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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Oct 31. 2019

나는 척추를 접어버릴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과 할 수 있는 것.

몇 년 전에 4개월, 그리고 작년 초에 5일 동안 요가학원을 다녔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근 골격 여기저기가 아프다 보니 혹시 요가가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었는데 두 번 다 별 효과는 없었다.

특히 작년에는 요가를 시작하고 통증이 더 심해져서 한달 통틀어 5일을 나가고 미련 없이 짐 쌌다.


그리고 꼭 통증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요가에 별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일단 나는 뻣뻣하다. 또한 숨이 짧다. 그리고 성질이 급하다.

그러니까 호흡이 짧아서 들숨과 날숨조절이 잘 안 되고, 유연성이라고는 1도 없으니 굽혀지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하면 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만년 열등생은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명상이 힘들었다.


요가 수업의 마지막은 명상이었다.

모든 동작이 끝나면 불을 끄고 일제히 바닥에 눕는다. 그리고 강사님은 잔잔한 음악을 틀고, ‘내몸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느껴봅니다. 머리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팔을 따라...따뜻함을 느껴봅니다..’ 같은 멘트를 하면서 명상을 이끌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간질간질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잡념이 사라지기는커녕, 없던 잡념까지 소환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숨 짧고 뻣뻣하고 주의 산만한 나는 요가를 그만 두었다.





발그림으로 안구를 어지렵혀 죄송합니다. 딱 들어 맞는 사진을 찾기도 어렵고..저작권 문제도 있고..그냥 앞발로 그렸습니다.


'폴더'를 하고 싶었다.

요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오직 그림(아.. 역시 민망..)속의 저 폴더 동작 하나만 하고 싶어졌다.

(딱히 요가 동작도 아니다.)

그래서 며칠 전 부터 저 동작에 도전했다.


나는 하루 10분, 밤마다 척추를 접는 중이다.


10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 줄 몰랐다.

오직 척추를 접겠다는 생각만으로 기나긴 10분을 버텨낸다.

고작 5도쯤 굽혔을까? 온몸이 후들거리고 짧은 숨 때문에 호흡이 꼬여 '끼이억' 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머릿 속은 완벽하게 단순해진다.

명상을 하고자 애써 마음을 비우려 할 때마다 주렁주렁 소환 되었던 오만가지 상념들이 척주를 접겠다는 딱 한 가지 생각이 차지한 자리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운동을 해야겠다, 아프지 않아야겠다., 이렇게 하면 허리가 좋아지겠지?’ 이런 생각도 아니다. 그냥 저 동작만 하고 싶었다.

사실 내가 날 때부터 뻣뻣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유독 저 ‘폴더’ 자세는 불가능이었다.

최대한 내려가도 허벅지와 배가 만나는 일이 없었다. 내게 폴더자세는 '없는 일'이었다.


정말 난데없이 든 생각이다. 갑자기 찾아온 속병 때문에 골골 거리다가, 감기 기운에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마디마디 쑤시는 삭신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리며 누워 있다가 ‘에라 척추나 접어야겠다.’ 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계속된 척추 접기 도전은 어젯밤까지 작심삼일을 무사히 넘겨 순항중이다.


끝내 나는 척추를 접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조금 큰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그것 또한 당연히 나에게는 '없는 일' 이었다.

아니, 척추도 접는데 그걸 못할까 싶다.


매일,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들로 만들고 있다.



덧.

끝내 ‘접히면’ 실사로 인증샷을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직각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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