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사라졌다
"유니, 나 너랑 내일 하룻밤 더 같이 있어도 될까?"
눌이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물었다. 원래 길리에서 하룻밤만 보낸다고 했었는데.
"응! 당연하지!"
"길리도 너무 아름답고, 너네랑 더 놀고 싶어서."
"우히히 진짜? 나야 너무 좋지. 그런데 나 내일도 오픈워터 코스 수업 가야 해서 낮에는 너랑 같이 못 놀아."
"괜찮아. 도미랑 놀고 있을게."
"그래! 나 너네랑 같이 자전거 타고, 길리 T 한 바퀴 돌고 싶은데."
"너 수업 마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같이 타자!"
"그러면 우리 자전거 타고 선셋 보러 가자."
길리에 오기 전에는 자전거를 낮에 타려고 했었다. 여유를 가지고 이 사랑스러운 길리 섬 구석구석에 멈춰서 햇살을 누리고 싶었다. 3일간의 오픈워터 코스가 끝나고 나면, 내게는 여전히 두 번의 긴 낮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눌은 길리에 더 이상 없고, 하루살이 배낭 여행자 도미도 길리에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내겐 '낮'보다 그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들과 함께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 뭐. 눌은 꾸따의 짜라짜라 인과 사누르의 좋은 호텔 대신 우리와의 시간을 선택했는 걸.
나의 스쿠버 다이빙 버디, 아름도 혼자 여행을 왔길래 내가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나, 아름, 눌, 도미 이렇게 넷은 '자전거 투어 크루'가 되었다.
수업 끝나고, 허기를 달래려고 편의점에서 과자 사고 뭐하니, 이미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그래도 아직 밝았다. 모아나 게스트하우스에서 20루피로 자전거를 하루 종일 빌릴 수 있었지만, 이미 다 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메인 도로에서 보이는 아무 곳에서 자전거를 30루피 주고, 자정까지만 빌리기로 했다.
"석양 보고 싶은데, 어디가 가장 멋있어?"
자전거 렌트 주인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는 섬의 동쪽에 있으니까. 서쪽으로 넘어가야 해. 저쪽 방향으로 쭉 가봐."
"섬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려?"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걸?"
태양이 아직 하늘에 잘 자리 잡고 있길래 안심했다. 석양을 보면서 식사도 하고, 많이 어두워지기 전에 해변을 따라 한 바퀴를 쭉 돌아서 다시 숙소 근방으로 올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길 왼편에 쭉 펼쳐진 해변을 힐끗힐끗 보며 가다가 그네가 보였다.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좀 타보고, 사진과 동영상을 열심히 여유롭게 찍었다. 그러곤 서쪽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유니 대장! 어디까지 가야 할까?"
선두로 가고 있던 내게 도미가 물었다.
"음. 조금만 더 가면 선셋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확실하지 않았다. 나도 길리는 처음인걸. 최 내비게이션의 감각만 따랐을 뿐이었다.
30분 정도 달리다 보니, 블록이 깔린 길은 어느 순간 끊겨 있었다. 서쪽은 고급 대형 호텔이 대부분이었고, 호텔 앞쪽으로는 길이 탄탄하게 다져있었다. 그러나 서쪽은 동쪽처럼 건물과 건물이 오밀조밀 붙어있지 않았다. 듬성듬성 어쩌다 하나 있었다. 정말 한적했고, 자연 모습 그대로 둔 곳이 많았다. 숙소와 숙소 사이에는 대부분 모래나 흙으로 덮여 있었다. 모래가 얇게 깔린 구간은 조금 미끌거리지만 중심을 잘 잡고 가면 지나갈 수 있었는데, 깊게 깔린 곳은 바퀴가 모래 속으로 푹 파고 들어가서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안장에서 내려와서,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빠져나와야만 했다.
가도 가도, 오렌지 빛으로 가득 찬 하늘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래와의 사투에도 지쳤고, 적당한 해변이 보이길래 멈췄다. 회색 빛과 헝클어진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최 내비게이션은 고장 났었다.
"역시 유니가 포즈를 잘 취해. 유니만 따라 하면 사진 잘 나올 수 있어."
귀여운 도미는 나를 따라서 포즈를 취했다. 내가 한쪽 팔을 들으니, 도미도 따라서 한쪽 팔을 들었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구름에 먹힌 석양 앞에서 각자의 핸드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다 찍고 우리는 다음 일정에 대해 고민했다.
"어떡하지.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할까?"
"유니, 여기서 저녁 먹고, 우리 숙소 쪽으로 돌아갈 때는 너무 어두울 거 같아. 도로도 그렇고 밤에 자전거 운전하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도미가 말했다.
"맞아. 우리 가던 방향대로 쭉 가서 자전거 반납하고 저녁 먹자." 눌이 말했다.
저녁 먹기 딱 좋은 6시 30분. 나는 배가 무척 고팠다. 그러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래! 우리 어서 동쪽으로 가자!"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자를 입에 넣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달렸을까.
"잠깐만! 나 핸드폰이 없어졌어!" 눌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다 같이 멈춰서 눌이 가방과 자전거 바구니를 뒤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 나 핸드폰 바구니 안에 넣어 뒀던 거 같은데. 여기 바구니가 구멍 나있어"
눌이 바구니 바닥에 깔려있던 종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른쪽 모서리가 뻥 뚫려있었다.
"어떡하지? 핸드폰 못 찾을 거 같은데." 눌이 말했다.
"아니야. 우리 왔던 길 다시 돌아가 보자. 그러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애들아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 우리 같이 여행 중인데 당연히 같이 해결해야지."
