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Oct 28. 2019

마중물은 이미 흘러 넘쳤다.

지금은 낯선, 사실은 나도 거의 본 적이 없는 ‘펌프’라는 것이 있다. 수도가 보편화되기 전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용도로 쓰였는데, 마당 한쪽에서 지렛대처럼 생긴 손잡이를 위 아래로 힘껏 움직이는 ‘펌프질’을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지면 저 아래부터 끌어올려진 물줄기가 꼬로록 꿀꿀 거리다가 이내 물이 콸콸 쏟아진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마중물’이다.  펌프의 물은 한정없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쓴 만큼 쏟아진 다음에 멈춰버리므로, 물이 필요하면 또 ‘펌프질’을 해야 한다. 그 때 지하의 물을 유인해 끌어내는 한 바가지의 물, 땅속 물을 마중 나가는 ‘마중물’이 있어야 한다. 빈 펌프에 아무리 열심히 펌프질을 해 봐도 지하의 물을 그냥 끌어 올릴 수 없고, 처음의 한바가지의 물을 동력으로 해서 깊은 곳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내는 것이다.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압력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인지 그 원리까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질은 ‘헛질’이다.





내 '습작' 뭉치 중 일부이다. 책꽂이에 저렇게 주루륵 꽂아놓고 박스에도 따로 담았다.

대부분은 초창기에 밤낮없이 써 댔던 기록이고, 프린트 하지 않고 파일로만 저장된 것들로 있으니 제법 묵직한 세월의 흔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내 보이기엔 부끄러운 기록이다.


저만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써대고도 내 글은 여전히 모자람 투성이 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저 종이뭉치들은 내세울 자랑거리는 커녕 민망하게 주렁주렁 매달린 싸구려 악세사리 같은 느낌이다. 

맹세코 ‘에이~ 아니에요.’ 를 기대하고 쓰는 ‘답정너’ 가 아니다.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늘 용두사미였고, 긴 호흡을 따라가기엔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 모두가 여물지 못한 채 성질만 급했다. 그만큼 글의 호흡은 툭툭 끊어지고 중간중간 엄청난 싱크홀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으며, 이야기의 여정은 소심하고 겁이 많아 과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그 모자람을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진득한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얄팍한 재주로 적당히 넘어가는 법을 익혔으며, 딱 그만큼의 성장만 담보 되는 시간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얄팍한 만큼 쌓이고 쌓인 시간이 제대로 견뎠어야 할 진득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내가 써 내는 글은 오랜 시간 글을 써 왔어도 처음의 상태에서 겨우 몇 발 뗀 수준이다. 오히려 순수와 열정은 뒷걸음질 쳤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그것이 그대로 쌓인 흔적들이 야심차게 시작하고 적당히 버무려서 급하게 끝내버린 무수한 습작뭉치들이다.

모든 시작에는 당연히 연습이 필요하다. 단, 항상 연습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마중물은 한참의 펌프질 끝에 드디어 물이 꼬로록 올라오면, 그 물과 섞여 펌프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보통 첫물은 그냥 흘려보내므로 마중물은 ‘마중’의 역할이 끝나면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 마중물의 제 역할이다. 흘려 보내지 않고 펌프 안에 고여 있는 한 바가지 마중물은 제가 할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묶여있는 물이었다. 아무리 퍼 부어도 그 물은 흘러넘칠 뿐 그 다음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부여잡고 있는 따뜻한 미련보다는,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낯설고 차가운 새로움이 간절했다. 


사진 속의 습작 뭉치들은 이미 몇 달 전에 버렸다.

(아마도 그 전에 기록이랍시고 감성 한껏 올라서 찍어둔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박스의 노트를 버렸다. 



며칠 동안 많이 아팠다.

늘 달고 다니는 허리통증이며 손목통증 정도는 예사로운 일이었고, 일 년에 한두 번쯤 주기적으로 뒤집어 지는 속병이 찾아왔다. 늘 그렇듯 밥을 못 삼켜 도로 뱉거나, 먹는 족족 토해가면서 며칠을 지나왔다. 그러면서도 ‘혹시 큰병인가?’ 하고 걱정되지는 않는다.  할머니들 말씀 처럼 내 병은 내가 아는데, 이렇게 한번 싹 뒤집어지고 나면 더없이 가벼워지는 그 ‘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은 매번 겪어도 버겁고, 힘들고, 고단하다.

이번에는 감기까지 들 모양이다. 그래도 가볍게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픈 몸을 마주하면 그 끝에 찾아올 가벼움을 생각한다. 뱃속이 뒤집어지는 속병이 내 몸의 마중물이기도 하다. 다만, 이제 이 뒤집어짐을 다시 반복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뭐라고 가져다 붙여도 아픈 게 좋은 것이 아니니까.


글에 있어서만큼은 본능적으로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

어쩌겠나, 벌이가 시원치 않든, 모양새가 어찌하든 글쟁이인 것을.

내 글의 모자람만큼 타인의 빛남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부러움을 넘어 다음으로 나갈 동력이 되기고 한다. 그래서 브런치에 담긴 낯선 타인의 글들은 나에게 자극이자 동력이었다. 많이 읽고, 감탄하고 그 한 줄 한 줄에 어려 있는 글을 향한 고민, 진심과 뚝심을 보았다.



마중물은 이미 흘러넘쳤다. 

이제 팔이 아프도록, 숨이 차도록 펌프질을 할 차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눠 먹자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