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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un 20. 2019

무당에게 들은 5만 원 치 미래 (전편)

츄리닝 입은 무당이 말하는 최윤


 나는 무교다. 신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피델미아라는 세례 명까지 받았었지만, 예수님의 실존부터가 의심이 되어 도저히 성당을 다닐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믿는다고 말하며 다녔다. 그런데 작년 11월, 내가 직접 무당을 찾아갔다.


 나는 힘들었다. 내가 아빠 회사에서 2년째 일을 하고 있었을 때, 아빠는 회사를 팔았다. 우리는 회사를 떠나보낼 준비를 1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아빠는 몸이 안 좋아서 회사에 점점 더 나올 수 없고, 나는 이 회사를 맡아서 평생 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 손을 떠나니 헛헛했다. 게다가 앞으로 인수인계가 끝나면 회사에서 모든 짐을 다 싸서 나와야 한다 생각하니 불안해졌다. 회사는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든든한 공간이었다. 막막해졌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다른 직무를 선택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닌지. 이 회사를 떠나면 나는 어떻게 될지. 고민은 전부터 계속해왔지만, 확실하게 이거다! 하고 결정 내리긴 힘들었다.


 답을 찾고 싶었다. 30대를 향해가는 지금, 새로운 도전 중에 실패를 겪고 싶진 않았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지 알려줄 안내자가 필요했다. 누군가 미래를 내다보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말해주길 바랐다.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미를 만났다. "나 신점 봤는데, 무당이 엄청나게 용해. 내 동생이랑 같이 가지도 않았는데, 동생이 올해 이직 많이 한 것도 알고, 내 직업도 맞췄어. 나한테 2019년 2월부터 일 많이 들어올 거라고 하더라." 미가 말했다.


 나는 솔깃했다. 뿌옇게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 내 앞길을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무당이 내 손을 끌고 가줄 것만 같았다. 무당 핸드폰 번호를 받아서 바로 연락했다.


 일주일 후, 나는 퇴근하자마자, 무당에게 달려갔다. 난생처음 보는 신점이었지만, 미의 경험이 곧 보증서였기에 의심하지 않고 갔다. 5만 원으로 평생 아니 단 1년 만이라도 내다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갔다.


 무당이 문자로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니, 빌라가 나왔다. 건물 4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생각보다 세련된 건물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거처럼 낡고 허름한 건물, 약간 누리끼리한 한옥 느낌이 나는 공간에서 신을 모시고, 굿을 할 줄 알았다. 그래도 나는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기대감도 높아졌다. 402호 벨을 누르니,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남자가 나타났다. 무당이었다.


 무당이 맞나 싶었다. 일본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히키코모리처럼 보였다. 3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는 긴 머리를 아래로 묶고 있었고, 검은 수염이 얼굴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었다. 알록달록 색동 한복을 입고 있을 줄 알았는데, 회색 후드티에 무릎이 유난히 튀어나온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형광등이 새하얗게 켜진 방 안에 들어가니, 바로 앞쪽 벽면에는 신을 모시는 공간이 있었고, 왼쪽 벽면에는 신점 관련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이 그 위에는 텔레비전이 올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조이스틱이 나뒹굴고 있었다. 내가 방안에 들어서자, 무당은 오른쪽 벽을 등지고 앉았다.


  무당은 신을 모시며, 사람의 길흉을 점칠 수 있으니 일반인과 다른 비범한 능력 있다. 그의 말은 누군가에게는 불안함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심을 주기도 한다. 굿에 전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무당이 한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의 기우제를 주관했을 만큼의 위상을 가졌기도 했었으니, 어찌 보면 국민과 나라의 먹고사니즘을 결정하는 권력 자였기도 했다.

 

 그러나 밀레니엄 시대를 사는 나는 그의 '미리 보기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서 갔다. 트레이너에게 돈을 내고 운동법을 배우는 것처럼 무당으로부터 ‘최윤의 미래사’를 듣고 싶었다. 종교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로서 말이다.


  점만 깔끔하게 보고 싶었다. 딱 5만 원에 상응하는 최윤이라는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만 들으면 됐다. 무당도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한복보다 편한 현대식 옷을 입을 순 있다. 그러나 신부도 중도 운동복을 입고 일하진 않는다. 심지어 상업적인 종교인인 무당이 손님을 맞이 하는데 준비도 안 하나 싶었다. 무당도 어떻게 보면, 신점 보는 능력을 파는 서비스인이다. 영업을 잘해야 고객이 확보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일단 들어왔으니, 믿고 해 보자. 나를 좋게 봐야 점을 잘 봐주겠지. 외모가 점 잘 보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어. 나를 다독이며, 무당 앞에 앉았다.

