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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un 29. 2020

세상이 우리의 마당이다

노을 공원에서 만난 일식 그리고 자유

“우리 점심 먹고 노을 공원 갈래요?” 유녕이 말했다.


유녕의 제안으로 릴리, 권쏘 그리고 나 이렇게 여자 4명은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삼암동의 노을공원으로 향했다. 주차하고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맹꽁이 전기차를 타고 공원으로 올라갔다.


“와. 여기 뭐야? 우리나라 아닌 거 같아.” 공원 위쪽에 도착하니, 푸르른 잔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구불구불 잔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햇볕이 뜨거웠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온몸을 감싸주길 바랐다. 유녕도 여기서 좀만 더 걸으면 멋있는 정자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더 걸었다.






“애들아 지금 달과 해가 조금씩 겹쳐지고 있어. 오늘 부분 일식이라는데 신기하다. 너네도 선글라스 끼고 살짝 봐봐.” 권쏘가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잘 보이지 않았다.


걷다 보니 천체 망원경이 한데 모여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일식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며 내게 보라고 했다.  


빨간색 태양에 검은색 동그라미가 겹쳐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망원경을 종류별로 왔다 갔다 하며 일식의 한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일식이 ‘변화’를 의미한다는데. 내게 어떤 변화가 다가올까 괜히 기대하게 되었다.







잔디를 밟고 밟아서, 유녕이 말한 정자에 도착했다. 뒤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그 정자만 바라봤을 때 깊은 산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으스스한 곳도 아니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즈넉하고 기묘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나란히 정자에 드러누웠다.


 나는 누워서 눈을 가만히 감았다. 바람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새는 종알거렸고, 친구들의 숨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려왔다. 바람이 내 몸을 감싸 안았고, 그의 촉감을 느꼈다. 포근했다. 숨을 쉬는 나를 바라보았다. 혀가 입천장에 딱 달라붙어 있길래 힘을 뺐다. 앙다물고 있는 입술도 살짝 벌렸다. 입이 살짝 저렸다. 생각하는 눈동자가 위쪽을 바라보고 있길래, 살짝 아래로 내렸다. 눈동자가 내려오니 생각이 멈췄다. 숨을 다시 바라봤다. 발에도 힘을 푹 풀어보니, 새끼발가락이 바닥과 더 가까워졌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무엇인가 통통통통 빠르게 퉁겨져 오르며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통통통통이라는 속도보다 더 가볍고 빨랐다. 그저 느낄 수밖에 없는 것. 무언가가 몸 안에서 흘렀다. 그 흐름이 내 몸 구석구석 휘젓고 다니도록 두었다. 그리고 눈 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느새 밖으로 흘러나왔다. 닦지 않았다. 내 피부와 뼈의 굴곡을 따라 흐르게 했다.


 눈을 떴다. 다리를 바라보던 햇살이 더 가까이 다가와 내 왼뺨을 만지고 있었다. 권쏘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유녕과 릴리는 맨발로 잔디밭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신발을 신지 않고, 잔디밭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는 인도풍 음악을 틀어 놓고, 넓은 잔디밭에서 몸이 움직여지는 대로 움직였다. 누군가 저 멀리서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을 향한 시선을 금세 거두고, 우리의 웃음 안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춤을 춰야만 했다. 몸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이 순간에 내맡겼다.


 “윤아, 우리 요가도 해보자!”릴리가 말했다. 매트가 아닌 잔디 위에서 요가는 처음이었다. 내가 요가 수련을 이끌었다. 마시는 숨에 양손을 천장이 아닌 하늘로 올리고, 내쉬는 숨에 양손 매트가 아닌 잔디를 집으라고 했다. 나는 즉흥적으로 동작과 동작의 연결을 만들어 냈고, 친구들은 즉시 동작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숨과 숨을 맞춰 나갔다.


수련 마치고, 유녕과 어씽(Earthing)을 했다. 어씽은 신발, 양말을 다 벗고 맨발로 땅을 거닐며, 자연과의 연결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 몸에도 자기장이 흘러요. 그 자기장이 양과 음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해요. 평소 우리 몸은 양전하로 더 많이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맨발로 땅을 밟으면, 땅의 음전하가 우리 몸으로 들어와서 양과 음이 균형이 맞춰져요.”


신발과 양말 속에서 잠들어 있던 발의 감각을 더욱 깨웠다. 나는 발을 통해 흙과 이름 모를 풀과 잔디 그리고 세 잎 클로버와 마주했다.


그렇게 노을 공원의 원주민이 되어 놀다가 하늘을 다시 바라봤다. 해가 어느새 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우리도 다시 전기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토록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무와 우리가 함께 둥글게 만들어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냈기에 든든했다. 그 안에서 나는 당당하게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했다. 믿음과 사랑 안에서 나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아름다웠다. 이 울타리를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다. 누구든 자유로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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