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8월 이야기
2019년 2월 처음 요가를 만났다. 아사나를 하면서 몸을 조각조각 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내 몸에 이런 부위가 있고, 이런 자극이 있다는 것을 매 수련 때마다 발견했다. 끊임없이 새롭게 드러나는 내 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처음에 잘 안되던 아사나가 되어가는 변화를 지켜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이 아사나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하고 있었다. 내가 그어놓은 한계를 지워나가는 과정이었다. 한계를 없으면 끝이 없으니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동안 요가라는 광활한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가 강사가 되고 싶었다. 어차피 평생 할 텐데 요가를 제대로 배우고, 아는 만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요가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 편안함과 불편함 모두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뻣뻣하다. 요가한다고 하면 항상 듣는 소리가 '너 다리 찢을 수 있어?'였다. 나는 하지 못 한다. 그래서 망설였다. 요가강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점 가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부천에서 다니던 요가원 강사님께 여쭤보았다. 나 같은 사람도 요가강사 할 수 있냐고. 강사님은 "회원님이 오히려 좋은 강사가 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잘 되던 사람은 회원들이 안 되는 것을 공감하기 어려울 거예요. 회원님이 겪어온 과정을 회원님들에게 잘 전달하면서 돼요. 그리고 회원님 이렇게 빠른 시간에 많이 발전하셨잖아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지 않으세요? 저는 머리 서기 하는데 1년 걸렸는데, 회원님은 3개월 만에 하셨잖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불안했다. 나는 지독하게 뻣뻣했다.
어쨌거나 나는 퇴사해야 했다. 퇴사 후, 무슨 일을 할지는 발리 여행을 다녀와서 결정하기로 했다. 발리에서도 하루에 4시간 반씩 요가하면서 요가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워나갔다.
발리 여행 후, 결정을 못한 채 계속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워낙 몸 쓰는 것을 좋아해서 몸 쓰는 일을 하기로 다짐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연함과 상관없는 헬스 트레이너를 할까. 필라테스 강사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배울까. 한 가지를 딱 정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바로 용산에 있는 한 요가원을 찾아갔다. 발리도 같은 8월 여름이었는데, 이렇게 땀이 흐르지 않았는데. 몸이 이상한 건 알았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루빨리 준비하고 싶었다.
원래 부천에서 수련하던 요가원에서 자격증을 수료하고 싶었지만, 자격증 과정 시작일이 2020년 2월이라서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대표님하고 요가 자격증 상담받으러 왔어요.”
“어. 왔니. 윤이구나. 잘 왔어. 기록 보니까, 지난봄에 워크숍 신청했다가 취소했던데.”
“그때도 해보고 싶었는데, 회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해서, 할 수가 없더라고요. 퇴사하고 이렇게 왔어요.”
“윤이는 왜 요가 강사를 하고 싶어?”
“몸을 쓰고, 사람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요가는 올해 처음 시작하면서 평생 할 운동처럼 보였어요. 몸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저 너무 뻣뻣해서 고민이 돼요. 필라테스나 헬스는 근력 위주 운동이라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 우선 자세부터 한번 봐 볼까? 여기 바닥에 엉덩이 대고, 발뒤꿈치 몸 가운데에 나란히 앞뒤로 두고 앉아봐.”
나는 앉을 수가 없었다. 척추가 경추부터 요추까지 ‘)’ 둥글게 말리고, 무릎은 위에서 떠 있었다. 앉았을 때 바른 자세는 요추는 ‘(‘ 안으로 들어가고, 흉추는 ‘)’ 뒤로 살짝 나오고, 경추는 ‘(‘ 안으로 살짝 들어간 형태로 되어야 한다. 무릎은 바닥과 가까이 내려가 있어야 한다.
“흠. 블록을 깔고 앉아 볼까?”
보통 사람들은 블록 1개를 엉덩이에 깔면, 바른 자세가 나온다. 나는 3개를 깔고 앉아도 무릎이 내려가질 않았다. 나름 요가 6개월 정도 했는데, 발리에서 요가를 하루에 4시간 반씩 하기도 했었는데. 몸이 이 모양이 이 꼴이라니. 부끄러웠다.
“선생님. 저 다리를 옆으로 벌리면 90도도 안 돼요. 이런 제가 요가 강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요가는 아사나가 전부가 아니야. 요가 아사나는 몸을 통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인 거지. 그리고 다들 본래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 바르게 몸을 사용하지 않고 긴장 때문에 몸이 굳어버린 거지. 계속 몸 쓰다 보면 좋아질 거야."
솔직히 되든 안 되든 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몸이 안 돼도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요가가 내 삶이자 업이길 바랬다. 대표님에게 요가를 여기서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등록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앓아누웠다. 긴 발리 여행과 고민과 고민 속에 지쳐있었나 보다. 그렇게 2주 동안 선풍기 바람 앞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휴식 아닌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