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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Mar 07. 2020

요가는 하고 싶지만 아프고 싶어

요가 자격증 등록 후, 이주 동안 아팠다. 아니 아프고 싶었다.

"윤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대표님. 여독 때문에 이주 동안 집에서 시름시름 앓아누워 있었어요."

"그래?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고?"

"아... 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대표님 말씀을 듣고 지난 이주를 되돌아봤다. 평일 내내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소파와 침대에 누워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 쐬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티브이를 봤다.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었지만 배달의 민족에서 마라탕과 피자와 치킨을 시켜먹었다. 신기하게도 금요일 밤만 되면 몸이 다 나아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러 놀러 나갔다. 그렇게 밤새 놀고 술'병'이 생겨서, 평일에는 다시 아파 버렸다.







 발리에서 요가 수련을 마음껏 했다. 아침 7시에 눈이 저절로 떠져서 요가를 했고 하루에 4시간 반을 하기도 했다. 수련하고 나서는 해변이나 수영장 썬배드에 누워 있거나 수영을 했다. 유쾌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맥주나 달달 씁쓸한 와인을 마시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다. 그렇게 놀고 다음날 아침에도 눈이 번쩍 뜨여서 또 요가하러 갔다. 발리에서 함께 여행한 도미니크랑 하던 말이 "나 여행 와서 하루라도 웃지 않은 날이 없어"였다. 오히려 3년간의 회사 생활로 동안 쌓인 두통과 갑갑증이 약도 필요 없이 다 치유되었다. 여행 동안에 '독'을 품을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뭐든 즐겁게 해낼 줄 알았다. 발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알차게 보냈던 것처럼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요가 강사가 하고 싶으니까.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하루 종일 요가 수련만 하고 공부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요가원을 등록하고 이주 동안 가질 않았다. 판판한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포근한 침대위에서 가만히 누워있고만 싶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과 발리는 달랐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생기 넘치고 푸릇푸릇하던 파티는 끝나 있었다. 한국은 내가 발리 가기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는 아프고 집에는 아무도 없어 적적하고 친구들은 회사 때려치우겠다고 하고 청년 취업률은 저조하다고 했다. 발리는 햇빛은 쨍쨍해도 날씨는 맑고 건조해서 항상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 줬는데, 한국은 습하고 비도 내려서 기분을 찝찝하고 가라앉게 만들었다. 즐거움으로 부풀어 올랐던 나의 하루하루가 한국에 오자마자 쪼그라들었다. 다시 회색의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 나가야 했다.


 두려웠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그토록 원해서 등록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상담받던 날, 내 몸 상태에 충격을 받았다. 무릎이 떠서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고 5분 남짓 앉아 있었는데 다리가 저렸다. 다운 독을 하는데 무릎을 구부리고 발뒤꿈치까지 들고 있어야 등이 펴질까 말까 했다. 팔이 후들후들 거려서 호흡조차 버거웠다. 요가를 수련한 지 8개월이 다 돼가는데 기본적인 정렬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도 속상했다.  


 눈을 흘깃거리며 다른 회원들을 봤다. 그들은 명상할 때 무릎이 바닥에 닿아서 편안해 보였다. 다운 독 자세도 손목부터 엉덩이까지 일자, 다시 엉덩이에서 발뒤꿈치까지 일자가 되어 바닥과 함께 예쁜 삼각형을 만들고 있었다.


 이주 동안 집에 누워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뒤적거렸다. 유연한 몸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화려한 아사나를 뽐내는 강사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불가능한 자세를 보며 좌절감을 느꼈다. 내 몸이 일반적인 요가강사에 비해서 아니 일반 수련자에 비해서 뻣뻣한데. 앉아 있는 것도 못하고 다운 독도 못하는데. 요가 강사 포화라는데. 자격증을 딴다 한들 뻣뻣한 초보 강사가 설 곳이 있을지 걱정했다.


 발리에서는 강사가 될 자신감을 얻었었다. 자신보다 한국인들이 더 유연하다고 말하는 강사도 있었다. 자기는 다리 찢기 못한다고 말하는 강사도 있었다. 몸을 잘 쓰는 강사가 최고의 강사는 아님을 느꼈다. 그들만의 고유한 색을 뿜는 강사들을 보면서 나도 나만의 색으로 수업해야지 다짐했었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한국에서는 다시 작아졌다. 내가 자리 잡을 곳은 발리가 아닌 한국이니까.

 

 그동안 나에게 요가는 '놀이'였다. 놀이는 행동의 결과보다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둔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와서 즐길 수 있는 행위인 것이다. 요가 자격증을 등록하고 나니 요가는 '일'로 다가왔다. '일'이 되니 온전히 즐거움만 추구하며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몸의 변화와 움직임만 바라보며, 특정 자세가 되든 안되든 수련 자체로 즐거움을 얻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었다. 그 즐거움 때문에 제대로 요가를 배우고 싶었고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요가 강사가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5개월 후부터는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강사로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한 유명한 요가 강사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다른 말들은 다 흘려 지나갔는데, "요가 강사 한지 8년 차"라는 말만 귀에 쏙 꽂혔다.


  요가 수련한 지 1년도 안 됐고, 요가 자격증 공부도 시작 안 한 내가 경력 8년 차 강사와 비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멀뚱히 바라보고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한 번에 그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썩은 동아줄이라도 내려오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수많은 시간과 노력 덕분에 얻은 결과물일 텐데. 눈에 보이는 사진만 보고 그의 지난 과정은 보려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내며 병을 앓고 있었다. 그들에게 질투를 느꼈던 게 나와 그에게 미안해졌다.


  남과 비교하며 집에서 웅크리고 걱정할 시간에 나를 갈고닦아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부정적인 습관으로 경직되고 긴장된 내 몸을 받아들였다.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스스로 존중하기로 했다. 한계를 지워나갔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수련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내 몸과 마음의 변화만 지켜보기로 했다. 2020년에 해야 할 일은 2020년이 다가오기 직전에 생각하기로 했다.


 키노 맥그레거의 <아쉬탕가 요가의 힘>에서 나온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몸을 탄탄하게 만들거나 고난도의 신체 동작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 요가의 목적이 아니다. 실제로 요가는 마음과 감정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뿐 아니라, 몸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도 놓아 버리는 법을 가르친다. 몸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신체적인 모습에 의해 묶여 있지 않음을 배우게 된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어" 또는 "이 자세는 너무 어려워"와 같은 정신적, 감정적 한계들을 직면하고 초월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한계 없는 잠재력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요가는 마음과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그것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내면의 평화에 헌신하는 삶이다.


주 5일 요가원 출석을 결심했다. 5개월 동안 매일 저녁 남들이 퇴근할 시간에 나는 요가원으로 향했다.

 

 



원더러스트 페스티벌, 공원에서 요가를!



그냥 요가를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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