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 Jun 18. 2019

교토 주택가에 살아있는 죽음들

죽음과 단란했던 

 2018년 9월, 혼자 교토에 갔었다. 내 발길과 눈길이 닿는 대로, 그곳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정처 없이 거닐기도 했다. 여행 둘째 날, 나는 은각사를 둘러보고, 아라시야마로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어쩌다 주택가에 들어섰다. 아담한 집들이 다정하게 붙어있었다. 어느 집도 내가 제일 멋있다고 뽐내지 않고, 그저 묵묵하고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눈도 마음도 편안했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나는 급한 것도 없었고, 여유롭게 둘러보며 걸었다.  


 그때, 목조가옥 사이에 네모 반듯한 돌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사스럽지 않고 크지도 않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돌이었다. 멈칫했다. 설마 묘비인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맞았다. 그곳은 공동묘지였다. 묘비끼리도 친밀하게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묘지 바로 옆에 집이 있었다. 그 집의 현관은 도로와 묘지를 향해 있었다. 한 꼬마 남자아이가 현관 앞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 여자 어른은 묘지 옆 작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나는 동네 안에 묘가 있다는 것이 어색했다. 묘는 명절에나 고속도로와 산을 타고 애써 찾아가야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은 무덤이 일상의 일부였다. 내가 무덤을 보고 수만가지를 생각할 때, 남자아이는 무덤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우리 마을 안에는 묘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 동네에는 놀이터가 있다.' 또는 '집안에 화장실이 있다.' 정도로 너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삶과 죽음의 공간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장면이 생소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트레바리에서 토론을 했었다. 나는 토론 중에 망자와 공존하는 교토의 주택가에 대해 언급했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인은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에 두고 보고 싶어 해서 그렇다.', '지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잦아서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느껴서 그렇다.',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대부분의 마을 안에는 묘지가 있다. 주로 가족묘인데, 화장해서 한 자리에 넣는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상반된 문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 곁에 죽은 사람을 두는 것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실제로 거주지 근처에 납골당이나 공동묘지가 들어선다고 하면, 두렵고 흉물스러운 시설이라 여기며 반대한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을 향한 잣대도 다르지 않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골 마을 주민과 요양원 간의 갈등을 방영했다. 마을 안에 세워진 요양원을 향해 마을 주민들은 격하게 분노를 배설했다. 요양원 쪽으로 스피커를 설치하여 상여 가를 틀고, 요양원 환자가 건물 밖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오물을 던지고 왜 남의 땅에 들어오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혐오를 표출하는 이유는 아프고, 나이 먹은 사람 때문에 구급차가 오가면 시끄럽기 때문도 있었다. 아이러니했던 것은 인터뷰한 주민의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허리는 굽어 있었다. 그가 요양원에 온 사람인지, 마을 사람인지 겉만 보고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나는 저 요양원에 들어갈 일 없겠지, 내가 가루가 되어 저 납골당에 담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고, 누구에게나 삶에 끝이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기 힘들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혐오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누구나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혐오 시설'이 내 가족과 나를 위한 곳이라고 여긴다면 어떨까. 교토의 그 동네처럼 집과 묘비가 단란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교토에서 직접 찍은 묘


매거진의 이전글 뭐? 브런치 작가가 됐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