 


출처 : 문화콘텐츠 닷컴



 무당 앞에 놓인 작은 상에는 5만 원짜리 지폐가 10장 정도 두서없이 겹쳐 있었고, 그 위에는 쌀이 담긴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눈을 살짝 감고 눈알을 슬슬 돌리며, 쌀알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나에게 이름 그리고 사는 곳과 일하는 지역을 물었다.


"회사 때문에 고민이야?"

무당이 또 물었다.

"네."

"회사 이직하려고?"

"네, 회사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부분 직장인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마음속에 적어두는 말 아닌가. 이직, 퇴사. 그런데 무당이 왜 나한테 질문을 왜 하지? 내가 대답하기 전에 나를 이미 다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 미가 "내가 어떤 상황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당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어. 내가 질문하나 안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당이 나에게 계속 물으니 의아했다.  


"너는 경리나 해. "

"영업은요? 저 사회생활 3년 동안 계속 영업 관련 일도 했는데."

"이직한다며, 이직할 직장에서 뭘 해야 할지 말해주는 거잖아."

"아, 네…"


  나는 경리 업무도 했었지만, 거래처 상대하는 일이 더 많았다. 나는 영업도 나름 잘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사무실에만 앉아서 경리 업무만 하는 것은 지루하다. 경리는 끌리지 않았다.


"그럼 해외 영업은요?"

"경리를 해야 한다고."

"아네... 그럼 이직 시기는요?"

"2월 이후로 하고, 강남 쪽으로 가야 해."  


 점 보러 갔을 때는 한 해 마무리를 준비하는 11월이었는데, 어느 회사에서 신입을 뽑으려 할까. 신규 채용은 보통 냉기가 빠지고 온기가 돌 때쯤 시작하지 않나. 그리고 강남에 회사가 많으니 강남으로 가라는 거 같았다. 5천 원 치도 못 들었다. 뭐라도 물어봐야 했다.   


"저 대학원이나 운동 관련 자격증 따려고 하는데 어때요?"

"너는 뒷심이 딸려서 안 돼, 새로운 거 배워봤자 시간 낭비 돈 낭비야."


 글쎄. 나는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웬만해서 끝을 보고 싶어 한다. 남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초심부터 뒷심까지 굴곡이 크지 않다.  


"저 건강은 어때요?"

"골반이 삐뚤어져 있어."

"네? 골반이요?"

"응,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어."


 나는 운동을 사랑한다. 헬스는 5년, 필라테스는 1년 정도 했다. 몸의 정렬이 꽤 바르다. 그리고 내가 운동 관련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을까 싶었다.


 답변이 전부 다! 맘에 안 들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성 없이 말하는 거 같았다. 여전히 5천 원 아니 5백 원도 아까웠다. 나는 이어서 부모님에 관한 질문을 했다.  


"엄마가 아파."

"네? 엄마요? 저희 아버지는요?"

"엄마만 신경 쓰면 돼. 엄마가 신장이 안 좋아."

"지금 괜찮으신 거 같은데.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요? 2년 전에 뇌종양 수술도 하셨어요."

"아버지는 괜찮아질 거야. 엄마만 건강관리 잘하면 돼."

"그런데 저희 아버지 얼마 전에 또 병원에 들어가셨는데요?"


 전에 친구 희의 직장동료가 점을 봤는데, 무당이 "지금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진짜 생물학적인 엄마가 아니라고 했단다. 30년 만에 탄생의 비밀을 무당 덕분에 알았던 것이다.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면서 이 사람이 이런 거까지 어떻게 알았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빠 아픈 거는 무당이 먼저 이야기 꺼내 주길 바랐다. 내가 지금 가장 힘들게 마음에 품고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가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내가 과거 말해? 지금 미래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의 커진 목소리에 정신이 확 차려졌다. 그에게는 내가 기대한 신기가 없는 게 분명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니 펄쩍 뛰다가 자기가 놓아둔 칼에 발이 찔려 소리 지르는 거 같았다. 아니다. 내 친구는 잘 맞췄다고 했는데. 내가 기가 너무 강해서 신이 다가올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신을 안 믿는 걸 신도 알았을 것이다. 기분이 상한 신은 당연히 나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최윤 씨" 그가 나를 불렀다. 제발 아무거나 한 방만 날려주길 바랐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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