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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Mar 05. 2021

카페의 분위기는 오는 사람을 결정한다

제 5호. 턴다운서비스

♬ I never thought I'd fall in love with you - Barry white


햇살이 참 좋았던 탓에 오랜만에 연남동 골목을 걸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트럴파크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 손을 잡고 햇살을 만끽하는 커플들, 조깅을 하는 사람들까지. 주로 여성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옆으로 난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언제 사람이 많았냐는 듯 발길이 뚝 끊긴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가끔 이런 동네를 거닐 때면 마치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오늘도 그러했다.


사실 오늘은 나오기 전 생각해놓은 카페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어느새 카페는 사라지고 뿌연 먼지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분명 2월 달에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불과 3일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가끔은 발길이 닫는 데로 걷다, 주변에 있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곤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이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오늘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를 못했다. 그렇게 묵묵히 걷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 턴다운서비스 ]에 들어선다.



왜 우리나라는 'TAKE OUT'이라고 쓸까?



오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안쪽 테이블은 이미 거의 만석이었다. 결국 입구 쪽 창가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매장에는 다소 찬 공기가 맴돌았지만, 그래도 창가로 햇살이 비췄던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입고 있던 코트를 의자에 걸어두고는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자리를 나선다. 그런데 나와 동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먼저 주문을 하고 있어, 천천히 내부를 둘러본다.


원목으로 된 수납장, 웜그레이톤의 카페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수납장 위에는 자체 제작한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머그잔은 다른 곳에서 들여온 듯 보인다, 가죽으로 만든 에어팟 케이스, 키링 등 구성이 다채롭지는 않았지만 꽤나 인상적이다. 관리를 잘 못한 탓에 맘에 들지 않은 색으로 태닝이 되어버린 내 에어팟 케이스를 지긋이 들여다본다. 아무래도 가죽은 관리하기 힘들다.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진동벨을 받아들고는 그 주변을 서성이다 원형 테이블 위에 달려있는 꽤나 독특한 모양의 컨셉 조명을 발견한다. 마치 원형 테이블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뒤로 뜻을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보인다. 그 뜻을 이해해보려 노력하지만, 내겐 그럴만한 예술적인 감각이 없는 듯 하다. 갑자기 울리는 진동벨 덕분에 아쉽게도(?) 픽업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5,000원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에서는 과일 향이 물씬 났다. 그 향과 맛은 꽤나 오래 입안에서 맴돌았다.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원두의 맛이다. 앤트러사이트의 '공기의 꿈' 원두를 가장 좋아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산미가 있는 원두를 선택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좀 더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원두를 고르게 되더라. 나이가 들었다 싶다.


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저 멀리에서 노래 소리가 점잖게 들려온다. 생각해보니 계산대 옆에 레코드 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열어 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외국 음악이라 그 뜻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매장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대체 무슨 노래일까? 조용히 휴대폰을 켜서 노래를 검색한다. Barry White의 'I never thought I'd fall in love with you'(1977), 'You turned my whole world around'(2018). 기존 재생목록의 노래를 모두 지우고는, 이 가수의 노래로 가득 채운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들어야지. 지금은 레코드판 사운드를 더 느끼고 싶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



내게 카페란 휴식의 공간이다. 가끔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들거나 쉽게 입에 욕을 담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는 좋았던 기운을 뺏기는 기분마저 든다. 이런 경우 주변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곤 하는데, 마치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가'를 주제로 열띈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다행이도 이곳은 테이블이 거의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장의 톤앤매너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듯 보였다. 내 기준으로 큰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질 않았고, 그래서인지 더욱 편안함을 느꼈다. 머무르는 동안 오고갔던 많은 사람들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카페의 분위기는 오는 사람을 결정한다.



몰래 만져보려다가 참았다.



내 또래로 보이는 코트 차림의 말끔한 얼굴을 한 두 남성이 들어온다. 마치 좋은 레스토랑에 갈 때 최소한 세미정장이라도 입고 가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동성 친구랑 카페를 간 적이 있나? 생각해보니 참 편한 차림으로, 심지어는 머리도 안감고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도 오늘 코트를 입고왔더라.


연남동 카페에만 오면 이 동네에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꽤나 걷기 좋은 공원이 있고, 정취가 남아있는 골목이 있고, 그 골목 속에 숨겨져있는 카페를 찾는 재미가 있다. 자, 내일은 또 어느 카페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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