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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un 19. 2019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강아지

반려견, 사랑스러운 그 모습의 이면, 그리고 진짜 사랑


 친구 희가 단체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토이 푸들과 미니 비숑 프리제 사진이었다. 2마리를 400만 원에 애견 샵에서 분양받았다고 한다. 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듣고 놀랐다. 나는 희에게 다른 샵이나 유기견 센터를 돌아보지 그랬냐고 말하니, 몇 군데를 방문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강아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희는 토이 푸들인 치즈와 미니 비숑 프리제인 우유가 마음에 훌쩍 안기는 바람에 집에 데리고 왔다. 성과급이 잠시 스쳐간 자리에,  (멋진 여자) 희 곁에 오랫동안 함께할 가족이 들어왔다.



치즈와 우유, 털색에 맞춰서 이름을 찰떡같이 잘 지어줬다. 출처: 희



 희는 학교와 직장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막내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동생마저 군대를 가버렸다. 희의 집에는 공간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어느 날, 희의 고등학교 동창이 여행을 가야 했고, 그의 반려견이 잠시 지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희가 5일 동안 돌봐 주었다. 희가 강아지 분양을 고민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허전함을 강아지가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희는 애견 샵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희는 8시 30분 출근해서, (제대로라면) 5시 30분에 퇴근하는 직장인이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키우려고 했는데, 자신이 집에 없는 동안 강아지 혼자 심심할까 봐 두 마리를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홀로 집에 남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할지 누구보다 희가 잘 알기에, 그 결정이 어렵지 않았을 테다.


 희의 집에 막 온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아 두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았다. 엄마의 보살핌과 관심이 계속 필요한 시기였다. 희는 분양받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야 했다. 한 달 전에 한 약속이었다. 희는 어머니에게 자기 집에 와서 강아지 두 마리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희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치즈가 갑자기 구토와 설사, 초록 응아를 하고, 계속 주저앉는다는 것이었다. 희 어머니는 강아지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파보 장염'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희는 놀라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차편을 앞당겨 바꿔, 강아지에게 달려갔다.  

  





  애견 샵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강아지는 '강아지 공장'에서 탄생한다. 그 공장에서 있는 어미 견은 임신 기계이다. 끊임없이 강아지를 잉태해야 한다.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계속된 임신 출산으로 어미 견은 몸이 허약하다. 그런 어미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면역력과 체력도 좋지 못하다.


 강아지 분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가 더 예뻐 보이기에 어미젖을 떼자마자 애견 샵에 오게 된다. 생후 3개월이 지나면 덜 예뻐 보이기 때문에, '판매 가치'가 떨어져서 애견 샵에서는 '재고 부담'을 떠안게 된다.


 파보 장염은 면역력이 약한 경우에 발병한다.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잠복기가 있고, 발병 후, 1~2일 안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도 강하다고 한다. 치료비도 수백만 원에 이를 정도로 강아지와 주인 모두 감당하기 힘든 병이다.



출처: pixabay






 희는 치즈 상태를 애견 샵에 알렸다. 샵에서는 샵과 연계된 병원에서 치료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희는 전적으로 애견 샵을 믿기는 어렵지만, 일반 동물병원에서 치료하게 되면 몇백만 원의 치료비가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견 샵에 맡겨야만 했다.


 희는 자책 했다. 엄마 젖을 한창 먹어야 할 강아지를 예쁘다고 데리고 오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강아지 사업을 하는 거라며, 자신은 못된 계모라고 하면서 말이다. 친구 쏘은 애초에 애견 샵에서 그렇게 어린아이를 분양하는 것과 이런 일이 빈번할 텐데 돈 때문에 파는 것이 잘못이라며 위로해줬다.  


 다행히도 치즈는 건강을 회복했다. 행여나 아직 파보 바이러스 항체가 없는 우유에게 옮길까 봐, 치즈는 희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 우유의 모든 예방접종이 끝난 후에 다시 치즈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유가 아프기 시작했다. 눈에 눈곱이 끼고, 귀에 이물질이 차는 것이다. 수의사가 우유의 면역력이 약해서 병에 걸린 것이라고 했다. 우유는 병이 다 날 때까지, 예방접종을 할 수 없다. 치즈가 희 집에 다시 돌아올 날도 멀어질 뿐이었다.






 반려견으로 인해 희의 일상이 바뀌었다. 얼마 전, 나는 강아지도 볼 겸 희네 집에 놀러 갔다. 오후 5시쯤, 우리는 저녁 먹으러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우리에게는 3시간밖에 없어. 8시 30분까지는 집에 들어와야 해. 우유에게 저녁 하고, 약 챙겨줘야 하거든."

 

 그녀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핸드폰 CCTV 앱을 통해, 우유의 모습을 바라봤다. 낯설었다. 우리는 원래 한 번 밖에서 놀면 집은 잊은 채, 2차, 3차까지 노는 게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희의 모습은 마치 육아 때문에 집을 오랫동안 비울 수 없는 엄마 같았다. 몸은 밖에 있지만,  마음은 집에 놓고 온. 엄마가 맞긴 하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우유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일찍 들어오길 잘했다 싶었다. 희는 집에 오자마자, 우유의 밥과 물을 챙겨 주고, 눈에 누렇게 낀 눈곱을 떼주고,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귀지를 파주고, 소변과 대변을 치웠다. 인형과 공을 던지며 놀아주고, 마사지해 주고, 강아지 전용 우유도 먹여줬다. 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 희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희는 8시쯤 일어났다. 우유의 아침을 챙겨줘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희는 주말이면 해 뜰 때까지 자는 것은 기본이요,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먹을 때만 잠깐 일어나고 대부분 시간을 뒹굴뒹굴하곤 했다. 우유 덕분에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희가 갑자기 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6개월 전, 그녀의 둘째 동생이 차를 바꾸면서, 차를 준다고 했을 때는 거절했던 그녀였다. 자기는 조수석에만 타는 게 좋고, 평일에 출퇴근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차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랬던 희가 우유와 함께 놀러 다니고 싶어서 차가 필요하단다. 강아지를 캐리어에 넣어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알아보고 있었다.


 희는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귀찮고 할 줄 모른다고 안 했었다. 나에게 사진 올리는 법과 태그 거는 법을 묻더니, 강아지 사진으로 피드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희 혼자서만 보기는 아까웠겠지.


 강아지 덕분에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희의 모습도 정말 좋아 보인다. 치즈와 우유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희의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나랑 놀았던 우유, 애교쟁이다. 쪼만한 녀석이 박력도 넘친다.




희의 허락을 받고 올린 글. 희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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