다 못한 검은 그림자 선생님이 한 마디 던지셨다.

“야 머리 터지겠다! 그만 그려!”




3화_001.jpg 주야장천 그렸던 도형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