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복섬에서 폭포 투어 그리고 얻어걸린 몽키 포레스트
"우리 지금 화물선에 탄 거 같은데?"
롬복행 보트 한가운데는 온갖 물건들이 산적해있었다.
길리 트라왕안은 30년 전에는 무인도였고 선원들만 아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백패커들이 이 섬을 발견하고, 파티 섬으로 발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에 호텔, 리조트, 부티크 방갈로가 들어섰고, 연인, 가족, 친구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된 것이다.
길리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롬복 출신이다. 배로 30분 거리밖에 되질 않아서 롬복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노동력뿐만 아니라 길리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스, 음식, 생필품 등 모든 물자는 롬복섬에서 공급받는다.
가스통들이 줄줄이 서있어서, 조금 무섭긴 했지만, 행운은 언제나 나와 함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롬복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어떤 남자가 내 이름을 쓴 종이를 들고 우리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인사도 안 하고 쌩하니 주차장으로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시크한 분인가 싶었다.
나는 차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목이 꺾이는 줄도 모르고, 깊게 깊게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산골 자기를 굽이 굽이 올라가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창문을 내리자마자 원숭이와 눈을 마주쳤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산에서 내려온 원숭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차를 탔을까. 마을에 들어섰다. 내가 창문을 내리고 바깥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를 향해 헬로! 하이! 를 외쳤다. 해변가가 아닌 섬 중심 쪽이라 외국인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었나 보다.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 마다 큰 목소리를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해주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열심히 응답해줬다. 안녕! 헬로! 하이!
우리 기사님은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하셨다. 롬복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어디엔가 주차를 하고 내리더니, 우리에게도 손짓을 하며 내리라고 했다. 내리자마자 그가 하는 말이 "아이 캔 낫 스피크 잉글리시."였다. 그는 영어를 못해서 과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드라이버는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잘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긴 하지만, '여행자를 태운' 드라이버는 로컬 정보를 줄 수 있는 가이드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그를 소개해준 리자에게 좀 아쉬움을 느꼈다.
침묵 속에서 도착한 곳은 테라택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두 곳의 폭포를 보기로 했다.
https://goo.gl/maps/95PVkVBhXEqe68aSA
첫 번째 폭포
https://g.page/GoalRinjani? share
두 번째 폭포
https://goo.gl/maps/ZZf6VCkCKjjVDhCMA
드라이버가 티켓을 구매해주고, 가이드도 데리고 왔다. 우리는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안녕. 나는 돌라야. 내가 폭포 투어를 해줄 거야. 내 이름은 미국 돈하고 비슷하니까 기억하기 쉬울 거야."
"안녕! 돌라! 진짜 이름 쉽다. 여기 폭포 올라가는데 운동화 신는 게 나을까?"
"응. 쪼리보다는 나을 거야."
쪼리를 신은 돌라가 말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폭포 있는 데까지 갈 수 있다며 오토바이를 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당연히 추가 비용을 내야 했다. 나와 도미는 천천히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가고 싶어서 걷기로 했다.
"너는 이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어?"
"일 년 정도 되었어."
"하루에 몇 번 일해?"
"거의 한 번만? 많이 하면 두 번?"
"엄청 조금밖에 안 하네."
"응. 다른 사람들도 돌아가면서 같이 일해야 되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여기 폭포는 한국인들은 잘 몰라. 인도네시아 와서 알았어."
"그래? 그런 거 같아. 네가 내 첫 번째 한국인 손님이거든. 네가 많이 홍보 좀 해줘."
"알겠어. 대신 네가 사진을 잘 찍어줘야 돼."
"당연하지. 그리고 여기 폭포에 관광객을 받기 시작한 지 사실 몇 년 안됐어. 정부에서 개발을 막고 있다가 여기 사람들이 일도 안 하고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바나나, 망고 농장도 만들고, 폭포도 개방한 거야. 개발 안 했으면 나도 그냥 집에서 바나나 까먹고 누워있었을걸?"
그는 안녕,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돌라야 등등을 한국어로 말하는 법을 물어보길래 알려주었다. 그는 열심히 핸드폰에 받아 적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었나. 점점 힘들어졌다. 나는 운동화 신고 헥헥거리면서 올라가는데, 그는 쪼리를 신고 가뿐하게 오르고 있었다. 이런 체력으로 린자니 트레킹을 생각했었다니. 내가 점점 뒤처지자 돌라는 내 대신 가방을 들어줬고, 도미는 내가 잘 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줬다.
처음 도착한 폭포도 멋있었지만.
두 번째로 도착한 폭포가 더 멋있었다. 더 높고, 더 물이 많았다. 롬복의 커튼이라고 불릴만했다. 돌라는 우리가 건기 맞춰서 폭포를 보러 잘 왔다고 했다. 우기에는 하얗고 투명한 물이 아닌, 흙탕물이 떨어진다고 했다.
도미는 태어나서 폭포를 처음 봤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평지밖에 없어서 참 지루하다고 했다.
돌라는 천천히 너네 시간을 가지라며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하지 않았다. 우리가 충분히 폭포와 숲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내게 저기 서봐라 저기 앉아봐라 하면서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줬다. 그렇게 두 번째 폭포를 다 즐겼다고 하자. 세 번째 폭포가 또 있는데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도미와 또 마음이 통했다. 우리는 폭포는 두 개로 충분했다. 우리는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에 또 원숭이를 만났다.
"저거는 블랙 몽키야. 사납고, 예민해서 보기 힘든데. 너네 운이 좋다."
"후후. 그래? 여기가 몽키 포레스트구나."
폭포 투어를 마치고 든 생각이 솔직히 가이드가 꼭 필요한 코스는 아니었다. 몇 개의 방향표시만 더 해두면 누구든 쉽게 폭포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이드를 관광객 옆에 붙여둔다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였다. 가이드로 얻는 수익은 주민들의 생활을 이끌고 있었다. 또한, 관광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아름다운 생태자원 제공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대한 편안함과 친절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돌라는 여기 바나나가 정말 맛있다며 꼭 먹어 보라고 했다. 우리는 입구에 도착해서 바나나를 세 개에 10루피 주고 샀다. 도미와 나는 하나씩 먹고 마지막 남은 한 개를 돌라에게 주려고 했다.
"난 괜찮아. 여기 오기 전에도 먹었고. 나 바나나 맨날 먹어. 지천에 깔려 있는 게 바나나야."
여기 지역주민에게는 바나나는 돈 주고 사 먹는 게 아니었다. 공기 같은 먹거리였다.
우리는 다시 드라이버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대화를 안 했어서 그런지 그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하하. 그가 인도네시아 음악을 틀었다. 너무 작게 틀어서 나는 좀 분명하게 잘 들어보고 싶어서 "I like this song. Can you turn up the volume?"이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노래를 끄고, 차도 멈추고, 카세트를 막 찾더니, 팝송을 틀었다.
내가 그 노래 듣기 싫다고 다른 노래로 바꿔달라고 들었나 보다. 미안했다. 나 그렇게 각박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도미랑 나랑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허허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