나는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정직하게 사유지에만 손을 댄 길리의 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새까맸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은 어쩌다가 한번 등장했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건물의 조명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 라이트가 필요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움켜 잡고,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았다. 모래와 흙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밝았을 때도 울퉁불퉁 파인 비포장 도로 때문에 운전하기 쉽지 않았는데, 밤이 되니 너무 벅찼다. 어둡고, 핸들은 한 손으로만 잡을 수 있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고, 핸드폰도 찾아야 했다.
핸드폰에 사진, 숙소와 비행기 예약, 지도 그리고 여행 전의 모든 그녀의 일과 삶이 다 담겨있을 텐데. 핸드폰 사진 얼마 안 되었다고 했는데. 내가 자전거 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길리 간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예정된 일정대로 움직였을 텐데.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못 찾을 경우는 어떡하지? 내가 노트북도 들고 왔으니까 우선 노트북을 빌려줘서 여행 중에 쓰게 하고, 공항에 맡기고 가라고 할까? 아니야.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제발 누군가 주워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줍기 전에 내가 빨리 발견했으면 좋겠다. 제발.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엉켜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울퉁불퉁한 길을 샅샅이 훑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뒤를 바라봤는데,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뭐. 이따 만나면 되겠다 싶었다. 핸드폰 찾는 게 우선이니까.
"혹시 여기 오다가 핸드폰 못 봤어?" 지나가는 아무 자전거를 잡고 물었다.
"아니."
한참을 가도, 또 가도 직사각형의 반짝이는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미에게 전화가 왔다.
"유니! 핸드폰 찾았어!"
"뭐? 어디서?"
"호텔 프런트에서."
"으헝헝. 진짜? 너무 다행이다."
"유니, 너는 어디야?"
"나 어딘지 모르겠어. 일단 자전거 대여소에서 다시 만나자."
그렇게 30분을 더 달리고 나서야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은 8시. 한 시간 반 동안 핸드폰을 찾아 헤맨 것이었다. 자전거 바구니에 들어있던 과자는 다 뭉개져 있었다. 나는 먼저 자전거를 반납하고 대여소에서 물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아이들이 새로운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유니! 올린스가 핸드폰 찾아줬어!"
"뭐? 어떻게? 올린스! 넌 천사야."
나는 너무 기뻐서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핸드폰 어디서 찾은 거야?"
"아까 나 혼자 자전거 타고 있는데, 너네가 나를 스쳐 지나서 가는 걸 봤었어. 그러곤 나는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는데, 모래에 뭔가 박혀 있는 거야. 주워서 보니까 핸드폰이더라고. 그래서 그 근처 호텔 프런트에 맡겼었어. 맡기고 앞으로 가고 있는데, 너네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서 다가오는 거야. 두리번거리면서 뭘 찾고 있길래, 내가 물어봤지. 핸드폰 찾냐고."
"애들아 정말 고마워. 너네도 내 핸드폰 찾아 주느라 고생 많았어. 오늘 내가 저녁 살게. 올린스 숙소가 서쪽인데, 같이 대접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 눌이 말했다.
우리는 샌드 바로 향했다. 화이트 와인과 여러 디쉬를 주문해서 셰어 하기로 했다. 음식이 나오고 보니, 무슨 양이 한입거리도 안되어 보였다. 사람은 5명이 었지만, 양이 많을 줄 알고 4개만 주문했었다. 볶음면, 치킨, 새우볶음, 소고기 볶음. 포크와 스푼도 딱 4개씩만 나왔다. 우리는 각자 아무거나 주워 잡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거의 3시간 동안 탔던 나는 정말 정말 배가 고팠다. 다른 애들도 그랬을 텐데. 우리는 덩어리를 다 집어먹고 탄수화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밥을 추가 주문을 했다.
"우리 다른 메뉴도 또 시킬까?" 내가 물었다.
"그냥 소스 남은 거에 비벼먹자." 도미가 말했다.
그녀는 포크, 나는 스푼을 들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다 먹고 스푼을 내려놓고 와인을 마시고 있자. 그녀는 내가 사용했던 스푼을 집어서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서양애들은 다른 사람의 침이 들어간 거 안 좋아해서, 음식도 셰어 잘 안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도미는 이제 내가 쓰던 스푼도 사용하고. 우린 참 가까워졌다.
"유니,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에너지가 넘쳐나? 너 오늘 아침에 요가도 하고, 다이브도 2번이나 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갈 수 있어?" 도미가 물었다.
"핸드폰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없던 힘이 생겼나 봐."
"그리고 너는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는 거 같아. 나는 이런 경우에 방법을 먼저 찾고, 그다음에 행동으로 옮기거든."
"하하. 나는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거라 생각해서, 누군가 주워가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
"그랬구나. 여하튼 핸드폰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눌, 너의 남은 여행을 망칠까 봐 너무 걱정했었어. 핸드폰에 너의 모든 것이 담겨있잖아."
"응. 여행 어떻게 해야 하나 노심초사했어. 너네도 피곤할 텐데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거 같아 미안했고." 눌이 말했다.
"나 사실 핸드폰 하나 더 가져왔거든. 그거 너에게 줄려고 했어." 도미가 말했다.
"나는 노트북 있어서 네가 여행 중에 쓰고, 공항에 맡겨달라고 하려고 했어."
"너네 스윗하다. 진심으로 고마워."
"핸드폰을 찾아준 올린스와 핸드폰을 찾은 눌을 위해 Cheers~"
자전거 여행이 아닌 고행이었다. 두 번 다시 자전거 타고 싶지 않다고 말이 나올 만큼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만 생각하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따듯한 그녀들이 떠오른다. 만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어쩌면 여행이 끝나면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서로를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정말 찐득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찾았기에, 더욱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