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심해
과거에 현실로부터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던 나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어둡고 고요하며 끝이 없고,
고래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나와 진정으로 마주 볼 수 있는 나만의 우주이다. 때로는 말하지 못한 고민을 해결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고, 화산을 품은 대지처럼 뜨거워진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잠재워주기도 한다.
"나는 이 공간을 내면의 심해라 부른다."
붓을 잡고, 흑연과 물이 섞인 유리잔에 담근다. 검지로 힘을 주며 원을 그려가다 보면 어느새 심해의 중심부에 도달하게 된다. 손으로 문지르고, 다시 다듬는 과정을 반복하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얼굴처럼 보이기도 심장같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감정들의 응축된 에너지들이 주변을 맴돌며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
자유작이었던 마지막 수업을 끝으로 내면을 작품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볼 때면 고요함이 아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