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 Feb 08. 2020

풍요로운 나를 찾다


자격증 수업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가원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윤이 너는 텐션이 상당히 높아. 그런데 그게 어색하게 느껴져. 원래 너의 텐션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네가 억지로 올린 거 같아. 그렇게 밖에서 생활하고 집에 가면 많이 지치지 않니? 네가 그렇게 밝고 발랄한 모습을 보이는 게 너의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숨기려고 하는 거 같아."

"음. 그런가요? 저는 제가 원래 이런 줄 알았는데."

"잘 생각해봐. 너의 텐션을 조금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네가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하지 말아 봐.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멈춰봐. 텐션은 항상 일정하게 가지고 가는 게 좋아."


같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 물었다. "윤 님, 대표님 말씀 듣고 기분 나쁘진 않으세요?"

내가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요. 상처 하나 안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추구했던 보통의 내 모습



 어디 가서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대표님 말씀을 듣고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밝은 척, 긍정적인 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사람들에게 보통 '엄청 밝고 에너지가 넘치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지내서 그게 사람들과 있을 때 내 보통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이게 내 보통의 모습이 아니라면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이지. 내가 정말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 거지. 내가 가진 상처와 아픔은 무엇이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읽는데 내 글은 보통의 나보다 차분했고,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뿜고 있지 않았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해보니 나는 30년 가까이 사회가, 학교가, 부모님이 바라는 것에 더 맞춰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추구했다. 돈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고 해서 그 길을 쫓고 있었다. 돈을 벌면 명품 가방을 사고 싶었고, 예쁜 옷으로 나를 치장하고, 여행을 가고, 맛집을 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게 좋아보니까.


  그런데 회사에 갇혀서 돈을 버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돈을 버느라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쇼핑하는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일을 하면서 지치고 허한 마음을 물질로 메우고 있었다. 쉬는 날에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신선한 자극을 찾아 떠나자고 했다. 지침과 지침의 연속이었다.

 

 성격도 그러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잦은 전학으로 친구들을 쉽게 사귀지 못했다. 그게 내 안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성장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고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격을 스스로 설정 놓고 그거에 맞추며 지냈던 것이다. 실제로 밖에서 놀고 들어오면 집에서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밖으로 향해 있는 눈을 통해 남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시선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나를 다스리고 돌아보지 못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자연스러움이 흘러나오지 못한 채 고여있었다.



요가 매트 위에 나



  요가를 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글을 쓰면서 나를 만나고 가다듬는 것처럼 요가도 그러했다. 매트 위에서 온전히 나에게 모든 집중을 쏟아냈다. 몸의 감각과 자극을 살피고 확장해나가면서 나를 일깨워 나갔다. 또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절제하면서 불필요한 생각을 제거해 나갔다.


 쓸모없는 물건도 버렸다. 옷장과 신발장에 처박혀 몇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물건들을 다 꺼내 한데 모았다. 엄마와 동생도 함께. 30만 원짜리 레이스 원피스, 50만 원짜리 알파카 코트, 10만 원짜리 청바지, 매일 다른 스타일로 코디하기 위해 샀던 2만 원짜리 티셔츠, 10센티 하이힐 등등. 내가 착각했던 욕망들이 방 한가득 채웠다. 그동안 나를 포장하고 감추기 위한 소품들을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확 와 닿았다. 힘겹게 끌어안고 살았구나 싶었다.


 헌 옷 수거 센터가 우리 집에 방문을 했다. 무게를 재니 90kg. 돈으로 환산하니 38000원. 결국 이렇게 버려질 것들이었는데. 90kg짜리 쓰레기를 버겁게 짊어지고, 낑낑대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건 초기 사진. 더 많았어요. 신발은 4 포대 나왔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소비가 더 줄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고 싶은 것도 없는데 사기 위해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고, 백화점에 가서 둘러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차피 쓰레기가 될 것. 쓰레기를 사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 졌다.


 더 이상 휴일이나 여행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일상이 나를 지치거나 답답하게 만들지 않으니, 신선한 공기를 마실 생각을 하질 않게 된다.


 맛집도 약속 전 아니면 굳이 찾질 않는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고, 남이 먹으니까 나도 먹어봐야 하나 하고 먹는 것이었고, 남에게 나 좋은 거 먹는 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먹는 것도 컸었다.


 최근에  '너 예전보다 차분하고 편해 보여.'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실제로도 편안해졌다. 항상 방방 떠있던 나였는데,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렸던 나였는데. 에너지를 일정하게 자연스럽게 내보내니 편안해진 것이다. 무분별하게 남을 향해 밖으로 방출했던 에너지가 내 안에 머무르니 덜 지친다. 남을 따라 선택하고 고민했던 시간이 줄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내가 꽉 채워진 기분이랄까.


 돈, 물질, 타인 그 무엇도 나를 풍요롭게 만들지 않았다. 내가 나를 채워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