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그림을 잘 그려야 될까?
이쯤에서 그림쟁이라면 한 가지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는 걸까?
"저 사람은 저렇게 다양한 선이 보이는 데 내 그림에서는 왜 안 보일까?"
"남들은 짧은 시간 안에 실력이 늘었는데 나는 왜 안 되지?"
"작법서를 봐도 왜 내가 그린 그림은 제자리일까?"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누군가와 자꾸 비교하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구상에서 선생님만큼 악당은 없었을 것이다. 칠판에 학생들의 이름과 성적이 적혀있는 한 장의 거대한 종이로 공개 처형했으니 말이다. 그걸 본 친구끼리 '네 성적보다 내가 더 높네~ 뭐네!' 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매번 시험이 끝난 뒤 나눠주었던 흰색 띠 성적표는 사춘기 소년에게는 확인 사살과도 같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치가 떨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으니 어쩌면 비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사회 속에서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깨달은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전에도 누누이 이야기해 온 거다. 내가 확신하는 건 최근에 우리 조상님들에게서 배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머나먼 과거로 떠나보자. 수립채집인이었던 인간은 농경사회 이전에 노동시간이 단 3시간 ~ 5시간이었다고 한다.
주 40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나와는 다소 편하게(?) 생활한 게 틀림없다. 심지어 돈 없는 일반인은 먹기도 힘든 연어와 같은 고단백 음식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산딸기류, 뿌리채소, 견과류 등 무려 수백 가지 이상의 식물을 매일 맛있게 요리하여 먹었다. 꾸준히 사냥하니 강제 크로스핏을 한 셈이고 몸은 그야말로 튼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청소년기를 넘긴 조상 중 무려 80살까지 산 사례들도 종종 발견된다.
어쨌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간이 남는 이들이 했던 활동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발명품이 없던 시절에 그들은 벽화에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하며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무언가를 그렸다. 이게 최초의 그림인 것이고 실제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글자가 없던 시대에 유일한 언어였으며 재능, 노력보다는 몰입이며 유희이다. 그들에게 그림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떠올린 매머드를 벽화로 그린 뒤 사람들 앞에서 깔깔 웃으며 자랑했을 조상들을 생각해 보면 이미 그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배울 수 있다. 그림이 주는 힘은 강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고, 망가진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상상하는 세계를 마음껏 보여주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성되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만큼 몰려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우리가 느끼는 이 강력한 카타르시스는 수만 년 전 조상들이 준 선물이자 지혜이다. 이는 DNA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가르쳐주고 있다. 그림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못 그린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니 조급하지도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는 넓은 우주 속에 그저 작은 먼지일 뿐이다. 지금 걱정하는 것 따위 별거 아니다. 왜냐하면 애석하게도 우주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으니까.
따라서 남들이 정해놓은 '잘 그린 그림'이라는 기준보다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탐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림 못 그려'라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기로 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으며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가져온 순수한 표현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예술은 우리 영혼에서 일상의 먼지를 씻어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