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국내선 타고! 오토바이 타고!
늦은 아침, 우리는 롬복 공항에 도착했다. 라부안 바조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Wings Air에서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 쪽으로 향하는데 정말 반가운 초록색 얼굴이 우리를 반겼다.
“와! 스타벅스야!” 나와 도미는 동시에 외쳤다.
우리는 그동안 커피 잔 반이 커피가루로 채워진 파우더 커피만 마셔왔다. 색은 아메리카노였지만, 그 가루는 뜨거운 물에도 녹지를 않아서, 입안에 텁텁함을 남기고 갔다. 맑은 아메리카노를 원했던 우리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스타벅스로 직진했다. 나의 인도네시아 첫 국내선을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Wing Air는 정말 작았다. 복도 하나를 두고, 양쪽에 두 개의 좌석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뭐.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 안전벨트를 매고, 눈을 감았다. 바로 잠들었다.
코모도 공항 또한 작고 귀여웠다. 짐 나오는 벨트가 오직 2개뿐이었다. 벨트 길이도 인천공항의 벨트의 2분의 1이었다. 출구 바로 오른쪽에 택시 오피스가 보였다.
“우리 L bajo Hotel로 가야 하는데, 택시비 얼마야?”
“50루피야. 라부안 바조 시내까지는 기본요금 50루피는 내야 해.”
내가 50루피를 내자 직원이 티켓을 줬다. 티켓을 들고, 짐을 기다리고 있는 도미에게 가보니, 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노란색 잔 꽃무늬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마치 소녀처럼. 그녀는 혼자서 동남아시아를 3달 동안 여행 중이라고 했다. 장기간 여행자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떠한 여행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숙소가 어딘지 묻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공책을 꺼내서 펼쳤다.
“흠. 그 숙소 내가 알아봤던 거 같은데.”
그 공책은 그녀만의 ‘BOOKING.COM’이었다. 각 지역에 갈만 한 몇몇의 숙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둔 공책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 지내기에는 좀 비싼 거 같긴 하네. 너네 언제까지 라부안 바조에서 지내니?”
“우리는 여기서 하루만 머물고, 내일 코모도 투어 하는 보트를 탈 거야. 보트에서 4일 동안 지낼 거고.” 도미가 말했다.
“와우. 나도 젊어서는 했는데 이제는 못해. 나도 예전엔 도미 너처럼 백팩 메고 남편이랑 여행했었는데, 이제는 캐리어 만한 게 없더라.”
“그렇구나. 너 정말 멋지다. 혼자서 이렇게 오래 여행하고.”
“응. 난 여행하면서 활력을 얻어. 그나저나 나는 그 호텔 말고 좀 더 싼 다른 호텔로 가야겠다. 재밌게 놀아! 아! 이거 봐봐 ‘Girl on trip’ 이거 우리 이야기야.” 그녀가 캐리어에 달린 네임태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하! 여행 잘해!”
역시. 소녀가 맞았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섰다. 여태까지 머문 숙소 중에 룸 크기도 창문도 가장 컸다. 화장실에는 샤워부스도 있었다. 심지어 전신 거울까지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숙소 안에서 내 전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룸에서 와이파이는 안 잡혔지만, 만족스러운 룸 컨디션이었다.
“와! 여기 심지어 따뜻한 물이 나와. 여긴 천국이야.” 도미가 말했다.
“와! 우리 햇빛에서 옷을 말릴 수가 있어. 우리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된 여정을 위해서 오늘 여기 이 숙소를 잘 누리자.”
“물론이지. 유니. 그리고 아까 택시 타고 오는 길에 길을 좀 살펴봤는데. 여기서 스쿠터 탈 수 있을 거 같아. 차도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
“나는 운전 못하는데, 너 뒤에 탈게.”
“그래 좋아! 우리 해보자.”
호텔 입구에 서있는 경비원에게 스쿠터 대여 방법을 물어봤다. 그는 친구에게 빌릴 수 있다고 하며, 직접 친구에게 가서 스쿠터를 요청하고 왔다. 그의 친구는 스쿠터를 끌고 호텔로 와줬다. 순박하게 생긴 2명의 남자들은 다 타고 스쿠터 돌려줄 때 50루피만 달라고 했다.
우리는 스쿠터를 타고, 항구로 향했다. 저녁도 먹고, 코모도 투어 여행사 위치를 미리 알아 두고 싶었다. 항구 근처에 도착해, 우리는 스쿠터를 닫혀 있는 상점 앞에 세워 두고, 사진도 찍고, 구글맵에 위치를 체크해 두었다.
