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코모도섬 투어 중입니다
아침을 먹자마자 Moyo로 향했다. 폭포를 구경하러 갔다.
“유니, 우리는 이미 롬복에서 폭포를 봤잖아.”
“웅웅! 롬복 폭포가 정말 멋있었지!”
물도 많지 않아서, 폭포라고 하기엔 절벽을 타고 비가 흘러내리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장서서 가던 선원들이 그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아파트 2층 높이 정도 되어 보이는 절벽을 어떠한 장비 없이 맨손과 맨발로 올랐다.
“도대체 저거를 어떻게 오르지? 도미. 나는 무서워서 안 갈래.”
“나도. 나는 여기서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
누구도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남자 승객들도 신발을 벗어 바위에 던져 놓더니, 절벽을 탔다. 모두가 절벽 너머로 사라졌다. 그것을 본 몇몇의 여자들도 절벽을 향해 갔다. 다들 쉽게 오르고 있었다. 무엇을 찾아서 절벽을 타고 오르는지도 모르겠는데, 나도 어느새 샌들을 벗고 있었다. 도미도 따라 벗었다.
“우리 아빠가 이 사실 알면 날 죽일 거야.” 도미가 말했다.
“나도야. 하티 하티! (발리어로 조심해를 의미한다)"
난생처음 야생 클라이밍을 했다. 실내에서 해본 경험은 있다. 그때는 떨어지면 푹신한 매트릭스가 날 받아냈겠지만, 이번엔 돌덩이뿐이었다. 아래를 보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곳만 바라봤다. 앞서 간 사람들의 지난 간 자리를 더듬었다. 돌 틈을 찾아 손 끝과 발가락을 걸고, 절벽에 몸을 딱 붙인 채 조심조심 위로 향했다. 인도네시아의 스파이더 걸이 되었다. 생각보다 오를 만했다. 더 이상 내 신체를 걸만한 틈이 안보이자, 나무뿌리가 내려와 있었다. 양손으로 뿌리를 꽉 잡고 두 발은 절벽을 밀면서 올랐다.
두려움이 절벽 꼭대기로 다다를수록 희미해졌다. 어느새 절벽 꼭대기에 상체를 걸어 두고, 발을 올리고 있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야생 목욕탕이 나타났다. 오를 만했다. 오르지 않았으면, 평생 절때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담하지만 푸르른 자연 그 자체인 계곡이 있었다.
계곡 옆에 다이빙용 나무가 있었다. 삐아가 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나무 맨 위쪽에 가장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줄기에 올라섰다. 하나, 둘, 셋 점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어마어마한 모험가를 봤나. 계속해서 모험가들이 나타났다. 다들 다이빙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나도 도전을 해봤다. 나무 타기는 너무 어려워서, 나무에 매달려있는 줄을 잡고 스윙을 타다가 물속으로 점프했다. 물놀이와 수영을 좋아하긴 하지만 깊이를 예측할 수 없는 물속에 풍덩하고 뛰어드는 행위 자체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두려움 안에 숨어있던 모험심이 불쑥 튀어나온 하루였다.
날것을 한껏 체험했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절벽을 타고 물속에 뛰어 들으라고 했으면 못 탔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도착한 날부터 나를 단단히 감싸고 있던 보호막에 균열이 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계획' 아래서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을 고민하고, 그 안에 맞춰서 살았었다. 계획이 있어야지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계획이 내 발목을 잡았다. 전에는 잡혔는지 안 잡힌 건지 모르고 지냈었을 테고. 3주 치 숙소를 다 예약하고 왔는데,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오늘 지금 당장 내 맘이 끌리고, 향하는 곳이 계획과는 달랐다. 혼자 여행하겠다고 했는데 도미를 만났고, 꾸따에서 서핑을 하겠다고 했는데 몇 시간을 해변에 누워있고, 우붓을 가겠다고 했는데 롬복과 코모도로 향한 것처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걱정과 고민을 내 안에 단단히 묶어두고 있었다. 조금씩 '계획'을 풀어헤치면서, 현재 내 맘이 떨리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홀가분해졌다. 뜻밖의 여정이 쉽지 않은데도, 어떠한 예상이나 기대가 없으니, 실망하거나 좌절할 것도 없었다. 조금 불안하고 흔들려 보여도 그 흐름에 나를 맡겨버렸다.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었다. 요동치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