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 아들의 살인자를 추적하다.
전임의로 일하던 2000년에 유전성 질환을 가진 남매의 진료에 참여했습니다. 남매의 아버지는 대학에 근무하신다고 했습니다. 치료법이 없다는 의사들의 무기력한 소견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서 프린트 한 문건을 병원에 가져오시곤 했습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차고에서 구글을 만든 것이 1998년, 검색 엔진으로 세계를 석권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 뒤입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검색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동물 실험 예비 연구 결과가 발표된 약물을 찾아서 써 볼 수 없겠냐고 물어오셨습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엄청난 양의 도움 안 되는 문건도 가져오시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정보인지 구별은 못 하셨지요. 하지만 어쩌다 뒷걸음질로 쥐를 잡은 소와 달리, 한 방향으로만 줄곧 가서 필요한 정보를 찾은 것입니다. 2000년이면 별로 오래 전이 아닌 것 같지만, 스마트 폰도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카카오톡도 스카이프도 클라우드도 없거나 아주 초기였던 시절입니다. 그런 시절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젠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지금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좀 어설프기는 해도 보호자가 검색만으로 필요한 약을 찾아낸 것입니다. 사람에게 투여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단계가 많아 당장 진료에 쓰이기 요원한 실험적인 화합물이었지만, 당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온갖 도구와 정보가 넘치는 현재 시점에서 의료 전문가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진지하게 검토가 필요합니다.
동명의 영화로 유명해진 로렌조 오일을 개발한 오돈 부부는 실제로 투여 가능한 약을 찾았습니다. 1983년, 부부의 아들 로렌조 오돈(Lorenzo Odone)은 5세 나이에 부신백질이영양증 (adrenoleukodystrophy, ALD)으로 진단받았습니다. ALD는 지방산 중 하나인 긴사슬지방산(Very Long Chain Fatty Acid, VLCFA)이 혈장과 조직에 축적되는 반성유전질환입니다. 중추 신경계에 VLCFA가 침착되어, 혼동과 불안을 보이다가 무반응에 이어 사망에 이르게 되는 파괴적인 질환입니다. 수년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우울한 예측에 굴하지 않고, 이들 부부는 미국 국립 보건원 도서관에 붙박이로 지내며 자료를 찾고, 과학자들을 초청해 첫 번째 ALD 학회를 개최합니다. 그때까지 ALD 학회가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 질환 연구가 얼마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 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이렇게 모은 정보와 지식을 토대로 로렌조 오일로 알려진 화합물을 개발하고, 이는 아들의 VLCFA를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로렌조는 30세까지 생존했습니다. 로렌조 오일의 효과는 계속되는 논란의 가운데 있었지만, 89명의 무증상 AL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MRI의 이상 소견이 발생하는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107). 다시 말하자면 증상이 아직 나타나기 전에 로렌조 오일을 투여받으면 뇌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돈 부부의 노력은 놀랍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제이미 헤이우드 형제들이 실시간으로 이용하던 인터넷 연결도 없던 시대에 의학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부부가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고가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네요.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네요.”
그렇게 해서 이런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기나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딘가에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아이를 고쳐 줄 사람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닌다. 가진 돈을 다 쓰고 더 이상 돈을 빌려 줄 사람이 없을 때까지 돈을 빌리고 다닌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세상에 있는 모든 의사를 찾아간다. 메이요 병원이라는 곳을 추천받아 매일매일 끝없는 검사에 검사를 받던 중이었다. 과정이 진행될수록 희망이 점점 커져갔다. 이렇게 연구를 많이 하고 이렇게 많은 검사를 하면 틀림없이 뭔가 알아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겠지. 마침내 소아과 과장을 만나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심각한 지체를 겪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되풀이해 온 질문을 또 했다. “왜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출생 전에나 출생 후 언제쯤에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희망이 없나요?” 나는 겨우 입을 떼고 이렇게 물었다.