항구 근처로 가서, 경비원에게 리자에게 받은 영수증을 보여주며, 영수증 상단에 쓰여 있는 이 여행사 아는지 물었다. 경비원은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물었지만 어디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항구를 주름잡게 생긴 사람이 모른다고 하니, 혹시나 유령회사가 아닌가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로컬 사람들이 가격은 속여도, 계약서는 안 속일 것이라 믿으며 계속 찾아봤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영수증에 쓰여 있는 ‘WANUA’를 구글 맵에 검색하니까 바로 나왔다. 구글 맵이 최고다! 만약 출발 당일 아침이었다면, 캐리어까지 끌고, 정신없이 헤맬 뻔했다. 미리 찾아보길 잘했다 싶었다.
구글 맵이 이끈 가게에 도착하니, 한 남자가 돈을 열심히 세면서 장부에 뭐를 적고 있었다. 그 남자는 사장이었고, 장부에서 우리 이름을 찾아주었다. 나는 우리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투어 비용 2000루피까지 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2000루피가 행여나 가방 밖으로 나 몰래 도망갈까 봐 은근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너도 코모도 가니?”
도미가 어떤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응! 나는 내일 출발해.”
“어! 우리도 내일 출발해. 나 네덜란드에서 왔는데.”
“나도야. 나는 줄리아라고 해. 너 남부에서 왔지?”
“응. 맞아. 나는 도미니크 야. 나는 독일하고 벨기에가 맞닿아 있는 곳에 서 살고 있어.”
네덜란드도 지역마다 발음이 조금씩 다른 듯했다.
“그나저나 우리 저녁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같이 먹을래?”
“좋아!”
우리는 항구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노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리에서 그렇게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찾아다녔던 노을. 항구에 마중 나와 있었다. 식당에 도착해 밥을 먹으려고 앉으니, 노을이 창문 너머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노을을 안주 삼아 음식을 나오기 전에 삔땅을 마셨다.
식사를 다하고, 줄리아는 감기 때문에 힘들어서 먼저 숙소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오전 7시 20분까지 여행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안녕했다.
“아까 줄리아 말이야. 나한테 남부 사냐고 물어볼 때 나 솔직히 조금 기분이 언짢았어.”
“왜?”
“약간 웃으면서 말하는데, 자기는 북부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거든. 북부 사람 중에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어.”
“수도인 암스테르담 쪽에 산다고 그러는 거야? 재밌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남부 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거야?”
“내 말투 때문에. 내가 좀 사투리를 쓰거든.”
“그래? 나는 네 말투가 부드럽고 좋은데. 줄리아는 말투가 다소 공격적이고 괄괄했어.”
수도권과 비 수도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네덜란드에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이 밤을 그대로 숙소에서 흘려보내기 아쉬웠고,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바에 들어갔다.
“유니, 너는 어떤 일 하고 싶어?”
“나 필라테스 강사하고 싶어.”
“왜? 너 요가 좋아하는데, 요가가 아니고, 왜 필라테스야?”
“요가를 하면서 몸의 한계를 많이 느껴서, 이렇게 빳빳한 몸으로 강사 하기에 부족할 것 같아. 필라테스는 운동하면서 그렇게 어려움이 없었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거든. 도미 너는 무슨 일 하고 싶어?”
“나는 유치원 하고 싶어.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스키강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을 가르쳤었거든. 너무 뿌듯하고 재밌었어. 나는 사람들과 가까이 소통하면서 하는 일을 좋아해.”
“나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와 대화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고, 내 에너지를 나누는 일을 하고 싶어.”
“나도 그래! 우리 참 비슷한 거 같아.”
우리는 맥주 한 병씩만 깔끔하게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오토바이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 오토바이와 주차해 두었던 그 상점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핸들이 상점을 향하도록 인도에 주차를 해놨었는데. 알고 보니 해가 떠있을 때는 문을 아직 열지 않았던 상점이 어둠이 오니 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어둡게 기억되었던 상점에 불이 켜져서 못 알아봤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오토바이는 인도가 아닌 차도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찾았는데.
"유니, 우리 헬멧 어디 갔지."
"아. 아까 식당에 놓고 왔다."
식당에 들어가면 입구에 보관하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나오면서 안 들고 나왔던 것이다. 한참 걸어서 헬맷을 찾아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왔다.
"유니, 시동이 안 걸려. 기름이 다 떨어졌나 봐."
"뭐? 우리 아까 10분도 안 탔는데?"
다행히도 바로 근처에서 기름을 팔아서, 20루피를 주고 기름통을 채웠다. 그런데 기름을 넣어주던 상인이 우리가 놓친 것을 말해줬다.
"오토바이 지지대를 올려야지 시동이 걸려."
하하. 전혀 몰랐다. 우리는 기름이 빵빵하게 채워진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기름이 없어서 20루피 주고 기름 채웠어."
"그래? 그러면 30루피만 줘."
그는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도 참 순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