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만 말고, 비우자
4 원소 수업의 주제는 한국화였다. 소재는 화조도. 처음 화선지에 붓을 맞대었을 때에는 고요한 힘이 흘렀다. 나는 이 힘을 이용해 선을 그을 때마다 마치 산을 옮기듯이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물이 잘 번지기에 힘 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손끝이 흔들린다면 주변의 형태들에 먹이 번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10장 남짓 되는 화선지에 그리면서 점차 적응할 수 있었다. 붓에 힘을 쥐어 강렬한 선과 동작을 표현하고자 했고, 손은 빠르게 움직이며 그려갔다. 어딘가 부족함이 보이면 약간의 상상력을 한 스푼 더하기도 하지만 욕심 때문일까? 점점 어색해지고, 시선은 분산되었다. 잠시 멈춘 순간 붓끝에 떨어지는 먹 한 방울이 나에게 속삭인다.
"채우려 하지 말고, 멈춰서 다시 보라고 말이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꽃의 가시 부분 (첫 번째 그림, 네 번째 그림)이었다. 물 조절도 힘든 데 호흡을 멈춘 뒤 다시 그리는 데에는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균형 있게 나열되어 있다기보다는 물 흐르듯 어색한 모습이 되었다.
이후 꽃은 물의 양을 적게 새는 힘을 주어 그려보았으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툭하면 찢어지는 화선지에 애꿎은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채우려는 습관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래도 실수투성이이었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그림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무작정 그리기보다"는 "한 번 멈춘 뒤 멀리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