그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그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확실히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는 확실히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라면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의사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진찰실을 나와 텅 빈 복도를 걸으며 다음에는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할 때 한 의사가 다가와서 손짓했다. 그리고 평생 뇌리에 각인이 될 말을 했다. 아이는 영영 낫지 않을 것이라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아는 편이 낫다고. 이 아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글을 읽거나 쓰지도 못하고, 고작해야 네 살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108)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펄 벅(Pearl Buck)의 딸 캐럴은 페닐케톤뇨증 (phenylketonuria, PKU) 환자였습니다. 1934년 노르웨이의 의사 아스비에른 펠링(Asbjørn Følling)이 지적 장애가 있는 형제의 소변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분석하여 페닐피루브산(phenylpyruvic acid)과 페닐아세트산(phenylacetic acid)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PKU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PKU는 페닐알라닌을 티로신으로 전환시키는 효소의 선천적인 결함이 원인입니다. 이 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페닐알라닌이 체내에 축적되어 중추신경계 손상, 지능 저하, 발작, 행동 문제 등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합니다. 1950년대에 질환의 유전적 결함이 확인되었고 식이 조절만으로 환자의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1960년대 신생아 혈액 한 방울로 조기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대사질환 중에서 비교적 빈도가 드물지 않지만, 조기 진단과 개입으로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캐럴은 1920년에 출생하여 이미 성인이 된 후에야 진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조기 진단과 식이 요법의 시기를 놓쳐 정상적인 발달을 회복할 수 없었지요. 결국 9세 무렵 입소한 시설에서 60년 이상을 지내다 세상을 떴습니다. 펄 벅은 아이가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몸 안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다고 썼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의 진단을 찾아다니는 애타는 부모의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매트와 크리스티나 마이트 부부(Matt Might and Cristina Might)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6개월이 되지 않아 소아과 주치의도 이에 동의하고 발달 장애 전문의에게 보냈습니다. '특별한 분과의 여러 전문의들이 돌아가며 진료를 보았지만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정말 좌절스러웠어요. 우리 아이를 뜨거운 감자처럼 이리저리 던지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아무도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못했어요.' 부모는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109)
세 살에 염기서열분석을 받은 후에야 NGLY1 염색체의 변이가 선천성 당화 장애(Congenital Disorders of Glycosylation, CDGs)라는 드문 질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겨우 원인에 근접했지만, 이렇게 드문 질환은 다른 증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확진을 내리기도 어렵고 제약회사에서 치료제를 개발할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컴퓨터 공학자였던 아버지는 스스로 증례를 모으기로 했습니다.
“내 아들의 살인자를 추적하다(Hunting Down My Son’s Killer).”(110) 매트 마이트가 개인 블로그에 아들의 병력과 진단 과정을 올리자 단숨에 레딧의 상위 검색에 올랐습니다. 전 세계에서 반응이 왔고, 아들이 NGLY1 변이를 가진 첫 번째 환자로 진단받고 나서 13개월 만에 다른 환자를 9명이나 찾았습니다. 의사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중증 질환 환아를 돌보느라 지친 가족들이 희귀 질환 연례 심포지엄에서 한 자리에 모였고, 서로를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NGLY1 변이를 진단했던 듀크 대학의 유전학자 반다나 새시(Vandana Shashi)는 이런 환자들의 커뮤니티가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연구자들만이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109, 111)
펄 벅 여사는 의사들에게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원인도 모르면서 포기하지 말라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과장보다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해 준 사람에게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었지요.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치고 나서야 진단을 받아 평생 가슴에 멍이 되었지만, 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어 많은 부모에게 위안을 주고 정신지체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매트 마이트는 자기 아이의 진단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정밀의학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추진에 합류하여 핵심 역할을 하였고, 2017년부터는 앨라배마 대학교 버밍햄 캠퍼스 정밀의학 연구소 (Hugh Kaul Precision Medicine Institute) 소장으로 일합니다. 데이터가 21세기 최고의 약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107. Moser HW, Raymond GV, Lu SE, Muenz LR, Moser AB, Xu J, et al. Follow-up of 89 asymptomatic patients with adrenoleukodystrophy treated with Lorenzo's oil. Arch Neurol. 2005;62(7):1073-80.
108. Buck P. 자라지 않는 아이: 양철북; 2003.
109. Mnookin S. One of a Kind. New Yorker. Jul 14, 2014.
110. Might M. Available from: https://matt.might.net/articles/my-sons-killer/
111. Digitale E. Scientists, parents join forces to identify new genetic disease in children. Stanford Medicine News Center. Mar 20,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